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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벧엘교회 손희선 목사, '밥이 없는 식당'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10-28 05:00

열린벧엘교회 담임 손희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밥이 없는 식당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추어탕을 먹고 싶답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저도 추워탕(?)이 먹고 싶었습니다. 식당을 찾아갔는데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한 번 갔었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았지만 우리가 찾아간 곳엔 횟집만 있었습니다. 다시 근처에 있는 추어탕 집을 검색했습니다. 어느 블로그에 맛집으로 추천된 식당이 있었습니다. 차를 몰고 그리로 갔습니다. 하지만 근처 골목을 다 뒤집어도 추어탕 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식당이 있어야 할 자리에 조그만 카페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결국 추어탕을 포기하고 저희는 아예 다른 식당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성도님 한 분이 추천해 주신 식당이 생각나 그리로 갔습니다. 다행히 그 식당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근처에 주차를 하고 맛난 점심을 기대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모든 테이블이 이제 막 손님들이 먹고 떠난 자리처럼 어수선했습니다. 이모님 한 분이 저쪽에서 혼자서 테이블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으려 하자 이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밥이 다 떨어졌습니다.” 점심시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밥이 동났다는 것입니다. 맛집인 건 알겠는데 어떤 맛인지도 모른 채 결국 식당을 나섰습니다.

그날따라 점심 먹기가 너무 팍팍했습니다. 근처에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건너편에 콩나물 국밥 집이 보였습니다. 아내도 지쳤는지 동의했습니다. 콩나물 국밥 둘을 시켰습니다. 드디어 국밥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다른 테이블들은 콩나물 국밥에 넣을 계란을 주시는 것 같은데 저와 아내만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계란 하나가 바위는 상하게 할 순 없어도 마음은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순대를 넣은 콩나물 국밥을 시켰는데 아무래도 순대를 조리할 때 제일 마지막에 넣었는지 아직 덜 익은 식감이 느껴졌습니다. 한 마디로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그 날 저녁, 낮에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회상해 보았습니다. 그 날 저는 세 종류의 식당을 갔습니다. 하나는 “변해버린 식당”입니다. 처음에는 분명 추어탕 집이었는데 이제는 횟집으로 변하고, 카페로 변했습니다. 또 하나는 “밥이 떨어진 식당”입니다. 밥을 먹으러 왔는데 밥이 없는 식당입니다. 끝으로 “맛없는 식당”입니다. 밥은 있지만 뭔가가 빠져 있고 익기도 충분치 않은 맛없는 식당입니다.

어쩌면 이 세 가지의 모습이 모두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린벧엘교회를 개척하고 17년을 지내오면서 처음의 모습에서 많이 변해있는 나를 봅니다. 주일이면 따뜻한 밥에 배부를 것을 기대하고 오시지만 이제는 아무리 빡빡 긁어도 더 이상 맛난 밥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나의 빈약함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겨우겨우 어떻게 밥을 지었지만 묵상이 덜 익고, 기도가 덜 익은 채로 강대상에서 밥을 내놓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뭐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 조잡하기 그지없는 저인데도 새벽마다, 공예배마다 본당으로 나와 주시고, 온라인으로 접속해 함께 예배를 드리시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더 맛나게, 더 달달하게 밥을 지어 올리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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