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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는교회 최준영 목사, '구원의 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11-21 01:33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품는교회 최준영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우리는 한겨레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 때 많이 불렀던 노래의 후렴구다. 

본래 이 노래는 어렸을 때부터 통일에 대한 마음을 품도록 만든 노래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핏줄’에 대한 생각을 어려서부터 심어주게 만든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는 어려서부터 여러 문화적 환경 속에 다른 나라에 비해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시선을 학습하게 한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사회에서는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전반적으로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다. 

그것이 나와 다름이라는 차이를 인정하는 정도면 괜찮은데, 이것을 넘어 차별의 시선이 되는 것이 문제다.  

예수님 당시 유대민족은 여기서 더 나아가 어려서부터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임을 배웠다. 당연히 이방인들은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그런 이방인들과 자신들이 섞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갖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유대인으로 이 땅에 오시고, 그 문화 속에 자라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셨고,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을까?

마태복음_15장_29-39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을 떠나셔서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셨다고 한다(29절). 이 부분을 병행본문인 마가복음 7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지역은 유대인보다는 그리스 이주민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즉, 앞 문단에서 이방여인에게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께서 이곳에서도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사역 하시려 하심을 알 수 있다.

그 곳에서 큰 무리가 예수님께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 등 병든 사람을 데려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신다(30절). 그리고 이것을 지켜본 이방인들은 놀랍게 여기며 이방신이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31절). 

이는 이사야서에 예언된 메시아 예언의 성취이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사35:4~5).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만 아니라 이방인과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언약을 성취하신 메시아이시다.  

예수님의 사역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칠병이어’로 불리는 기적으로까지 연결된다. 예수님께서는 모인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들이 예수님과 사흘 동안이나 함께 지내면서 먹을 것이 떨어졌고, 먹을 것을 사러가기에는 먼 광야에 있었기 때문이었다(32절). 

여기서 ‘불쌍히 여기노라’(스플랑크니조마이)는 ‘내장’,‘심장’,‘마음’이란 뜻이 있는 스플랑크논에서 유래한 단어로 '깊이 감동하다', '동정심을 가지다', '동정하다', '자비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방인 무리들에 대하여 마음 깊숙이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한편 이런 예수님과 달리 제자들의 반응은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이 광야이기에 무리들을 먹일 떡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33절). 그들은 불과 얼마 전 예수님께서 보이셨던 오병이어의 기적을 잊은 듯하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떡이 몇 개나 있는지 여쭤보신다. 제자들은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가 있다고 대답한다(34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무리에게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신다(35절). 그리고 그 떡 일곱 개와 생선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신다(36절). 이 것을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자 놀랍게도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도 사천 명이 넘는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게 되었다(37-38절). 광주리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탈출할 때 탔을 정도로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보관도구였다(행9장 참조). 즉,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오병이어의 기적 때보다도 더 많은 양이 차고 넘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기적 이후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신다(39절).
 
앞 문단에서 가나안 여인은 ‘부스러기’의 은혜를 구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스러기의 은혜를 넘어 그 여인뿐만 아니라 당시 개로 여겨졌던 이방인들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셨다. 나아가 그 은혜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전해지게 되었다. 

나에게는 나를 불쌍히 여기사 구원의 은혜를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는가? 여전히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영혼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그 마음을 안다면 오늘 내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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