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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기까지'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5-12 05:00

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기까지
(출15:13‭-‬21)

특별히 부끄러운 구원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솔직히 따져보자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하심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진작에 구원받은 존재로 살아간다 해서 구원하심 앞에 당당할 사람도 없거니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구원의 대열에 합류 했다고 부끄러운 것 처럼 이야기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옆에 한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주님께 자신의 영혼을 위탁하였기에 간혹 부끄러운 구원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평생 죄악 속에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회심했다 해서 겨우받은 구원,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한다면, 예수님과 늘 함께 지내다가 마지막 순간 배신의 길로 나선 가룟유다의 경우는 당당한 멸망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그 강도가 받은 구원이 부끄럽고 겨우 받은 구원이라면 저 역시 구원받음에 있어서 부끄러울 수 밖에 없고 겨우 얻게 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그 분의 뜻과 방식 안에서 언제나 열려있고 차별을 두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거기에 순서와 차별을 첨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질서를 위한 직분이 언제부터인가 서열을 정리하기 위한 직분으로 인식 되었고 당연히 직분에 따라서 신앙도 우위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바울은 서열을 완전히 무시해버린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구원 받음 앞에서 그 누구도 부끄럽다 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 칭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특별히 부끄럽지 않게 구원을 얻었기때문이 아니라 구원하심이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뜻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1:9)

자신의 구원받음을 두고 아무 자격 없지만 사망에서 건져주신 그 은혜를 증거할 수는 있어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해서 받게 되었다고 이야기 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에서 학대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 받을 시기가 되었고 이제 구원 받기에 적합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 중에 몇 몇 의인들이 있어서 그들의 공로로 인하여 구원받게 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이제부터입니다.

구원은 완성을 이루어야 하기때문입니다.

결코 구원은 과거형이 아닙니다.

구원은 현재 진행형임과 동시에 굳이 표현하자면 미래 완료형이 될 수도 있기때문입니다.

미래 완료라는 말은 확실한 결과를 예상하지만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가봐야 아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실에 대하여 의심하고 다시 확인해 보고 확실한지 또 돌아보고 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구원받음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미 보장된 구원이라는 판단 하에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어떠한 행위나 공로로 받은 구원이 아니라 그저 은혜로 받게 된 구원이기에 구원받은 사람 답게 현재를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이지, 지니고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보증수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이 혼인잔치를 베풀고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그들은 잔치에 참여하기 싫어서 여러가지 핑계로 초청을 거부했고 오히려 초청장을 전달하던 종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화가난 임금님은 그들을 진멸하고 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대로 잔치에 초청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미 청함의 자격을 갖추었기에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당연하다 여겼던 그들의 생각이 교만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청함받았다는 사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택함을 입을 수 있도록 청함 받은 자 답게 살아야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14)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왔지만 그 자체로 구원의 완성을 이룬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기에 구원받음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구원의 완성은 증거를 가진 나의 힘과 의지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안에서만 완성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았기에 더 이상 노예의 신분이 아닌 자유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각기 제 갈길로 흩어졌거나 이스라엘을 따라 나온 타민족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떠났다면 그들은 구원받은 확실한 증거는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만 구원의 완성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놀랍고 세상 무엇보다 기쁜 일이지만 결코 혼자만의 기쁨으로 조용히 간직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그 기쁨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주님과 함께 누려야합니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구원의 기쁨을 소유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나안으로 가야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음의 기쁨을 소유했다해서  그들 앞에는 세상이 말하는 꽃길로 가득 차 있는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광야의 고달픈 삶의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힘들 때 마다 구원받은 은혜와 그 때의 감격은 다 사라지고 다시 구원받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확인할 것은 하나님은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 하신다는 것과 우리의 능력이 아닌 오직 주님의 힘으로 성결한 주님의 처소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받았음에 안주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기까지...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 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하였더라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출15:13‭-‬21)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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