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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길위의교회 김선주 목사, '수(數)는 영혼을 잠식한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5-02 05:01

대전 길위의교회 김선주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수(數)는 영혼을 잠식한다 >

한 달에 한 번 나는, 칭찬을 듣거나 훈계를 듣는다. 약간의 고혈압과 당뇨가 있어서 약을 처방받기 위해 동네 병원에 간다. 의사는 나를 관리한다. 나는 의사가 내 준 숙제를 제출해야 한다. 혈압과 당뇨 수치를 체크한 기록지를 보여준다. 간혹 간기능 검사와 혈액 검사, 소변 검사 등을 한다. 그 결과를 통해 의사는 내 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약을 처방해 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칭찬을 듣거나 훈계를 듣는다. 수치가 낮거나 높은 데 대한 의사의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의심한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들이 과연 내가 필수불가결하게 먹어야 하는 약인지, 아니면 병원의 상업적 목적에 의해 과도하게 처방된 약인지, 의심을 거쳐 복용한다. 중복된 성분이 있는 약은 없는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각각의 알약이 가지고 있는 부작용에 대해 알아본다. 의사의 내 몸에 대한 이해 방식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의 출발점은 현대의학의 몸에 대한 수학적 인과법칙이다.

내 몸의 상태를 의사는 수치로 이해한다. 혈압 수치, 당뇨 수치, 간 기능 수치, 당화혈색소 수치, 뇨단백 수치, 수치, 수치, 수치, 그놈의 수치가 나에게 수치를 준다. 내 몸에 대한 건강 상태를 기계가 보낸, 수치화된 정보에 의해 판단하는 게 못마땅하다. 한 사람의 고유한 생명이 숫자로 읽히고 숫자로 이해되는 게 못마땅하다. 내 몸은 숫자에 의해 해부학적으로 수술대 위에 눕혀진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영혼을 담지한 웅숭깊은 생명이기를 원한다. 그런데 의사는 내 몸을 숫자의 조합으로만 이해하는 것 같다. 그게 불쾌하다. 

“만물은 수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던 피타고라스교의 교리가 현대문명의 우상이 되어 버렸다. 사람도, 자연도, 심지어 신(神)마저도 수(數)로 정의하고 이해하는 짓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현대문명의 진짜 이단은 수(數)로 모든 걸 이해하고 설명하려 드는 패러다임일지도 모른다. 수학을 지질이 못하고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은 자신을 숫자로 이해하는 이 세계가 많이 불편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만한 영화가 있다. 유대인 천재 감독, 코엔 형제(조엘 코엔 & 에단 코엔)의 <시리어스 맨 Serious man>이다. 유대인 거주지역에 살고 있으며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래리에게 악재가 연이어 닥친다. 아내가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고 아들이 꼴통 짓을 하고, 딸은 성형수술을 하기 위해 아빠의 지갑에서 돈을 훔친다. 그리고 낙제점을 준 한국인 유학생 청년이 찾아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항의한다. 자기는 강의 내용을 다 이해했는데 다만 그것을 수학적 방식으로 답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래리는 수학적 방식으로만 물리학을 이해해야 하고 답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이 학생의 항의는 계속된다. 거기다 종신직 교수 심사가 눈앞에 다가온 상태에서 심사위원에게 부정적인 투서까지 들어간다.

래리는 밀려오는 악재로 인해 피로가 겹친다. 그는 유대 사회의 전통에 따라 랍비를 찾아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상담 받는다. 하지만 랍비는 답변을 명쾌하게 하지 않다. 대신 치과의사를 상담했던 경험담을 이야기해 준다. 어느 치과의사가 환자의 치아에서 ‘도와주세요’라는 히브리어 문장을 발견한다. 그 후로 그 의사는 그것이 신의 계시인지, 그 환자가 자신에게 보내는 SOS인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한다. 그리고 랍비를 찾아와 상담을 한다. 랍비는 그 치과의사가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일상은 이전과 같이 평온한 상태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랍비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심각하고 진지한 문제는 사실 치통처럼 잠깐 왔다 사라지는 인생의 문제일 뿐”이라고.

너무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자기 인생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다. 수(數)로 셈을 하듯이 세계와 사물을 인과론적으로 보지 말라는 뜻이다. 이 메시지는 결국 래리에게 닥친 악재들이 우연한 사건에 의해 정리되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래리의 사고에 의하면 엄격한 인과법칙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우연에 의해 해결된 것이다. 그 경험으로 래리는 갑자기 평온해졌다. 그리고 세계관이 바뀐다. 수학을 몰라도 물리적 법칙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한국인 유학생의 말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의 성적 평가서에 F를 C-로 수정한다. 그리고 그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강의하며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제로는 알 수 없음을 증명한다”고.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계산해야만 알 수 있는 물리 법칙, 현대물리학의 꼭지점에 있는 괴델의 정의로 그는 강의를 마친다. 커다란 칠판에 빼곡하게 적어나간 수학공식을 다 풀어낸 결과값이 “알 수 없음”이다. 이 세계는 수학적 계산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고백이다. 

현대사회의 피로감은 수(數)에서 온다. 태어나는 순간 신생아는 고깃덩어리처럼 저울 위에 올려진다. 저울이 가리키는 숫자가 한 생명이 부칮치는 이 세계에서의 첫경험이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우리의 몸과 정신도 수로 표시된다. 키와 몸무게, 시력과 지능의 정도 들 말이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한 사람의 능력이 성적으로 수치화된다. 운전을 할 때도 시속 몇 킬로미터로 달리는지 자동차 게이지에 수로 표시된다. 연봉이 얼마인지 한 사람의 인생을 액수로 평가한다. 몇 평의 아파트에 사는지, 집의 크기를 수로 표기한다. TV가 몇 인치인지, 휴대폰 요금제가 얼마짜리인지, 아내가 입는 옷이 66인지, 77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컴퓨터 램이 몇 기가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우리는 모두 수를 먹고 마시며 수에 감염되고 수를 숭배하며 수의 노예가 된다. 수는 사람의 영혼을 잠식한다. 

종교는 수가 아닌 직관과 통찰로 세계와 존재를 인지한다. 만약 종교가 수에 감염된다면, 그것은 세계의 종말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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