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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이삭의 희생'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4-16 05:00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이삭의 희생

노년에 얻은 독자를 희생의 제물로 바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는, 기독교 정신을 이해하는 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시가 있기 전 아브라함의 삶은 최전성기의 삶이었다. 그는 강했고 부했고, 주변 왕과 군대장관이 나서서 화친의 조약을 맺자고 할 정도였다. 그때 아브라함은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그 속 뜻은, 아브라함은 영생, 가장 충만하고 복된 삶을 살고 있다는 표였다.

세상 종교라면, 아브라함의 생애는 거기서 끝나고 완성될 것이다. 자식 없이 살았던 그들 가정이 주변이 두려워할 정도로 막강한 가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함께 하신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시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독자를 희생의 제물로 바치라 지시하였다. 

그런 지시 속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기독교는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을 말한다. 사람의 행복, 세상의 행복을 넘어 추구할 목적과 가치가 있음을 가르친다. 독자를 희생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는 아브라함의 행복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엄청난 지시는 왜 주신 것일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생명을 주고 받는 관계로 불러 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 깔려 있다. 세상을 창조할 때,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실 것이 전제되었다. 사람의  타락과 그 결과 죄와 죽음의 존재가 된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창세 전에 자기 독생자를 내어줄 준비를 하셨다.

자기 독자를 내어 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브라함은 알았을 것이다. 이삭을 희생하라는 지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계시하는 방편이었다. 더 나아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이 서로 생명을 주고 받는 관계 속으로 불러 들이는 것을 원하신 것이다. 얼마나 깊고 오묘한 사랑의 관계인가!

인간은 늙고 쇠하여 간다. 늙어가는 인간을 세상에서는 어떻게 대하는가? 변두리 인생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 인간이 하나님과 생명을 주고 받는 관계 속에 살 수 있다는 것은 피조물 인간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희생하며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사랑의 관계 속에 살자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주님의 기도였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대상을 마음에 품고 산다. 사랑하는 그 사람은 항상 내 마음에 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런 관계 속에 산다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영광 아닌가? 창조주 하나님이 그 피조물과 서로 안에 거하는 것은, 사랑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예수님도 자기 제자들에게 자기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하라"고 하셨다.

엄청난 사랑을 요구하시는 내면에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응답할 것을 가르친다. 독생자를 희생하신 사랑에 우리는 우리의 이삭을 바침으로 응답할 것을 요청하신다. 주님 자신이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명을 찾으신다. 먼저 그 사랑을 베푸시고 하는 요구이기 때문에 부당하지 않고, 그런 사랑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하고, 응답하여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지시와 뜻 속에도 우리를 배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 있다.

사람이 마땅한 사랑의 대상을 갖지 못하면, 가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 때, 비로서 채움과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허한 마음으로 다른 것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일생을 허기전 영혼으로 살다 끝날 수도 있다. 사람이 돈에 집착하고, 이성적 사랑에 연연하는 것은, 그 마음 속 채워지지 않은 것의 반영 또는 증거라 생각된다.  

아브라함은 자기 독자를 희생의 제물로 바친 후에 하나님과 목숨을 주고 받는 사랑의 관계로 들어 갔다. 하나뿐인 우리 목숨이 무엇을 위해 드러지는가는, 결단과 책임이 따르는 문제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행복을 넘어,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하신 하나님과, 목숨을 주고 받는 관계의 삶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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