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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승훈, 치열한 고민 속에 탄생한 '블랙메리포핀스'의 '요나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위수정기자 송고시간 2020-11-28 13:08

오승훈.(제공=컴인컴퍼니)


[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가 4년 만에 요나스 버전으로 돌아왔다.
 
2012년 초연 당시 한스 버전으로 시작해 2016년 헤르만 버전으로 관객을 만난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가 다섯 번째 시즌에는 요나스의 시점으로 화자를 교체해 새로운 심리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동화 ‘메리포핀스’를 기반으로 만든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한국, 중국, 일본 아시아 3개국에서 모두 성공했으며 한국 최고의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을 입증했다.
 
2020년 다섯 번째 시즌에는 한스 역의 김도빈, 박민성, 이율, 헤르만 역의 임준혁, 이해준, 노윤, 안나 역의 임찬민, 강혜인, 이지수, 요나스 역의 박정원, 최석진, 오승훈, 신주협, 메리 역의 임강희, 홍륜희가 연기하고 있다.
 
아시아뉴스통신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요나스 역의 오승훈 배우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오승훈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이하 ‘블메포’)에 함께 하게 된 소감으로 "처음에는 서윤미 연출님이랑 컴퍼니 대표님이랑 미팅하면서 작품이 어떤지 봐달라고 하셔서 봤는데 대본이 확 들어왔다. 한스, 헤르만 버전으로 보고 요나스 버전도 드라마가 잘 만들어질 거 같았다. 요나스 버전에서는 요나스가 메리한테 막내아들 같은 느낌인데 메리와 드라마가 너무 찰떡이면서 둘의 관계가 슬프고 예쁘며 아름다웠다. 마음에 너무 확 들어와서 무조건 하고 싶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제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고 전했다.
 
이번 시즌이 요나스 버전으로 돌아오는 만큼 요나스로 연기하는 배우로서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을 텐데 오승훈은 "박정원 형이 예전에 ‘블메포’를 해봤으니까 말해줬는데 요나스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많은 부담이 있다고 말해줬다. 저는 안 해봤기 때문에 해야할 게 많아서 힘들었다. 그리고 요나스를 저에게 담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면 드라마가 흘러가지 않을 거 같았다. 요나스가 왜 이 시간동안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는지 중점을 두면서 연기하고 있다"고 주안점을 밝혔다.
 
‘블메포’를 보면 과거와 현재 상황이 오가며 감정의 낙차가 크다. 배우로서 감정의 낙차를 빠르게 옮기는 부분도 쉽지 않을 터. 오승훈은 "아직도 고민이 참 많다. 최대한 동떨어지지 않게 표현하려고 한다. 브릿지 사이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하는데, 이 과정이 섬세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 너무 힘들다. 요나스로 처음 10분간의 독백을 할 때도 호흡의 끈을 엄청 섬세하게 한다. 세심하고 섬세하게 끌고 가는 얇은 실 같은 호흡을 끌고 가는 게 정말 어렵다"며 조심스럽게 전했다.
 
오승훈.(제공=컴인컴퍼니)

요나스는 ‘블메포’에서 그라첸 슈워츠 박사가 입양한 4명의 아이 중 막내로 그에게 한스, 헤르만, 안나는 어떤 사람일까.
"공통으로 어떤 성향을 가진 형 누나들이든 순수하게 사랑하고, 이면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한스는 리더 같죠. 요나스는 한스가 츤데레 같다는 마음을 알았을 거 같아요. 침치미니 하다가도 삐치는 거 보면서 요나스 눈에는 그런 형이 귀엽기도 했을 거예요. 마냥 세지만은 않은 형이죠. 그리고 헤르만이 한스보다 남자답다고 느꼈을 거 같은데, 나중에 알고 보면 헤르만은 예술가이니까 섬세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죠. 요나스가 헤르만을 한스 보다 좀 더 편하고 친하게 대했을 거 같아요. 안나는 메리가 저에게 엄마라면 작은 엄마 같은 사람이에요. 메리가 없을 때 엄마같이 기대고 누나에게 저에 대한 마음을 얘기했을 거 같아요."
 
‘블메포’에서 빠질 수 없는 공간, 숲에 대해서 배우의 생각을 물어봤다. 그는 "정말 많은 해석이 있을 거 같고 배우마다 생각도 다를 것이다"라고 서두에 밝히며 "메리가 읽어주던 동화 속에 숲이 나왔다. 그 숲은 항상 따뜻한 곳으로 위로가 되고 행복하고 잠도 잘 오는 곳이다. 메리가 그런 숲 이야기를 해주면 요나스로서도 잠을 잘 잤는데, 메리와 사건 때문에 가장 공포가 된 장소가 되며 그 숲이 압박해온다"고 말했다. 이어 "메리를 생각하면 가슴 아픈 거처럼 숲도 똑같다. 메리가 항상 행복하게 말해준 숲이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고, 우리가 깨어난 그 숲에서 모든 게 멈춰버린다. 그때부터 요나스는 입을 다문다. 제 독백에도 있다. "그날 그 숲에 비밀을 하나를 묻어두고 왔죠"라고 하는데 그 비밀 하나가 모든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묻어 두고, 입을 닫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가장 두렵고 많은 걸 숨겨둔 곳으로 그게 열리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버릴 거 같다. 한편으로 저조차 거기에 가둬진 거 같다. 제가 거기를 나가려고 하거나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면 그 숲은 저를 가둬두려고 하고 죽여 버리려고 할 거 같은 숲이다"며 똑부러지게 그의 해석을 전했다.
 
인터뷰 전 ‘블메포’ 모니터 하러 갔을 때 오승훈의 요나스는 메리가 떠날 때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막내아들 같았던 요나스가 엄마 같은 메리의 치맛자락을 잡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으면 함께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이에 관련한 질문을 던지자 오승훈은 "치맛자락을 잡으려고 미리 생각한 것은 아니고 공연할 때 갑자기 붙잡고 싶었다. 저도 메리의 옷자락을 잡으면서 너무 슬펐다. 저는 계획해서 디테일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무대에서 상대 배우의 연기를 보고 들으면서 그때 당시 느껴지는 걸 하는 편이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임강희 배우의 메리는 누나 같은 엄마로 맨날 응석을 부렸을 거 같다. "자 이제 자야지"라고 하면 "으앙"하며 떼쓰고 싶은데 홍륜희 배우의 메리는 그러면 혼날 거 같다. (웃음) 두 분 다 너무 따뜻한데 륜희 누나는 굉장히 섬세하다.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고 캐치해서 표현해내는 게 정말 좋은 선배다. 연습할 때 메리 같은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다른 아이들은 앞을 보는데 저는 이때 륜희 메리를 쳐다봤다. 그랬더니 누나께서 "네가 이때 나를 쳐다보면 나는 아이들 전체를 볼 수 없고, 너를 쳐다봐야 할 거 같아. 이때만큼은 나를 안 쳐다봐줬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더라. 역시 전체를 볼 줄 아는 선배이다. 강희 누나는 무엇이든 상대 배우가 어떻게 하는지 일단 봐주려고 한다. 그리고 뭔가를 부탁드릴 때 "이건 힘들 거 같다"고 하시는 게 없다. 뭐든지 부탁하기보다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최소의 부탁을 하는 상호작용이 잘 된다"며 덧붙였다.
 
극 중에서 한스, 헤르만, 안나, 요나스는 수요일마다 기억이 지워지면서 ‘Silent Wednesday’라는 넘버를 부른다. 반면에 잊지 못할 수요일이 있는지 질문에 그는 ‘베어 더 뮤지컬’의 추억을 떠올렸다.
"주말에 ‘베어 더 뮤지컬’ 오디션을 봤었는데 너무 떨어서 입고 있던 후디가 머리끝까지 올라갈 뻔했어요. 다음 날 영상도 찍어 보내고, 돌아오는 수요일에 원미솔 음악감독님이 뮤지컬 ‘드라큘라’ 연습실에 찾아오라고 해서 갔죠. 그때 ‘드라큘라’에 나오는 배우들도 다 있었는데 제가 가자마자 피아노 앞에 앉으시더니 바로 노래 시작하라고 하셨어요. 너무 떨면서 노래를 해서 저는 정말 안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원 감독님이 피아노를 멈추고 20초 정도 가만히 있다가 "합시다" 이러시는데 정말 놀랐어요. 너무 감동적이었고 저는 정말 피터를 하고 싶었거든요. 사실 피터, 제이슨 둘 다 오디션을 봤는데 노래 끝내자마자 "피터네, 피터 해도 되겠어요" 이러셨어요. 그리고 "만들어갈 게 필요하지만 내가 도와줄게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베어 더 뮤지컬’ 첫 공연을 하자마자 원 감독님과 얼싸안고 난리가 났어요. "내가 너를 무대에 올리고 첫 공연을 할지 몰랐다"고 하는데 이 정도로 실력이 는 애는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워낙 뭐가 없어서 감독님 기준에는 많이 는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
 
극의 마지막에 네 명의 아이들은 아픈 기억을 지울 수 있지만, 기억을 지우지 않고 불행을 안고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기로 결정을 한다. 이에 오승훈은 "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 같다. 안나가 동의한다고 할 때 너무 슬프다. 안나에게 여자로서 얼마나 잊고 싶은 기억일텐데 지우지 않겠다고 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소중했던 메리와 우리의 기억들을 잊고 싶지 않은 거 같다. 저도 어렸을 적 너무 아픈 기억들이 있다. 그렇다고 나의 경험과 느낌들을 버리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거 같다. 그 기억을 잊어 가고, 옅게 만들어 가면서 살 거 같다. 예전 기억을 다 지우면 한스, 헤르만, 안나와의 관계가 다 지워지는데 이들을 잊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오승훈이 아시아뉴스통신을 통해 미공개 셀카를 공개했다.(제공=오승훈)

오승훈은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연극 ‘렛미인’ 오디션을 통과했을 때"라고 답했다. "제가 갈고 닦아왔던 게 모자랄지 언정 틀린 길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도 그렇긴 하지만 완전 신인일 때는 엄청 헤맸죠.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재목이 될 사람인가. 능력이 있을까’ 이런 고민이 그때는 더더욱 심했다. 서류부터 최종합격까지 제가 이뤄낸 것이라 기억이 나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틀린 게 아니구나. 앞으로도 방향에 대해서 헤매겠지만 틀린 방향으로 걸어간 게 아니라며 위로를 받아서 연기자로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는 요즘 고민으로 "배우로서 고민보다 내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 고민이 있다. 나라는 사람이 이 배우의 재료니까 말이다"라며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확고하게 살고 있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려고 하는 거 같았다. 센 사람, 강한 사람처럼. 그런데 알면 알수록 저는 너무 여리고 감성적으로 예민하더라. 한동안은 이게 틀렸다고 생각했다. 예민한 감성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니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제가 자꾸 작아졌다. 요즘에는 저를 찾고 싶으며 저의 이런 단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싶다. 저를 알아갈수록 제 연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며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냈다.
 
오승훈은 올해 서른을 맞이하면서 혼란스러웠다고 덧붙였다.
"‘내가 이걸 해도 되는 건가?’ ‘연기자로서 할 수 있는 능력과 더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건가?’ ‘연기적으로 채워가고 있는데 왜 채워지지 않는 거 같지?’ ‘겉으로 보이는 거에 관객들이 반응을 해줄까?’ ‘내가 속이 부족한 재료인가?’ 이런 고민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뮤지컬을 만나게 됐죠. 저는 음악으로 너무 큰 힐링을 하는데, 음악을 이용해서 제가 연기로서 누군가에게 위로와 힐링을 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이 이뤄진 게 뮤지컬이에요. ‘베어 더 뮤지컬’에서 피터와 지금 ‘블랙메리포핀스’의 요나스를 연기하고 나면 감정적으로 고통받는 연기를 해서 다음날 제가 너무 힘들지만 제가 이 캐릭터들을 연기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있어요."
 
음악으로 위로와 힐링을 받는다는 오승훈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악 세 곡을 요청했더니 뮤지컬 넘버 세 곡을 꼽았다.
 
"‘블메포’에서는 ‘곡예’인데 헤르만의 넘버이지만 언젠가 제가 불러보고 싶어요. 힐링곡이라고 하기에 가슴 아픈 곡이지만 저는 헤르만이 이 넘버를 할 때 소대에서 지켜 봐요.
다음으로는 ‘베어 더 뮤지컬’의 ‘Are you there’인데 맷과 피터가 술에 취해서 일탈하며 신한테 호소하는데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곡이다. 저는 지금도 이 넘버는 하루에 한 번씩 꼭 들어요.
마지막으로 ‘모차르트!’의 ‘나는 나는 음악’으로 박은태 선배가 부른 거를 좋아해요. 그리고 박강현 형이 부른 것도요! 제가 강현이 형이랑 듀엣을 했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아서 "형이랑 내가 어떻게 듀엣을 했을까?"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이 넘버의 가사가 제 심정과 가장 많이 닿아있고 예술적인 감각을 꺼내놓는 노래라 멋있어요. 아, 강현이 형이 저 ‘베어 더 뮤지컬’할 때 자신의 대본을 줬어요. 거의 자기의 데뷔 때 대본이라 고민의 흔적이 담겨있고 배우로서 수치일 수 있는데 대본도 주고 연습실을 잡아서 직접 레슨도 해줬어요. 그런데 형이 자신이 노래하면서 보여주는 제가 "형, 알겠는데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냐고!"라고 물었죠. (웃음) 그러더니 강현이 형이 저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모르겠다, 나도.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모르겠다"라고 하더라고요. 형은 노래 부르는 걸 배운 게 아니라 많이 듣고 직접 해본 사람이라서 그런 가봐요. 듣는 귀가 정말 좋은 형이고, 정말 고마워요."
 
인터뷰 끝 무렵에 요나스가 동화 작가가 꿈인 거처럼 오승훈에게 기억에 남는 동화를 물었을 때 "동화는 아닌데 제 기억 속에 동화 같은 해리포터를 정말 좋아했고, 동화는 ‘흥부와 놀부’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요나스도 기억을 지우지 않고 살아가기로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지냈을 거 같냐는 물음에 "너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겠지만 형들과 누나가 곁에 있고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게 됐다. 서로가 함께하는 시간이 큰 행복이 될 거 같고 나아가 시간이 지나면 아픈 기억도 많이 잊혀지고 혹은 묻어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스, 헤르만, 안나가 요나스에게는 아픈 기억보다 수천 배는 더 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오승훈은 ‘블랙메리포핀스’가 그의 두 번째 뮤지컬 작품으로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진정성있게 작품을 대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단어 하나하나가 작품의 해석에 미칠 점을 고려하며,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을 왜곡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전해나갔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지며 인터뷰를 마쳤다.
 
한편,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12월 31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공연된다.

ent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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