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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길위의교회 김선주 목사, '향수에 대한 향수'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4-18 05:00

대전 길위의교회 김선주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향수에 대한 향수 >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아내와 단 둘이서 ‘자산어보’를 보았다. 그런데 아내가 연신 키득거린다. 영화가 끝나고 아내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키득거렸냐고. “흑산도에 유배 간 정약전이 끝없는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알아보려고 좌충우돌 하는 게 당신하고 너무 똑같잖아.”

나도 원래 그렇다. 한 곳에 진득하니 엉덩이 깔고 앉아서 뭘 못하는 성미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하고 그걸 요리조리 살피고 탐구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좀 더 이른 나이에 세상을 알았더라면 여행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목회 그만 두고 여행 작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불뚝불뚝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여행도 삶도 모두 묶여버리고 말았다.

나이가 더 먹기 전에 코로나가 종식되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목회 그만 두고 여행 작가가 되고 싶다. 나만의 테마가 있는 여행 말이다. 종교를 테마로 하여 각 민족들이 가진 종교적 특성을 탐구하고 그들의 구원의식과 세계관,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행이 안 되니 참 답답하고 따분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럴 때 여행 사진이 담긴 컴퓨터 파일을 열어보거나 기념품들을 꺼내보는 것은 추억을 소환하기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그 중에 나를 가장 자극하는 건 사진도 아니고 기념품도 아니다. 어떤 시각적인 기념품보다 나를 특별하게 자극하는 것은 향수다.

8년 전에 이집트의 향수 가게에서 구매한 향유(香油)가 있다. 여러 종류의 향유를 구매하였지만 지금 내게 마지막 남은 향유는 페퍼민트 200ml 작은 병 하나다. 예배 전에 양쪽 귀 뒤에 한 방울씩 찍어 바르고 마사지 해주면 코가 시원하게 뚫리고 머리가 맑아져서 설교할 때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내가 이 향유에 특별한 정감을 갖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성경의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야기가 이 향유를 경험하면서 새롭게 열렸기 때문이다. 향유는 물이나 알코올을 한 방울도 섞지 않은 순수한 꽃기름이다. 지금이야 꽃의 대량 재배와 기계 추출로 인해 예전보다 쉽게 향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고대 팔레스틴 사막 지역에서 야생화를 채취하고 그것을 증류하여 순정의 오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을까를 생각하면, 그것이 보통 진귀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보통의 서민 가정이나 중산층에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값비싼 향품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향유를 경험해보기 전에는 성경의 향유가 단지 값비싼 물건의 상징, 예수님을 향한 한 여인의 전적인 자기희생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향유를 직접 경험하고 나니 그 옥합의 의미가 새로워졌다. 옥합을 깨뜨렸을 때의 향이 그 공간에 얼마나 진동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었다. 예수님을 향한 한 여인의 순정이 온 세상을 흔들 만한 향기로 충만했던 것이다.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향유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구글링을 통해 그 향유 마켓을 드디어 찾아내고 말았다. 마켓 이름이 The Golden perfume palace다. 카이로 외곽, 기자의 피라밋 근처에 있는 마켓이었다. 유난히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향유를 자랑하던 마켓 주인 이름이 모하메드라는 것도 알아냈다. 여러 나라에서 향유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을 구매해 보았지만 이곳의 향유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향유의 오리지널리티에 가장 가까운 것은 오직 이 마켓에서 파는 향유뿐이라고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 중 피로감 때문에 대충 지나온 그 시간과 공간이 내게 고고학적 유물보다 더 특별하게 재발견 된 것은 향유 때문이다. 이 향유를 경험하지 않고 향수를 말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인공적인 화학물질로 만든 향수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플라워 에센셜 오일, 거기에는 한 여인의 순정이 머리를 풀어 지금도 예수님의 발을 닦으며 눈물로 향기를 내고 있다. 

향유 병 뚜껑을 열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팔레스틴의 향기가 나의 발을 씻는다.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그러나 고고학적 유물이나 유적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깊이 느껴보고 싶다. 

팔레스틴의 우울과 희망, 고뇌와 구원의식이 향유의 깊은 곳에서 머리를 풀고 우는 소리가 들린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소리가 거기에 있다.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만난 여인의 눈물,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심연에서 흐르는 눈물이 거기 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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