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우리가꿈꾸는교회 김병완 담임목사.(사진제공=우리가꿈꾸는교회) |
안구 교정
사팔뜨기. 두 눈이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증상이다.
나는 어릴 때 눈이 사팔뜨기(사시)였다. 어머니 말로는 아기였을 때부터 공사장 한 켠에 옆으로 눞여놓고 키워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셨다. 내 어릴 적 사진들을 자세히 보면 초점이 서로 맞지 않는 모습이 종종 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간혹 친구들이 눈에 대해서 물으면 그렇게 싫었다. 부모님은 병원에 데려가 수술을 해주셨고, 더 이상 나는 사팔뜨기가 아닌 사람으로 새롭게 살 수 있었다.
모든 수술이 그렇듯, 수술 후 눈은 물리적으로 제자리를 찾았지만 두 눈이 같은 곳을 인지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수술이 잘된 것으로 생각했다. 거울을 봐도 더 이상 눈이 돌아가지 않았고, 사람들도 더 이상 나를 볼 때 갸우뚱 거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를 갔을 때 일이다. 선임이 나를 골똘히 보더니, 불러서 물었다.
“너 사팔뜨기냐?”
언제부터인가 나의 눈은 다시 힘을 잃기 시작했다. 멍하게 있을 때, 글자를 읽을 때 나는 한쪽 눈만 사용해서 보았고, 나머지 한 쪽이 자연스럽게 방향을 잃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이런 증상을 ‘조절모음 부족’이라고 부른다).
신학교를 가면서부터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지하철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버스에서도 앉아있거나, 서있거나 책을 읽었다. 공공장소에서 책을 볼 때 나는 항상 책을 얼굴 앞까지 올려서 보았다. 목이 편한 것도 있었지만, 혹시나 눈이 방향을 잃은 것을 누군가 볼까 싶어서였다.
설교자가 되고 나서도, 처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설교의 내용도 아니고, 은혜를 끼쳤는가도 아니고 혹시나 누군가 내 눈이 풀리는 것을 발견할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원고를 읽을 때 더 고개를 숙였다.
사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라 나는 잘 인지를 못했었는데, 나의 눈은 ‘복시’라는 증상을 갖고 있었다. 사물을 볼 때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둘로 상이 나눠져서 인식을 하는 것이다. 어쩐지 눈이 금새 피로해지고, 머리에 두통이 잦았다.
한번은 증상이 자꾸 심해지는 것 같아 이 분야에서 가장 정평이 나있다고 하는 의사분을 찾아갔다. 병원에선 10가지 정도 되는 검사를 다양하게 하고는 마지막으로 의사분의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첫 마디에 마음이 울컥했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내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만으로 대단한 위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의사분은 안경을 끼우시고 렌즈를 여러개 교체하시면서 점점 내가 보는 두 개의 세상을 하나에 가깝게 만들어주셨다. 나는 조금만 더 좁혀주시기를 구했다.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시고는 내게 그 안경을 벗어 보여주셨다. 두 개의 렌즈는 거의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지금은 시술도, 특수안경도 착용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조금 피곤하겠지만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분의 얼굴이 너무 자애로웠기 때문에 마음이 더 울컥했다.
“앞으로도 세상을 두개로 보아야 한다니..”
병원을 나오며 눈물이 났는데, 그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며 목구멍에서부터 신앙의 고백이 터져나왔다.
“그래, 나는 비록 세상을 두개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만, 한 분 하나님을 보았다. 세상을 하나로 보는 멀쩡한 눈을 가지고도 한 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 한 분 하나님을 보고 걷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분을 보았고, 때론 빙빙 돌면서도 결국에는 다시 그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더 이상 교정이 필요없다. 주께서 뜨게하신 영안으로 걸어가는 인생은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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