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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돗교회 정이신 목사, '이미 큰 전쟁에서 승리했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8-06 21:49

아나돗과 함께 읽는 성경 정이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이미 큰 전쟁에서 승리했다(요한계시록 12:3∼6)

[1]
하나님이 주도하신 인류를 구원할 의로운 생명의 탄생을 말한 <12장>과 <창세기, 요한복음 9:1∼3>을 연결해서 읽으면,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확연하게 알게 됩니다. 해 아래 세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때 비로소 온전하게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이사야서 43:21). 생명의 가치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건 생명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으면 주님이 주신 생명이지만 ‘왜 태어났니?’라고 놀림을 당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9:1∼3>에 나온 사람처럼 ‘누구의 죄로 인해 저런 생명이 태어났다’라는 가십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거꾸로 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써야 하는 생명을 천박하게 취급하는 사회는 악의 세력에 굴복된 사회입니다. 저들은 생명을 핍박했고, 저들에게 죽임당한 생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임당한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말한 순교적 죽음이기에 <6장>에 나온 말씀처럼 하나님이 반드시 그 생명을 다시 살리십니다.

[2]
<12장>에서 여자를 신앙공동체인 교회로 해석하면 <2절>에서 강조된 메시지는 해산의 고통이 됩니다. <2절>에서는 신체ㆍ정신적 해산의 고통이 강조됐는데, 이 여자의 고통은 신실한 구원 공동체의 고통을 대변했습니다(빌립보서 1:29, 골로새서 1:24, 디모데후서 4:7∼8).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고난을 겪었던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쓴 시대에 살았던 교회의 성도는 자기들이 당한 고통을 새 시대를 가져오기 위해서 감내해야 할 고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새 생명을 출산하기 위해 여자가 고통을 겪듯이, 이들은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들에게 허용하신 고난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
<요한계시록>에서 용은 악의 현현을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됐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용과 비슷한 동물로 ‘리워야단’(시편 74:14, 이사야서 27:1), ‘라합’(시편 89:10, 이사야서 51:9), ‘베헤못’(욥기 40:15), ‘바다 괴물’(욥기 7:12, 에스겔서 32:2), ‘뱀’(이사야서 27:1, 아모스서 9:3) 등이 나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런 괴물들은 하나님의 백성에 맞서는 사탄을 상징했습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의 배경을 인용해 사탄을 용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쓸 때 예수님은 이미 하늘나라에 올라가 있었기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5절). 그러나 교회는 아직 해 아래 세상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리한 후 하늘나라로 올라갔지만, 그분이 쇠지팡이를 가지고 악의 세력을 전멸시키기 위해 아직 강림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교회는 땅에 남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면서(골로새서 1:24)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4]
예레미야는 “여자가 남자를 안을 것”이란 표현을 통해 하나님이 이끄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했습니다(예레미야서 31:22). 예레미야가 살던 때는 여자가 결혼해도 그에 관한 모든 주권을 그녀의 아버지가 갖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없으면 그 집안의 오빠나 남동생이 여자의 결혼을 주도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가 남자를 안는다!”란 표현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오늘날처럼 ‘좋아하면 먼저 고백할 수도 있지’와 같은 강도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표현과 더불어 바빌로니아에 함락 직전인 남유다에 있는 아나돗의 밭을 충분한 값을 치르고 사는 상징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회복을 말했습니다(예레미야서 32:9).

[5]
<요한계시록>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11장>에서 교회에 예수님의 두 증인으로 살라고 했고, <12장>에서 신앙공동체에 이들이 가진 신앙고백으로 어린 예수를 낳으라고 했습니다. 출산의 고통을 통해 이들이 낳은 어린 예수를 어떻게 기를 것인지에 관해서는 하나님이 따로 마련하신 곳이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6절). 교회는 예수님이 세웠지만(마태복음 16:18), 이처럼 교회가 낳아야 하는 어린 예수가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는 예레미야의 파격적 표현처럼 초대ㆍ초기교회 성도에게 요한은 이들이 겪은 고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이들이 겪은 고난을 통해 탄생시킨 생명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사야 하는 아나돗의 밭이 있고, 낳아 길러야 하는 어린 예수가 있습니다. 이 밭을 우리가 사서 가꿔야 하고, 이 어린 예수를 우리가 낳아서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생명이 빛을 발합니다.

[6]
  <욥기>는 사탄을 상징하는 동물로 용ㆍ뱀ㆍ악어를 교차해서 썼습니다. 이처럼 <12장>도 용ㆍ뱀을 혼용해서 <13절>에서는 용, <14절>에는 뱀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교회가 겪고 있는 핍박의 이유를 지금 눈에 보이는 사건에서 찾지 않았고, <창세기 3:14∼15>에 나온 여자와 뱀의 싸움에서 찾았습니다. 왜냐면 성경이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겪는 긴장과 갈등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일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담ㆍ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난 후부터 시작됐던 인간과 어둠 세력 사이에 잠재된 긴장과 갈등이 역사의 물줄기를 타고 흘러 내려오다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분출했다고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ㆍ하와가 타락한 후 하나님은 뱀을 저주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나온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이 원수가 된다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현대에도 인간이 뱀을 싫어한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욥기>에 사탄의 상징으로 나온 악어의 가죽으로 고급 핸드백을 만들어 들고 다니는 건 비성경적 행동입니다. <창세기>를 비롯한 성경에서 말하는 뱀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파충류가 아니며 어둠의 세력을 상징적으로 지칭한 것입니다. 그래서 뱀의 자손은 어둠의 세력과 결탁한 모든 인간을 통칭합니다. 

[7]
카를 클라우제비츠(Karl Clausewitz)는 “모든 전쟁은 정치적 행위이다”라고 했는데,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인간 사회에 벌어지는 전쟁의 본질은 정치적인 게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통찰을 지지합니다. 구원 섭리의 관점으로 보면 해 아래 세상에서 벌어진 전쟁은 하나님과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세력과 저항하는 세력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싸움이 인간을 적대자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을 상대로 벌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에베소서 6:12). 해 아래 세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가르침 없이 자기 욕심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며,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개인일 때도 있고, 가족일 때도 있으며, 나라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라를 이뤄도 숫자가 작고 힘이 미약하면 끊임없이 주위와 긴장 및 갈등을 겪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는 이유로 주변과 긴장 및 갈등 관계를 늘 만들게 됩니다. 예수님이란 빛이 해 아래 세상에 온 후에도 끝 날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여전히 일어납니다.

[8]
인류의 구원 섭리를 보면 여자의 자손, 빛의 세력이 때로 뱀의 자손과 어둠의 세력에 밀려 핍박과 고난을 받습니다. 저들에 의한 핍박과 고난이 계속돼 교회가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게 진행되는 현실로 인해 성도가 날마다 좌절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고난을 바로 없애주시지 않고 교회에 부활이라는 성경적 비전을 주십니다. 성경적 환상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계시를 성도에게 보게 하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십니다(이사야서 1:1). 이걸 통칭해서 우리는 묵시라고 합니다. 

[9]
<창세기 3:14∼15>에 언급된 묵시적인 희망을 요한은 예수님을 통해 봤습니다. 그래서 그가 본 환상을 통해 환난과 핍박을 받고 있었던 초대교회를 위로했습니다. 그는 환상을 통해 하늘나라에서는 이미 전쟁이 끝났고, 어둠의 세력이 완패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들이 땅의 권세를 잡고 성도를 핍박했지만, <11:2>에 나온 것처럼 저들의 권세는 마흔두 달로 제한적이란 걸 알았습니다. <창세기>에 나온 아담ㆍ하와의 타락 사건 때부터 하나님이 말씀하셨듯이 저들은 에덴동산에서부터 패배한 존재입니다. 저들이 아벨을 죽인 가인처럼 땅에서 잠시 세력을 잡고, 노아를 압박했던 주변 사람들처럼, 히브리민족을 괴롭혔던 이집트나 가나안의 부족처럼 빛의 세력인 여자의 자손을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제한적인 기간에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 아래 세상에 사는 우리도 부활의 승리를 바라보며 견뎌내야 할 성도의 인내를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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