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9일 목요일
뉴스홈 연예/문화
[기획] 남원의 샘(11)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 노치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1-02-01 09:17

당산제 지낼 때 동네 우물을 퍼낸 후 대나무와 금줄을 둘러서 마을 사람들과 외부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
백두대간과 지리산 둘레길이 통과하는 구간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노치샘 찾아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노치길 81-1 노치마을 노치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는 본래 남원군 상원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덕리와 노치리를 병합하여 회덕과 노치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덕치리가 되어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밀양박씨들이 피난 와서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중산간 지대에 있는 고랭지로서 주천면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九龍峙)가 있으며 뒤에는 산세가 가파른 덕음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 옆으로는 지리산 정령치에 발원하는 맑은 물이 구룡폭포를 이루어 원천천으로 흐른다.
 
노치마을은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들 산줄기의 높은 곳에 갈대가 많아 갈재라고 하다가 ‘갈대 노’자를 사용하여 한자식 표기인 노치(蘆峙)라 쓴 것이다.
 
노치마을은 조선 전기에 경주정씨와 경주이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와 주천면 덕치리 그리고 이백면 효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수정봉(804.7m)이 있다. 수정봉은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수정봉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날 듯 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수정봉의 노치마을에 오래 전부터 민씨들이 들어와 살았는데 그들 중에 짚신을 만들어 팔았던 민씨(閔氏)라는 가난한 거지가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거지가 죽자 동네 사람들이 그를 묻어 주려고 하였으나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묻을 만한 곳이 없었다. 눈 덮인 산을 헤매어 시체를 매장하려는데 신기하게도 시체의 관이 알맞게 들어갈 정도로 눈이 녹아 있는 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그 자리가 용(龍)이지만 주인이 없는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이 묘를 쓴 뒤부터 그 후손이 번창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묘에 호화롭게 석물을 세우고 보수를 한 뒤로는 자손들이 뜻밖에도 나쁜 일을 당해서 다시 석물들을 없앴더니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돌이 무거워 학이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산에 보답하기 위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음력 1월 1일 밤 12시에 주산제(主山祭) 곧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 전 자손이 없던 마을 노인 두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전답을 동네 당산 답(沓)으로 기증을 하여, 마을 주민들이 두 노인을 위해 해마다 7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다가, 3년 전부터 당산제를 7월 백중으로 옮겨서 지내게 되었다.
 
당산제를 지내는 날은 모든 사람이 문밖출입을 삼가고 비린 것을 먹으면 안 된다. 또 상주집을 제외한 모든 집 대문에 금줄을 쳤다. 특히 제주들의 집에는 마당에서 부엌까지 황토를 깔아 놓는다. 옛날에는 정성이 부족하면 호랑이가 동네 개를 물어갔다고 한다. 당산제를 지낼 때 불을 켜놓으면 정월 대보름날까지 그대로 놓되 한밤중에라도 꺼지면 즉시 다시 켜놓았다고 한다.
 
노치마을 당산나무로 수령 500년의 소나무가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7월 백중에 온 주민이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 제사를 올리고 마을의 평안과 안위를 기원하는 마을 수호수로 여겨 정성껏 관리하고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회관 가기 전 좌측 길을 따라 100여 미터를 올라가 우측 길로 돌아 좌측에 샘이 위치하고 있다.
 
샘의 형태는 사각형으로 깊이는 110cm, 가로 130cm, 세로 130cm이다. 수위는 90cm이고 수온은 15℃로 매우 차갑다.
 
지표면에서 약 1m 깊이로 굴착하였는데 바닥은 암반이고 밑바닥에서부터 넓고 평평한 자연석 석재를 쌓은 사각구조이다. 뒤쪽 판석은 크고 넓은 것을 사용했으며 앞쪽은 폭이 좁은 석재를 사용하였다.
 
판석의 길이는 130cm, 폭 120cm, 두께는 18cm내외이다. 샘 위쪽에도 반 덮개 형식으로 넓은 판석을 설치하였다. 샘 외곽으로 대리석 보호각을 세웠는데 사각형 구조이며 전체를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앞쪽은 팔각기둥, 뒤쪽은 석축을 높게 쌓아 장방형의 석재를 사용하여 위쪽으로 판석과 지붕을 씌웠다.
 
옛날 당산제를 지내기 한 달 전에 제주로 축관, 헌관, 밑주비(음식 장만하는 집)를 선정한다. 이들은 먼저 동네 우물물을 퍼낸 후 대나무와 금줄을 둘러서 마을 사람들과 외부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당산제를 지낼 때는 오전에 금줄을 쳐놓은 우물물로 음식을 마련하여 당일 밤 12시에 뒷당산(할아버지 당산)에서 먼저 제를 지내고 바로 내려와서 우물에 친 금줄을 걷어다가 마을의 조산에 쳤다.
 
샘 뒤쪽으로 수령이 100여 년 된 향나무가 있어 노치샘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윽한 향을 더해준다. 특히 백두대간과 지리산 둘레길이 통과하는 구간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노치샘을 찾고 있다.(출처. 남원문화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dhlee3003@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