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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착한 척 하지 않기'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3-05 00:41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하나님 앞에서까지 착한 척 하지 않기]
(시편 54편) 

1. 

하나님의 도우심을 누려가는 비결 중 하나가 있다.
'기도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기도를 제법 해 보았지만 
기도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생각되었다. 

2. 

기억나는 자발적인 기도는 
젊었을 때 기도모임에 가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대표기도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면서 기도를 배웠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소위 '거룩한' 기도였다. 

그 대표기도들을 듣고 집에 와서 
그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매일 기도시간에 기도했다. 
쏟아지는 잠을 이겨가면서 힘들게 기도했다.

기도는 힘들었다. 

3. 

그렇게 기도를 배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대표기도 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밤 기도와 새벽기도와 가끔씩의 철야기도까지
점점 많은 기도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가지는 기도시간이었고 
공동체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그 모든 기도에 다 참여하게 되었다. 

나라와 민족과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제법 괜찮은 기도자라는 은근한 자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4.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기도에 온전히 집중했는데
나의 내면이 변하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다.

여전한 분노와 욕심과 탐욕과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과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열망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감사하다 해야 할까?
기도 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그 모임에서 중요한 위치가 되어가고 있었음에도 
나는 말씀 묵상을 하고 있었다. 

기도 모임의 다른 사람들은 말씀 묵상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때로 쉬기도 했고 때론 빠뜨리기도 했지만
20살에 배운 말씀 묵상을 힘겹게나마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기도하고 있음에도 
나의 욕망과 교만과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 
전혀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서 
말씀의 중요성을 더 깨닫게 되었다.

5. 

말씀에 더 집중했다.
말씀 속에서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묵상하는 과정을 통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기도에 대해서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갖고 있던 틀을 고집하지 않으니
성경에서 기도하는 기도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읽은 다윗의 기도가 
'새롭게' 보인 대표적인 기도였다. 
다윗의 기도와 나의 기도의 차이가 보였다. 

6. 

다윗의 기도는 충격적이다. 
시편 54편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첫째, 고발 (1-3절)
둘째, 저주 (4-5절) 
셋째, 감사 (6-7절)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거룩하게 해야 할 기도에 '고발'이라니,
착하고 예쁘게 기도해야 하는데 '저주'라니, 
게다가 고발과 저주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라니, 
내가 하던 기도와 너무 달라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7. 

나는 철야기도도 하고 있지 않고 
새벽 기도도 하지 않으며
밤 기도도 하지 않는다.

정말 아무 기도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각을 잡고 기도 모임을 만들어서
공식적으로 기도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왔던 그 어느 때 보다 
더 많은 기도와 더 깊은 기도와 
더 참된 기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을까?

8. 

기도에 대한 정의부터 정확하게 내려야 할 것 같다.
백과 사전에서 기도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빎. 또는 그런 의식'

한자로 '기(祈)'는 '빌다' 라는 의미이고
'도(禱)'라는 글자도 '빌다'라는 의미다. 

기도란 단어의 의미가 그냥 '빌다'는 의미다. 
이게 기독교 신앙에서의 기도가 맞을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아마 기독교 신앙을 우리 나라에 자리 잡을 때 
무속 신앙에서 사용되었던 '기도'라는 단어를
기독교에 그대로 차용해 온 것이 아닐까 싶다.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는 결코 단순히 '비는' 행위가 아니다.
그럼 기도가 무엇일까?
신자라면 대부분 그 의미를 알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다. 

기도한다면 하나님께 빈다는 개념보다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개념을 가져야
그나마 올바른 기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9.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우선,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전체가 기도하는 시간이다.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의문을 품는다.
의문과 질문을 그대로 노출한다. 
생기는 의문과 질문을 주님께 물으면서 
다시 본문을 읽고 생각한다. 

왜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는 것일까?
대화가 대부분 질문하고 대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 '비는 행위'를 하기보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싶기 때문에 질문한다. 

하나님의 대답을 들어야 '대화'라고 말할 수 있으니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진 후에
본문을 다시 꼼꼼히 읽는다. 
읽는 행위가 단순히 읽는 행위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대답을 듣기를 기다리는 행위다.

성령은 어떻게 말씀하실까?
소위 '음성'을 귀로 들려주시는 것일까?
아니면 '예언'이라는 은사를 통해 특별한 사람에게만 말씀하실까?
그럴 리가 없다.

모든 신자는 다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말씀을 '깨달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의문을 품었던 내용에 대해 깨닫고 
자신에게 적용하게 되는 모든 과정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과정이라 믿는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해석하게 하시고 
적용하게 하신다면 
그 모든 과정은 기도의 시간 즉 하나님과의 대화의 시간이 맞다.

10. 

그 뒤에 나는 일상을 살면서 기도한다.
아침에 묵상한 말씀이 일상 속에서 시시때때로 생각난다. 
말씀의 가치관이 조금씩 일상 속에서 적용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게 조금씩 말씀의 능력에 이끌려 살아간다. 

일상이 기도가 된다. 

물론 매일 이런 삶이 되는 건 아니지만
기도 시간만 많이 가졌던 예전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이 기도가 된다. 

11.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착한 척'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착한 척'의 대명사였다.
어릴 때부터 말 없이 부모님 말 잘 듣는 아이였고,
어른이 되면서도 그 성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아서 
왠만하면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착함만으로는 견딜 수 없는 사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기독교인은 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죄책감까지 더해져서 너무 괴로웠다.

말씀을 제대로 묵상하기 시작하면서,
말씀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다윗과 시편 기자들을 정직하게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형적인 '착함'과는 거리가 먼 기도를 했다.
적어도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 동안은 그랬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원수를 저주하기까지 하고 
자신을 지켜주심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기도를 하는 시인들은
결코 착하다 말하기 어려웠다. 

나도 점점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동안에는,
적어도 기도하는 시간 동안에는 그랬다. 

12. 

신기하게도 나의 감정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억울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또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냥 나답게 나대로 살아가면 되겠다는
자연스럽고 행복한 감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아들들과의 관계에서도 
내 뜻대로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요구하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착해야 해서가 아니라, 
내 감정이 자유로워지니 상대의 자유에 대해서 
인정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겨서다. 

나는 말씀을 솔직하게 묵상할 뿐이고,
말씀 앞에서 의문과 질문을 솔직하게 가지고 쏟아놓을 뿐이고,
성령이 주는 깨달음을 얻고 기뻐할 뿐인데,
때론 고발하고 저주하는 시인들의 기도를 따라할 뿐인데 
나의 마음은 이렇게 너그러워지고 있고 
행복을 누려가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착한 척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에게 준 놀라운 복이라고 밖에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이런 자유를 준 말씀이 있어서 감사하고 
이런 기도의 삶을 누려가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말씀을 매일 붙들고 살아갈 수 있음에 또한 감사한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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