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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교회 조태성 목사,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쉬운 방법'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4-15 05:00

새생명교회 담임 조태성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쉬운 방법.

1. 
하루는 새벽 2시 40분 즈음이었다. 잠깐 자고 6시 즈음 일어나야 했다. 문제는... 누웠지만 잠을 못 잔다. 다시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마음으로 말씀드린다.
 
"사랑하는 성령님, 지금 자도 조금밖에 못 자는데요."
 
그래도 은은하게 지속적으로 성령님 내 마음을 두드리시는 감동이 느껴진다. 여러분들이 종종 경험하시는 은혜일 것이다. 드물지만 내게도 그렇게 교제 나누자고 요청하신다. 기도하라는 거다. 종종 경험하다보니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안다.
 
2.
예전에 뭘 모를 때는 무슨 큰 기도제목을 나눠주실 것으로 오해하고 이상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물론 예수님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중보적인 기도제목을 나눠주시는 경우도 있으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아니다.
 
"그냥 나와 좀 더 교제하자."
 
그런 의미로 기도라는 수단을 사용하신다. 기도를 통해 좀 더 함께 있고 싶으셔서다. 그 사랑의 마음을 알고나니 송구하고 감사해진다.
 
3.
'내가 뭐라고 이렇게 좋아해주실까. 사랑하실까.'
 
그럴 때는 아무 말도 필요없다. 그냥 무릎 꿇고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르면 된다. 안겨 있으면 된다. 가만히 있으면 된다. 이때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그 방법을 나누고 싶다. 쉽게 성령님과 교제 나누며 기도하는 방법 말이다.
 
4.
<첫째, 성령님을 바라본다.>
 
눈 감고 눈을 뜬다.
세상으로 끌려가는 눈을 감는다.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눈은 감는다. 대신 믿음의 눈을 뜬다. 믿음의 눈으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식하며 바라본다. 내가 무릎 꿇고 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 나를 둘러싸고 계심을 바라본다.
 
5.
<둘째, 성령님을 듣는다.>
 
귀를 닫고 귀를 연다.
분주한 세상의 소음은 차단한다. 복잡한 마음의 소리를 차단한다. 대신 믿음의 귀를 연다. 귀를 기울인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 내 방에 가득 영적으로 머무시고 채우시는 성령님께 믿음의 귀를 기울이는 거다.
 
6.
<셋째, 시간을 보낸다.>
 
그때그때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성령님을 바라보고 듣고자 집중하다보면 예수님 앞에 서 있게 된다. 성령님의 사역이시다. 
 
어느새 눈물이 흐른다. 무릎 꿇고 조용히 예수님을 마음으로 부르고 있는 나를 본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해주신 예수님 사랑에 어쩔 줄 모르겠다. 그 사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내 삶과 모습에 애통하다. 계속해서 나의 부족한 말과 글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감격이 차오른다. 그 감격과 사랑에 머물러 있다.
 
7.
그 사랑의 임재 안에 머물다 보면 이 말씀이 경험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어떤 때는 시간이 조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두 시간이 지나가 있다. 드물게 신기한 반대의 경험도 한다. 두 시간 넘게 기쁨의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세상 시간으로는 15분도 안 지났다. 마치 세상 시간이 멈추고 내가 멈춘 시간속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다.
 
8.
사실 세상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10분이든 2시간이든 성령님께서 충분함을 느끼시는 시간이면 된다. 예수님께서 충분함을 느끼셨으면 된다. 그러나 언제나 내 영혼도 충족감을 얻게 하신다. 영혼의 기쁨을 얻고 누리며 잠든다.
 
일정때문에 일찍 준비해야 하는데 결국 잠을 3시간도 못 잤다. 그래도 별로 피곤하지 않다. 아니 몸은 좀 피곤해도 괜찮다. 성령님의 친밀하심을 확인했으니 상관없다.
 
9.
자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보이는 듯하다. 그 앞에 내가 서 있다. 예수님께서 위에서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시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신비다. 보지 못한 예수님을 본 것처럼 믿는 신비. 보지 못한 주님을 나와 동행하시며 교제 나눠주심을 얻고 누리고 있는 이 신비한 일들이 놀랍다. 감동이다. 이 모든 신비한 일들의 중심에 성령님께서 계신다.
 
10.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모두에게 십자가의 사랑이 신비하게, 충만하게 경험되시기를 소망한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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