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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샘(13) 수지면 내호곡마을 귀내샘, 쌍샘, 양지뜸샘, 지선고개샘, 외호곡마을 개인 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1-02-03 08:45

당산제를 지내고 나면 이곳에서 샘굿을 하였는데 당산제가 사라지면서 샘굿도 맥이 끊겨
전통방식의 축조기술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민속자료로 가치가 높아
외호곡마을 개인 샘은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나와 지금도 식수와 허드렛물로 사용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2길 1. 귀내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는 외호곡리, 내호곡리, 신덕리로 이루어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외호곡리, 내호곡리, 양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호곡리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가 되었다.
 
호곡리(好谷里)의 처음 이름은 ‘호음실’이었다고 한다. 견두산(犬頭山)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마을까지 들린다 하여 ‘호음실’이라 했다. 이 마을은 견두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원래 견두산은 ‘호두산’이라 칭하였다. 이것은 산봉우리의 형태가 범의 머리와 흡사하게 생긴데서 유래된 것이나 일제강점기 ‘범 호(虎)’자 대신 ‘좋을 호(好)’자로 바뀌어 마을 이름이 호곡(好谷)이 되었다.
 
이후 마을이 둘로 나뉘면서 ‘안홈실’, ‘밧홈실’이라 하였고 행정구역 개편과 동시에 한자로 바뀌면서 바깥 외(外) 자와 좋을 호(好) 자를 써서 밧흠실을 ‘외호곡’이라 칭하게 되었다.
 
내호곡마을 귀내샘, 쌍샘, 지선고개샘, 양지뜸샘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 마을은 인조 때 견두산 아래 개금사 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사찰의 신도인 진주 강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후 경주김씨 김원여가 외가인 남원으로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였고, 그 후 화순최씨 등이 이주해 오며 마을이 크게 형성되었다.
 
옥산재(玉山齋)가 위치한 내호곡마을은 죽산박씨(竹山朴氏)의 집성촌이다. 옥산재는 오랜 전통의 촌합형 서당으로 당시 남원도호부 수지방의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이었다. 산수가 수려하여 많은 선비들의 심신 휴양 및 학문 교류의 장소로 널리 알려졌던 곳이었다.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지낸 박문수는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고려의 충신들과 개성 두문동에 들어가 은둔하다가 김씨 부인에게 “나는 고려에 누를 끼쳐온 충신가문의 자손으로 절의에 죽음은 당연하나 그대는 고향으로 내려가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자손을 이어가도록 하오” 하고 남원 초리방으로 내려 보내 초리에 살았다.
 
내호곡 마을에 처음 정착한 고려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박문수의 후손 박시채(박문수 12세손)가 조선 숙종 때 집안에 재화가 끊이지 않자 아들 4형제와 당질 한 분을 데리고 호곡으로 이주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내호곡마을에는 4개의 샘이 있다. 첫 번째 귀내샘은 내호곡 마을회관 들어가기 전 도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는 우물 정(井) 자형의 바가지 샘이다. 샘의 형태는 사각형이고 깊이 193cm, 가로 172cm, 세로 172cm이다.
 
지표면에서 약 2m 깊이로 굴착하였는데 바닥에 자갈을 깔고 자연석과 다듬은 석재를 사각으로 쌓았다. 지상부는 가로 170cm, 세로 170cm, 두께 25cm 내외의 석재를 우물 정(井) 자로 결구했다.
 
본래 귀내샘은 길 아래쪽에 있었으나 2014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옮겼는데 본래의 석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복원했다.
 
이 마을이 번창했을 때는 110여 호가 살던 대촌으로 정월대보름이면 모든 사람들이 나와 당산제를 지냈다. 당산제를 지내고 나면 이곳에서 샘굿을 하였는데 당산제가 사라지면서 샘굿도 맥이 끊겨버렸다.
 
옛날에 큰 향나무 한 그루가 샘 옆에 명물로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주변이 소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마을. 쌍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쌍샘은 죽산박씨 종가 남서쪽 안산 아래 30cm 간격을 주고 있는 2개의 샘이다. 좌측 샘의 깊이는 84cm, 가로 90cm, 세로 100cm이며 우측 샘의 깊이는 100cm, 가로 82cm, 세로 88cm이다. 수위는 양쪽 모두 38cm 내외이다.
 
바닥은 암반으로 되어 있고 옆 내부는 콘크리트 구조이며 위쪽에 넓은 판석을 덮개로 삼았다. 처음에 아래쪽 샘을 먼저 만들었으나 물이 좋지 않자 위쪽에 다시 샘을 만들면서 지금의 쌍샘이 되었다.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2길. 양지뜸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쌍샘에서 약 200여 미터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측 길 아래로 또 하나의 샘이 나오는제 양지바른 곳에 있다 하여 양지뜸샘이라고 한다.
 
샘의 형태는 사각형이고, 깊이는 103cm, 가로 141cm, 세로 200cm로 하나의 우물을 두 곳으로 나누어 아래쪽은 허드렛물로 사용하고 위쪽은 식수로 사용했다. 그때만 해도 30여 호가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2길. 지선고개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지선고개샘은 마을 안쪽 내호곡 2길 황기남씨 집 안에 있는 우물로 깊이는 240cm, 가로 118cm, 세로 118cm 이며 지상부는 우물 정(井) 자 형으로 결구하였다.
 
석재가구 한 변의 길이는 173cm 내외이고 폭 60cm, 두께는 15cm이다. 지표면에서 약 2미터 깊이로 굴착하였는데 밑바닥은 암반을 이루고 있다.
 
내벽은 정방형의 석재를 결구하여 쌓아올린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축조방법은 이끼가 껴서 확인할 수 없다. 지상부는 다듬은 장대석을 십자맞춤으로 결구한 우물 정(井 ) 자형 귀틀이다. 이 샘은 일정하게 다듬은 석재를 이용하여 전통방식의 축조기술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민속자료로 가치가 높다.
 
외호곡마을 샘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외호곡길 17-17. 외호곡마을 개인 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 외호곡 정인복씨 집 마당에 있는 사각샘으로 주변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해 왔다.
 
샘의 형태는 사각형으로 깊이는 100cm, 가로 82cm, 세로 96cm이다. 바닥은 암반으로 안쪽 바위틈에서 흘러나온다. 샘 내부 양쪽은 막돌로 벽을 쌓고 일부는 콘크리트 구조이다.
 
수위는 70cm를 유지하고 있는데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끊이지 않아 지금도 식수로 사용하고 허드렛물로 이용하고 있다.

정인복 할머니가 처음 시집와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부뚜막 조왕중발에 정안수를 올리는 일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샘이나 우물의 첫 물을 떠다 부뚜막 뒤쪽이나 시렁에 있는 조왕중발에 물을 갈아주며 가족의 무병을 빌고 때로는 화재를 예방하는 의미 등을 담고 있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던 부엌신앙이다.(출처. 남원문화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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