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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견금여석'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3-04-21 21:47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견금여석(見金如石) ♧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너는 내 눈의 광명이요 내 마음의 평안이다. 잘 지내고 있는지 ~~~ 난 네가 곧 돌아와 결혼을 서두르기를 원한다. 네가 믿는 기독교도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라고 가르치겠지? "

   "~~~너 혹시 미친 것이 아니냐? 누가 우리의 거대한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거라. 너는 우리 가문에 오점을 남기고 싶으냐? 네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세 개의 은행에 저금한 모든 돈을 몽땅 너에게 물려주겠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다면 네 몫으로 예금한 돈까지 물려주지 않겠다. 아들아! ~~~지금 나는 건강이 몹시 좋지 못하구나~~~ 가업을 물려 받아 이을 아들은 너뿐이지 않느냐? 제발 돌아오려무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족 신앙이었던 씨이크(Sikh)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후 고향과 친척을 두고 멀리 떠난 썬다의 마음을 돌리고자 그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편지를 썼었다. 연이어 아버지의 편지가 날아왔지만 썬다는 아무런 답장도 연락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에 소개한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들게 된 것이었다. 썬다는 그 편지를 수십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다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대단한 결심을 한 듯 고향으로 돌아갈 결단을 내렸다. 썬다가 고향에 도착했을 때에는 배척을 받아 쫓겨날 때와는 달리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어느새 백발이 성성해진 아버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맞이했다. "그래, 이제 내 말을 잘 듣기로 결심하고 돌아온 거겠지? 역시 너는 내 아들이다." 그러나 썬다는 잠시 침묵하더니 칼날보다 더 매서운 말을 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의 요청대로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 아버지의 편지를 받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가족들과 친지들 그리고 이곳 고향 분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아버지와 친지들의 설득과 박해가 뒤섞인 기간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썬다의 결심은 더욱 굳어져 갔고, 그 뜻을 굽히지 않는 썬다의 의지에 비례하여 집안의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아버지는 계속 협박을, 형들은 저주를 퍼부었다.

    어린 시절 썬다를 무척이나 귀여워해 주던 집사 아저씨는 썬다를 지하실로 데리고 가서 보물 금고에 든 화려한 것들을 보여주면서 썬다의 회심을 독려하며 회유했다. 그러나 썬다는 이 모든 것들 앞에서도 의연했고 그의 대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썬다가 부귀와 영화, 찬란한 금은보석들과 화려한 미래의 유혹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승리한 신앙을 간증해 준 것이기에 황금만능주의가 최장의 기세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기독자들이 꼭 짚어 보아야 할 것 같다. 

    견금여석(見金如石), 곧 "황금 보기를 돌같이 여겨라"라는 뜻이다.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항상 그에게 훈계하여 말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고려의 명장이자 충신인 최영은 아버지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비단천에 '見金如石'이라고 새겨서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최영은 고려에 쳐들어온 홍건적(紅巾賊)과 왜구(倭寇) 등을 물리치고 높은 지위에 오른 뒤에도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않았으며 일반 백성들의 살림살이와 마찬가지로 겨우 생활하는 정도였으나 지나친 욕심을 절제하는 검소한 생활로 재물을 멀리하고 의리를 앞세웠다고 한다.

    오늘에 이르러 "재물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로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부귀영화를 생각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들에게 희생으로 헌신하는 공직 사회가 되고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사회적 존재가 되어라는 뜻으로 쓰인다.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대하 1:15)라고 했다. 그의 선친 다윗과 비교해 보면, 다윗은 사십 년 통치 기간에 언약의 땅 판도를 완전하게 정복하여 이스라엘을 신정국가로 튼튼히 세우기 위해 전쟁터를 누벼야만 했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선친 다윗이 일궈낸 이스라엘의 판도와 여호와 경외 신앙 위에 세운 신정국을 이양 받아 "평화의 왕"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전쟁이 없는 국태민안과 휘황 찬란한 왕궁 생활과 금은을 돌처럼 백향목 평지의 뽕나무처럼 여길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다윗은 성군의 이름을 얻어 오늘까지 모든 기독자들의 입으로부터 성군 다윗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지만, 솔로몬은 천여 명의 치마폭에 쌓여 하나님을 등지고 타락하여 이스라엘을 분열 왕국으로 몰고 간 원흉이 되고 말았다. 회개하고 돌아오긴 했지만 씁쓸하다.

    가끔 부자들은 무엇을 먹으며, 어떤 일로 여가를 선용하며, 짜투리 시간은 무슨 일로 소일해 볼까? 자문해 보지만 아직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아서 확실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안방극장에 소개하고 있는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서 짐작은 하고 있지만 사람 사는 곳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을까?

    드디어 솔로몬은 제 인생의 끝자락에서야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요 우리 인생의 본분임을 깨달았고, 그것이 그의 불명예를 씻고 모든 인생의 가슴에 명언으로 남겨 그의 부귀영화보다 진한 감동을 주어 솔로몬 하면 그 말씀이 귀에 쏙 들어와 심비에 새겨진다(전 12:13).

    어떤가? 썬다의 영적 기백이 그대 안에도 살아 있는가? 영적 해이(解弛), 우리 성도의 영혼과 영성에 무서운 암적 세포다. 최영의 "견금여석(見金如石)",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버금가는 공직 윤리이자, 사회적 존재들의 가치관이요 책임론의 준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인류에게 가해진 홍수 심판이 노아 가족의 경험으로 족했듯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중에 그곳의 향락과 쾌락이 미련 남아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것이 롯의 처 한 사람으로 족했듯이, 일의 결국을 경험하는 것은 솔로몬 한 사람으로 족하지 않을까?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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