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8일 수요일
뉴스홈 종교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사람의 격'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12-19 02:22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사람의 격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다. 꽃들도 다 형상이 다르다. 꽃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그 꽃이 주는 의미나 가치는 똑 같지 않다. 그 형상이 다르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꽃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음악도 모두 아름답지만, 어떤 곡은 더 깊은 감동을 준다. 그림의 세계, 문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 가치가 더 빛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도 구약, 신약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지만, 그 66권 중에서도 더 귀중하게 취급받는 책이 있다. 그 중의 으뜸은 복음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조심스럽지만, 이런 말을 사람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귀한 가치가 있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예수님의 사도들 중에도 베드로, 요한, 바울같은 분들은 교회 역사에 더 큰 공헌을 한 분들이다. 모든 사도가 똑 같다고 할수 없다. 자기 분량껏 섬기고 떠나갔다.

과거에는 신분의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귀하고 천하고 구별이 있었다. 왕과 백성을 나란히 취급할 수 없었다. 역사의 변혁 속에서 제도적 신분 사회가 사라졌지만, 오늘날 사람들을 모두 똑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겉으로 사람을 차별하면, 상식과 법을 거역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똑같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그 공동체에 더 귀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귀한 사람, 심지어는 해로운 사람으로 평가 받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 사람들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겉으로 인정하기 싫어해도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더 우월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 아닌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돈을 더 많이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우대받는 것 아닌가? 많이 가진 것과, 공동체를 위해 그것을 풍성히 베푸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교인은 정성과 마음으로 헌금한다. 어떤 교인은 인색한 마음으로 헌금한다. 수량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정성의 문제임을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님도 동전 한 잎을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를 보시고 칭찬하셨다.

옛날 신학교 강의실에서 들었던 내용이 생각난다.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교인의 헌신도는 출석과 헌금에 있다고 했다. 그 당시 목회자로 존경을 받던 분의 강의 내용이었다. 목회 현장에서 종종 그 강의 내용이 생각난다. 그 신분이 목사이든, 장로이든, 평범한 교인이든, 결국 그 드리는 헌금 속에 그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교회 안에는 정말 충성되고 헌신된 교인이 있고, 귀중히 여김받는 사람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그 말과 행동을 통해 자기의 격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 진실한 삶,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이런 마음은 조용히 그 사람의 고상한 품격을 나타낸다.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 속에는 자기 자랑하려는 DNA가 있다. 우리 속에는 자기 중심적으로 살려는 자아와 성품이 있다. 베풀며 사는 사람과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을 똑같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자기 자신 속에서 우리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애통해 하고, 회개하는 마음 속에는 겸손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실상을 아는 것이다. 자기 실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못할 것이다. 겸손한 사람, 진실한 사람은 소리 없이, 그 언어와 행실을 통해 귀한 품격을 드러낸다. 마치 꽃이 소리 없이 향기를 발하는 것 같다. 

이 세대는 어떤 세대인가? 모두가 주인처럼, 모두가 현인처럼 사는 세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민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누군가를 충고하고 가르친다는 것이 몹시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 자기 주장이 가득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면, 열린 마음으로 듣는 일이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마땅이 듣고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전하고 가르쳐도, 그것을 마음으로 듣는 일이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1990년대 초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종교학 강의를 들으면서 읽었던 책 속에 일본의 어느 사찰에서 있었던 글이 생각난다. 동경의 어느 대학 교수가 저명한 스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부탁했다. 마침 그들 앞에는 찻잔과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찻잔을 들고 있던 교수에게 스님은 찻잔이 넘쳐 흘리도록 계속  차를 따랐다. 교수가 놀라 왜 이러십니까? 물었더니, 스님이 한 말: 자네 속에 자기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데, 무슨 가르침을 바라는가? 

사람의 격은 항상 듣고 배우고, 자기 변화를 이루어감으로 달라지고 높아진다. 성경이 주어진 목적도 배우고 변화되어,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데 있다고 한다. 모두가 똑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그 진실하고 겸손하고 고매한 품격으로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경박함과 쓸쓸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날까, 자기 성찰 속에 한 해를 보내면 좋을 것 같다.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급상승 정보

포토뉴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