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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리콜운동 대표 전두승 목사, '염려하지 말라!'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11-21 06:00

킹덤빌더즈, L.A 글로리 교회 담임 전두승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염려하지 말라”
(마 6:25-34)

영국 옥스포드 의과대학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은 하루에 400-500번 웃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하루에 15번 정도보다 못하게 웃을까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만큼 나이가 들어 가면서 염려와 근심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팬데믹을 걱정하고 있는데, 그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심리적으로 사람들이 염려하고 두려워 하고 사람들 만나기를 꺼려 사회생활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한 경제사정이 여러워짐으로 염려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염려와 근심이 같은 것 같지만 근심은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며, 염려는 현재와 앞으로 닥칠 문제에 대한 걱정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이 염려와 근심하지 말라는 말이 365번 정도 나옵니다. 이는 365일, 일년 내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성경적으로 염려는 불신앙이요, 믿음이 없거나 적은 증거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14:1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하신 것을 보아서도 근심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결과인 것입니다.

본문 30절에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염려하는 것을 믿음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에는 변함없지만, 우리가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삶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제로 염려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직업이나, 인간관계, 결혼, 자녀, 건강상의 문제로 염려합니다. 그러나 염려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염려는 우리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또 영적으로 방해거리일 뿐입니다.   

우리가 염려를 지나치게 하게 되면, 온갖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잠언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에는 자율신경계가 있는데 염려나 근심을 하게 되면, 그 자율신경 중 일부분이 우리의 심장과 위장을 해치고 대장, 소장과 각 신체 기관을 파괴한답니다. 염려와 근심이 우리 속에 있는 교감신경을 자극시켜서 우리 스스로의 기관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과 낙심을 하면, 사람의 몸 속에 있는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서 사람의 몸 안의 기관을 파괴합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화를 내면 심장이 뛰고, 마음이 상하면 먹은 것이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친 염려와 근심은 위궤양, 요통, 두통, 불면증 등, 여러 가지 질병을 가져옵니다. 

또 정신적으로는 불안, 초조, 숨이 가빠지는 증상도 일으킵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차단시키고, 주님을 위한 사역을 전적으로 하지 못하게 하는 등, 큰 방해요소가 됩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말씀을 들은자이나 조금 지나서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에 의해 말씀이 숨이 막혀 온전히 열매를 맺지 못하는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염려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열매맺지 못하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사전에 보면 염려는 ‘마음을 놓지 못함’, ‘걱정하는 마음’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염려는“어떤 일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안달하고 속을 썩이는 걱정”을 뜻합니다. 

염려를 영어로는 ‘worry’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독일어 ‘부르겐-wurgen’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그 의미는 ‘질식시키다’ 혹은 ‘목을 조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염려란 ‘정신적인 질식’입니다.

윌리암 잉계라는 사람은 “염려란 복잡한 문제에 대해 때가 되기도 전에 지불되는 이자다”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갚기 전까지 마음을 조리고 또 이자 낼 때가 되면 얼마나 아깝습니까?

그런데 염려는 때가 되기도 전에 주어야하는 이자라는 이야기입니다. 미리 걱정하고 마음을 조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그러므로 염려는 현실적으로는 염려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미리 걱정하는 것입니다. 스펄전은 “염려는 내일의 슬픔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냥 오늘의 기운만 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염려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염려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우리의 속만 태우고 몸에 병만 나게 만듭니다. 마치 자동차를 운전할때, 기아를 넣지 않고 액셀레이터만 밟는 것과도 같습니다. 연기는 자욱하게 나나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실로 염려는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염려하고 근심한다고 해서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가 미래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본문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이처럼 염려는 우리에게 오늘을 불행하게 해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염려는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염려는 효과적이 아니고 실상은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염려는 우리를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당면한 문제를 과장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문제를 더욱 더 크게 만듭니다. 염려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욱 더 커져 어렵게 만듭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 나라 시민의 삶의 자세를 말하고 있는 산상보훈에서 이 세상의 의식주에 대해 염려하지말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30절에 이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요, 32절에서 믿음이 적은 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첫째, 우리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나라에 두고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종종 문제의 해결이 당면한 문제를 집중하는 데서가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오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세상의 의식주를 비롯한 염려들을 그 자체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앞의 19절부터에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는 주님의 교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나라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놓기를 힘쓰는 자는 세상의 의식주 염려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옛 말에 백석지기는 백가지 염려를 하고, 천석지기는 천가지 염려를 한다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논을 백마지기 짓는 자는 염려가 백가지나 되고, 천마지기를 짓는 부자는 염려가 천가지나 된다는 말입니다. 형편이 낳아지면 염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늘어나고 사업이 크면 클수록, 더 크고 많은 염려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이는 이 세상의 삶은 잠깐이고, 하늘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살 때, 세상 염려와 근심을 넘어 갈 수 있습니다.  

무엇에 더 관심을 두느냐? 무엇을 더 사랑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31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결론적으로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위해 살고,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명의 삶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사느냐하는 문제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삶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의식주의 염려를 넘어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결론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삶의 목적이 보이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있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살아 감으로 세상의 염려를 극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자세가 재물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24절에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재물은 삶의 목적이 아니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영혼을 구하기 위해 열방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도 선한 재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재물이 목적이 되고 그재물을 따라 갈 때에는 세상의 염려에 사로잡힐 뿐 아니라 결국 그 재물이 올무가 되어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많아도 근심이고 너무 적어도 고통인 것이돈입니다.   세상의 재물을 따라 갈 때, 염려는 그치지 않고 그 재물과 함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며, 그를 섬기고 살아 갈 때, 이 재물의 유혹에서 벗어나고염려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을 찾고 그를 섬기며 살아 나아 감으로, 세상의 염려를 극복해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매일 자족한 은혜로 살아갈 때, 염려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34절에 주님께서 염려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나 어려운 문제를 매일 만나기는 하지만, 그것을 미리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염려는 내일의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그냥 모른채 하라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염려 대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6이 이것을 확실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염려할 문제가 있을 때, 그 염려에 사로잡혀 염려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염려를 주께 맡기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5:7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염려를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염려를 주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염려할 일이 있을 때, 혼자서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그것을 고하고 도움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만, 능력이 많으신 주님께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직 장성하기 전에는 크게 보이는 문제가 부모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우리가 믿음이 약할 때, 염려하는 문제들이 크신 하나님께는 아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내게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대저 나는 하나님이니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입니다. 본문 26-30까지에서 주님께서는 “공중의 새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들의 백합화가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지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여 자족하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삶에 감사하지 않고 주님을 기뻐하지 않으면서, 내일 되어 감사하고 주님을 기뻐할 수 없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감사하고 신앙생활 더 잘 할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그것에 심취하여 그것을 따라갈 수 있고, 또 다른 염려가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고 모든 일에 자족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때, 염려를 극복할 수있음을 믿읍시다. 

주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경우에나 족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문제들 앞에서 어떻게 우리가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첫째, 우리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나라에 두고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둘째,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자세가 재물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매일 자족한 은혜로 살아갈 때, 염려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로마서 14:17에 기록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십자가 같은 고통이나 죽음같은 공포가 몰려 온다 해도 사흘만 기다리면 부활이 찾아옵니다. 

세상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김으로 매일 닥쳐오는 염려를 넘어서서 참된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살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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