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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순창의 샘(76) 쌍치면 반계마을 가운데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1-01-03 07:41

평야지대라 샘이 깊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샘이 깊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물이 따뜻한 편
두레박 끈 줄에 김치통 매달아서 시원하게 보관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쌍계리 반계마을 가운데샘, 원형, 깊이 5m./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은 고려시대에 상치등방, 하치등방이라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상치면, 하치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에 상치면과 하치면이 통합되어 쌍치면이 되었다.
 
쌍치면의 진산은 철쭉제로 유명한 국사봉(國師峰, 665m)이다. 옥좌봉(玉座峰)으로도 불린다. 국사봉은 풍수지리상 임금과 신하가 조회하는 ‘군신봉조혈’ 형상이다. 국사봉이 박씨나무봉을 지나 반계마을 추령천 앞에서 우뚝 멈춰 치알봉을 이룬다.
 
쌍계리는 중앙으로 쌍치면의 젖줄인 추령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간다. 추령천을 사이에 두고 ‘금계마을’과 ‘반계마을’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두 마을을 병합해서 쌍계리(雙鷄里)로 개칭했다. 현재 쌍치면의 소재지가 됐다. 1971년 행정분리 시 반계리(潘鷄里)로 분리되었다.
 
금계(錦溪)는 쌍치면에서 제일 큰 마을이다. 뒷산의 형상과 마을이 ‘방계유추형(放鷄遊雛形)’으로 암탉이 병아리를 데리고 자유롭게 노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반계(潘溪)는 ‘금계포란형(錦鷄胞卵形)’으로1592년 임진왜란 때 옥구지방에서 이거해온 제주고 씨 한 사람이 맨 처음 터를 잡아 10대 이상을 면면히 살아오면서 지금도 고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가구 수가 옛날에는 60여 호의 대촌이었다. 이 마을에는 임진왜란을 피하여 이곳에 이주한 제주고 씨가 10대 이상을 면면히 살아오면서 지금도 고 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2005년도에는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사봉에서 증증히 낙맥하여 해발 504m 고지에서 일맥이 동남으로 진룡, 치알봉에서 개장 덕가리봉에서 좌로 낙맥 호두등 범대미산 중턱에 열락정이 있어 발아래 추령천의 경치와 눈 아래 쌍계리가 들어오며 금평 평야의 만리지풍이 들어오는 풍광 좋은 곳에 정자가 있다.
 
정자 아래 100m 전방에 반계 가운데 샘이 있다. 옛날에는 밭 가운데 있었는데 현재는 가정집과 붙어 있다.
 
이곳이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샘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 밑 부분에서 3m 정도는 돌로 쌓아올리고 그 위엔 원통 시멘트를 2m정도 올려놓고 물을 관리한 샘이었다.
 
반계마을 일부가 가운데 샘을 이용하여 생활용수로 활용하였다. 옛날에는 샘이 깊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곤 했다.
 
샘이 깊다보니까 샘물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편이어서 여름에는 주위 사람들이 우물을 냉장고와 같이 사용했다. 그 시절에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두레박 끈 줄에 김치통을 매달아서 시원하게 보관하면서 먹었다. 그렇게 매달아 놓으면 약간 오랜 시간 김치가 시어지지 않고 싱싱한 김치를 먹을 수 있기에 많은 주민들이 우물을 활용하였다.
 
현재는 마을에 수돗물이 보급되어서 반계 가운데 샘은 양수기를 고정시켜 놓고 물을 퍼 올려 허드렛물과 세탁물로 활용하고 있다.
 
쌍치초등학교 인근 주민들은 생활용수는 물론 빨래 물도 가운데 샘물을 이용해 왔기에 샘을 잘 관리해 왔다. 그렇기에 현재까지 우물이 손실 되지 않고 잘 보존되고 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고마움을 느낀다.
 
조상들이 마시고 살아온 우물이기에 먼 훗날까지 잘 관리하여 언젠가는 다시 이 우물을 먹고 살리라 생각하고 영구히 잘 관리하기 바란다.(출처. 순창문화원)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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