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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블랙메리포핀스' 임준혁 "4년간 쉼 없이 달려, 감사함 잊지 않으려 해"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위수정기자 송고시간 2020-12-14 19:04

제공=컴인컴퍼니


[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무대를 하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어요."
 
2012년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한스 버전으로 초연을 올려 2016년 헤르만 버전까지 매 시즌 객석 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하며 흥행 불패 신화를 보여줬다.
 
2020년 4년 만에 돌아온 다섯 번째 시즌 ‘블랙메리포핀스’는 요나스 시점으로 화자를 교체해 새로운 심리 변화를 그리고 있다. 동화 ‘메리포핀스’를 모티브로 1926년 나치 정권 아래의 독일과 불타버린 대저택과 안개 속에 사라진 수요일의 기억, 그리고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에서 ‘WHO’가 아닌 ‘WHY’를 찾는 과정을 통해 한스, 헤르만, 안나, 요나스의 심리 상태를 조명한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에는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그라첸 슈워츠 박사가 입양한 4명의 아이와 박사의 연구조교이자 아이들의 보모였던 메리 슈미트가 등장한다. 한스 시몬에는 김도빈, 박민성, 이율, 헤르만 디히터에는 임준혁, 이해준, 노윤, 안나 레아는 임찬민, 강혜인, 이지수, 요나스 엥겔스는 박정원, 최석진, 오승훈, 신주협, 메리 슈미트는 임강희, 홍륜희가 연기하고 있다.
 
아시아뉴스통신은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헤르만 역의 배우 임준혁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제공=컴인컴퍼니

임준혁은 뮤지컬 ‘블랙메피포핀스’(이하 ‘블메포’)에 대해 "무대를 하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서두에 밝혔다. 그는 "4년 만에 ‘블메포’가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헤르만 역을 해보고 싶었는데 비공개 오디션으로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정말 행복했다"며 ‘블메포’를 꼭 해보고 싶었던 이유를 묻자 "넘버가 마음에 들었다. 뮤지컬이지만 연극 대사처럼 뱉는 넘버가 정말 좋았다. 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보여주고, 소극장에서 보기 힘든 회전무대가 있다"고 전했다.
 
‘블메포’ 대본은 유독 공백이 많기로 유명한데, 배우로서 채워가야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까.
"어렸을 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쭉 가지만, 성인으로 보여줄 때는 사진처럼 조각조각 나 있어요. 성인인 부분만 놓고 보면 요나스의 기억에 있었던 한스, 헤르만, 안나가 다시 만나서 화재 사건을 파헤치고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연기해야 하죠. 헤르만으로 서사를 채우고 조각난 사건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지 저 스스로가 믿을 수 있고 납득이 되는 거로 만들어 가려고 노력했어요."
 
조각난 사진 같은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보니 감정선의 낙차가 매우 큰 작품이다. 기승전결을 끌고 가며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보다 감정의 고저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닐 터. 임준혁은 "헤르만의 현재는 분노와 두려움이고, 중간에 어린 시절에서도 분노도 있지만 ‘침치미니’할 때는 우쭈쭈하며 웃을 수 있고, 행복했던 모습도 나온다. 빠른 시간 안에 사건과 사건으로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며 보여줘야 해서 집중력이 크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없고 불편한 극은 아닌 거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블메포’는 4년 전까지 헤르만 버전으로 작품을 하다가 이번 시즌에는 요나스 버전으로 올린 가운데, 헤르만의 연기를 하고 싶었다던 임준혁에게 이번 시즌이 헤르만 버전이 아닌 것이 조금은 아쉽지 않을까.
"예전 헤르만 버전이었으면 헤르만의 서사가 나와 있던 대사가 있어서 관객이 감정선을 잘 따라와 주고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은 해요. 헤르만이 왜 진실이 밝혀지는 걸 힘들어하는지 지금 시즌의 대본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요?"
 
‘블메포’에서 네 명의 아이들은 대저택 화재 사건을 겪은 뒤 기억을 잃은 채로 살아가다 12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임준혁은 기억을 잃기 전 어린 시절 헤르만으로 "아빠도 있고, 엄마 같은 보모 메리도 있고, 3명의 형제가 있으니 정말 좋았을 거 같다. 바깥세상이 궁금한 건 있겠지만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형제들이 있다는 것에 행복하게 지냈을 거 같다"며 헤르만의 지난 12년에 대해서는 "대본에 나와 있듯이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고 답했다. 이어 "막연할 수 있지만 제가 아버지를 죽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다. 헤르만이 미술을 하는 친구인데, 피 범벅된 붉은 색체, 파괴적인 드로잉이라는 대사처럼 그런 색체가 나올 때마다 놀라고,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게 있다. 그럴 때 헤르만이 이중인격 같이 느껴진다. 안나에게는 이성적인 마음은 있지만 살인자라는 타이틀과 그 자체가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한다. 항상 진실을 궁금해하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게 두렵다. 한스를 만났을 때 화나 있는 것도 방어적으로 화가 나는 것이다. 마음 한편에는 너무 궁금한데 제가 범인이라고 생각은 들고, 한스가 이걸 파헤치려고 할수록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대하게 된다. 헤르만의 무서움이 커질수록 한스한테 화를 내는데, 머릿속 기억은 없지만 몸이 기억하는 거다. 지난 12년 동안 헤르만이 미술가로서 성공은 했겠지만, 늘 기억의 미지 속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함께 했을 것이다"고 전했다.
 
제공=컴인컴퍼니

12년 만에 화재 사건을 파헤치는 한스에 대해서는 "진짜 궁금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런데 왜? 아무도 기억을 못 하는 사건인데 왜?'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범인일지도 모르는데 12년 전의 일을 감당 못하면 어떡하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계속 들 거 같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헤르만도 한스를 사랑한다. 한스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12년 만에 4남매를 모은 자리에 오지 않았을 거 같다"고 덧붙였으며 임준혁이라면 어땠을 거 같냐는 물음에 "12년이 흐르기 전에 진실을 파헤칠 거 같다. 사건을 맞닥뜨릴 거 같다. 진실을 정말 알고 싶을 거 같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임준혁은 ‘파괴적인 드로잉, 폭력적인 조각들, 피 범벅 된 붉은 색체’를 주로 쓰는 아티스트 헤르만 디히터로 "딱히 어떤 아티스트를 참고해 보지는 않았고 추상적이다. 조각을 할 때는 안나의 얼굴을 많이 조각했을 거라고 전사를 잡았다. 하지만 안나를 생각하면서 작품 활동을 할 때 이상하게 저도 모르게 조각질이 분노적으로 나오고, 물감을 흩뿌리기도 하면서 저도 모르게 몰두하면서 색감이 소스라치게 나올 때 웃으며 작업하다가 아차 싶을 거 같다"고 설명했다.
 
극에서 헤르만과 안나는 서로 좋아했던 사이로 헤르만은 안나가 여자로서 고통스러운 실험을 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다가가려 하면’ 넘버에서 성인이 된 둘의 안타까운 감정이 드러나는 가운데 헤르만에게 안나는 어떤 존재일까.
 
"4명의 남매이지만 입양된 아이들이고, 가족애로 다가가기에는 헤르만이 안나한테 하는 말이나 결이 다른 거 같아서 순수하게 이성적으로 좋아했던 사람이에요. 어렸을 때는 몽실몽실한 마음이 쌓여서 저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었을 거 같아요. 동화 같았던 마음이 화재 사건 전 안나가 실험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로 남았을 때 더 다가가지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 시즌의 ‘블메포’는 요나스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니까 요나스의 기억에 있는 안나와 헤르만이 서로 좋아했던 게 보일 정도면 둘의 사랑은 실제로 더 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사실 아버지를 찌르는 것도 요나스를 안심시키고 제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 순간 분노가 너무 많아요. 이미 요나스가 밀쳤을 때 아버지가 죽었다고는 했지만 저보다 어린 동생인 요나스를 지켜주고 싶고, 안나에 대한 마음과 한스가 형으로서 움직이지 않는 거에 대한 분노가 다 복합적으로 다가와서 아버지를 다시 칼로 찌른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안나의 상황은 정말 돌아버릴 거 같죠. 미칠 거 같다는 말로 밖에 표현이 안 될 거 같아요."
 
극에서 성인이 된 헤르만은 유독 오른손을 쓰는 것에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임준혁은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아버지를 찌르고 나서는 이 손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를 남겨야 된다고 생각했다. ‘곡예’ 넘버에서 노래가 끝나고 안나를 조각상으로 만드는데 오른손으로 안나를 만질 때 되게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다. ‘헤르만이 왜 저렇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게끔 이 부분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오른손에 대한 트라우마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블메포’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는 숲이다. 메리가 읽어주던 동화에 숲이 나오고, 아이들이 실험을 피해 도망치려던 공간도 숲이다. 숲을 떠올리면 여러 가지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임준혁이 상상한 숲은 어떤 모양일까.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에서 경찰 호퍼가 일레븐을 몰래 키우는 곳이 빼곡하고 울창한 숲이에요. ‘블메포’가 독일의 이야기니까 독일의 숲을 검색해 봤는데 블랙 포레스트라고 불리는 곳이 있더라고요. 독일어로는 ‘슈바르츠발트’로 한 줌의 햇살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전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빽빽한 곳이 있다고 해요.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아이들이 길을 잃은 숲의 배경이라고 하는데 왠지 ‘블메포’의 숲도 이럴 거 같아요."
 
극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장면에서 네 명의 아이는 아픈 기억을 지우고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을 안고 행복해지기에 "동의합니다"라고 말을 한다. 그 용기에 대해서 "우린 가족이기 때문이다. 요나스가 "저는 기억을 지우지 않을래요"라고 말하고 제가 사랑하는 안나가 먼저 "동의합니다"라고 말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기억을 안고 나아가겠다고 마음을 먹는 거 같다. 이 둘에게 위안을 받아서 말하기보다는 저도 결국에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지, 결국에는 사랑했던 가족들에게 용기를 얻고 기억을 지우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 같다"고 담담하게 전했다. 이어 만약 헤르만에게 기억을 지울 것이냐고 제일 먼저 물었으면 어땠을 거 같냐는 질문에 "그럼 쉽게 말하지 못할 거 같다. 헤르만은 요나스와 안나를 보고 동의한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본인만의 헤르만으로서의 생각을 전했다. 그럼 임준혁이었다면 기억을 지우지 않을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한 것을 봤는데 그걸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안나가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또 누구 하나 가해자가 되지 않고, 누가 범인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고통을 나눠 가졌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큰 고통을 나눠 가졌기 때문에 기억을 지우지 않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임준혁이 인터뷰를 위해 미공개 셀카를 공개했다.(제공=임준혁)

이어서 임준혁은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초등학교 3학년 10살 때를 꼽았다. "그때는 컴퓨터로 놀지 않았고 아이들과 항상 뛰어놀았어요. 3층 집에 사는 친구 집에서 뛰어놀고 간식을 먹으면서 숨바꼭질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수업 끝나고 놀았던 추억이 있죠. 그 나이에는 ‘뭘 하고 재미있게 놀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친구들과 뛰어놀았어요."
 
‘블메포’의 다섯 번째 시즌은 요나스가 화자로서 임준혁은 요나스의 기억에서 바라보는 헤르만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자신의 모습을 듣고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가 있냐 묻자 "엄마께서 어렸을 적 저를 보고 돌아이, 관종 같아서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지?’ 싶었다고 하더라.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실 때도 다른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는 어느새 선생님 무릎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또 아기 때 모자 쓰는 걸 좋아했는데, 아주머니들께서 ‘아기 너무 귀엽다’고 해주시면 일부러 그 앞을 왔다 갔다 하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저희 집에 놀러 오시면 엄마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엄마께서 제일 충격적이었다고 하신 저의 기억은 제가 초등학생인지 중학생 때 형이 단소 부는 것을 보고 저도 따라 부르고 싶었던지 방에서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가 방에서 너무 안 나오니까 엄마께서 방 문을 열어보셨는데 제가 입술이 다 부르터서 피가 나는 데도 단소를 불면서 소리가 난다고 좋아하는 모습에 놀라셨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인터뷰를 하는 날이 임준혁의 배우 데뷔 4주년 날로 소감을 묻자 "4년간 정말 쉼 없이 달렸다. 지난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꾸준히 달려온 것에 감사함을 찾으려고 하고 또 제가 얼마나 감사한 사람인지 상기시키면서 일하려고 한다. 항상 어디에 있든지 묵묵히 뒤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거 같다. 저는 늘 안주하지 못하고 제가 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보다 욕심이 많은데 그게 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버티게 하는 힘인 거 같다. 2021년에도 재미난 작품들 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진심을 담아 전했다.
 
마지막으로 2021년에 배우 임준혁이 아닌, 인간 임준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하면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답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한편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27일까지 공연이 쉬어가는 중이며, 후에 서울 대학로 TOM 1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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