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2일 일요일
뉴스홈 연예/문화
[기획] 순창의 샘(58) 금과면 발산리 '가운데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0-12-16 10:47

물 길어 며칠 간 집에 둬도 물맛 그대로
가운데 샘물로 목욕, 피부병 없고 세안도
겨울엔 새암물 따뜻해 빨래하는 어머님들
순창군 금과면 발산리 가운데샘, 사각, 깊이 50cm./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금과면 방축리, 풍산면 죽곡리 경계에 있는 아미산(峨眉山, 515.1m)이다.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요염하게 웃음 짓는 여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상봉에서 남쪽으로 100여 미터 내려와 뾰족하게 솟아오른 산이 해발 460m로 아름답게 솟은 봉우리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다섯 봉우리가 솟은 마지막 봉우리 밑에 형성된 마을이 발산리(鉢山里)이다.
 
또한 첫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오다가 결인하여 다시 솟아오르면서 한 지맥이 서쪽으로 내려와 발산리 앞에서 머무르니 발산리의 안산이다. 이 마을의 주산인 첨수봉은 그 형상이 인체로 오래된 중이 부처님 앞에 예불하는 형상으로 노승예불(老僧禮佛) 형상이다.
 
따라서 노승예불 형상의 상대성 지명으로 발산리의 안산은 목탁(木鐸)이요, 마을 형상은 바리대(鉢) 형상으로 마을이 자리한 형국이 발형(鉢形)에 속한다 하여 마을 이름을 발산(鉢山)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바리대란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로 patra(鉢多蘿)라는 음역에 따라 바리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바리대란 스님들의 밥을 담는 밥그릇이라는 말인 것이다.
 
어느 때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정유재란 때 화순최씨 효자 최충길(崔忠吉)과 그 아우 효길(孝吉)의 효행이 이 곳에서 있었다는 설화로 보아 현재의 발산리는 이 때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왜병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자기 부모를 피신시킬 수 없어 마을 뒷산에서 부모를 보호하다가 붙잡혀 순절했다고 전해온다. 발산리 라고 하는 이름은 산 형상이 바리대와 같다는 데에서 연유된 것으로 믿어진다.
 
이렇게 오랜 된 마을의 회관 뒤로 올라가다 보면 뚜껑을 덮어 관리하는 가운데 샘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많은 물을 품어내어 조그마한 미나리꽝을 넘어 하천으로 흐르고 있다. 현재는 보잘 것 없이 관리하고 있지만 옛날부터 발산리 주민 전체가 가운데 샘물을 마시며 현재까지 살아온 귀중한 샘이다. 뒤에 아미산이 버티고 있어 그 물맛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여름에는 시암물이 시원하기 그지없어 밤이면 젊은이들이 이곳에 와서 등물을 하고 땀을 식히는 장소로 이름이 나있다. 겨울에는 새암물이 따뜻하여 이곳에서 매일 빨래하는 어머님들이 쉴 새가 없었다고 한다.
 
우물에서 올라온 샘물은 석간수로 떠다가 며칠간 집에 두어도 물이 달라진 게 없어 물동이에 물을 길어 며칠간 집에 두고 마셔도 맛은 원래대로 좋았다고 어르신들의 말씀이다.
 
어린이들은 우물물에 목욕하면 피부병이 안 생긴다고 하여 늘 발산 가운데 샘에 가서 등물을 하고 세수하고 머리 감고 하였다고 한다. 옛 말에 마을의 물이 좋아야 건강하게 산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 발산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건강하고 장수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좋은 샘인데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 우리네 조상들이 가장 신성시 여기며 아끼고 관리하여 온 샘인데 각 마을까지 상수도가 들어 온 후로 마을 좋은 샘들이 버림받은 듯 잡초에 묻혀 있다. 더구나 샘 자체를 복개하여 파묻어버린 곳이 너무 많기에 큰 걱정이 된다.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우리 조상들이 마시던 우물을 다시 먹을 것이라 확신하니 잘 보존하자고 부탁드린다.(출처. 순창문화원)

dhlee3003@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