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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세상의 등불, 영원한 횃불 '김하종' (95세) (4부)

[부산=아시아뉴스통신] 손주석기자 송고시간 2026-09-30 22:17

"괭이 하나로 일군 2천 평의 기적"… 사찰과 핍박 이겨낸 참된 교육자의 길
- 5.16 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소 7년 형… 억울한 옥살이와 서대문형무소 수감
- "농사냐 장사냐" 경찰의 사찰과 강요 속, 임야 2,000평 일궈낸 불굴의 의지
- 사회안전보장법 굴레 벗고 영도고(선화여고) 설립까지… 파란만장한 교육 인생
지난 9월 21일 고향 명계리를 찾은 김하종 회장(왼쪽, 95세)이 77년 전 역사의 산증인인 최안난 할머니(오른쪽, 96세)와 마주 앉아 빛바랜 앨범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두 노인은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피로 물들었던 바탕골 참상의 기억을 넘나들며 끝내 붉어진 눈시울을 삼켰다./아시아뉴스통신=손주석 기자


[부산=아시아뉴스통신] 손주석 기자] 77년이라는 무심한 세월이 흘렀지만, 고향 명계리 바탕골의 참혹했던 기억은 두 노인의 가슴속에 여전히 멈춰 있었다.

거액의 검은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진실 규명의 횃불을 들었던 김하종 회장(95세).

그가 최근 고향에서 역사의 또 다른 산증인인 최안난 할머니(96세)와 조우했다. 방바닥에 마주 앉아 낡은 앨범을 펼친 두 사람은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었고, 대화는 이내 77년 전 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주름진 손으로 흑백 사진을 어루만지던 두 노인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깊은 한숨과 함께 하염없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들의 소리 없는 눈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 현대사의 뼈아픈 상처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었다.

학살의 주범 이협우가 권력을 등에 업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풀려나는 기막힌 현실 속에서, 오히려 억울한 원혼을 달래려던 유족들은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특히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유족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 혁명재판소의 억지 구형과 억울한 옥살이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공포 정치 아래, 죄 없는 청년 김하종은 혁명재판소에 회부되는 고초를 겪었다. 당시 윤홍열 검사(중령)는 "사건을 보면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이나 청춘이 아까워 무기징역을 구형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황당한 논리로 그를 옭아맸다. 결국 제3심판부에서 7년 형을 선고받은 그는 서대문형무소의 차가운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고려대 이건호 박사(법학), 육군 대령 등 숱한 반혁명 인사들과 한 감방을 쓰며, 야만의 시대가 빚어낸 억울한 옥살이를 견뎌내야 했다.

■ 괭이 하나로 일군 2천 평의 기적, 경주시장을 탄복시키다
1963년 12월 16일, 민정이양 때 정치특별사면으로 2년 만에 풀려나 고향 명계1리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혹독한 감시와 사찰뿐이었다.

당시 경주경찰서 정보과 사찰 경찰관은 매일 오전 10시에 그의 거처로 찾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 돌아가는 식의 노골적인 감시를 반복했다. 본래 교직 생활을 원했던 그에게 경찰은 "장사를 하든지 농사를 짓든지 양자택일하라"며 강압적으로 생계를 통제했다.

하지만 절망의 늪에서도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김 회장은 괭이 하나를 쥐고 임야 2,000여 평을 직접 개간하기 시작했다. 피땀으로 일군 황무지에서 고구마, 감자, 참외, 수박 등 채소가 자라났다. 그의 억척스러운 의지와 노동은 지역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어느 날, 당시 이채우 경주시장이 이 소문을 듣고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구슬땀을 흘리는 그를 본 이 시장은 "어떤 젊은이가 크게 개간을 하고 있다기에 와서 보니 김 선생이구나! 일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여간 결심을 한 것이 아니구나"라며 깊이 탄복했다. 이 시장의 묵인과 도움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마침내 취업의 길을 열 수 있었다.

■ '사회안전보장법' 족쇄 끊고 일궈낸 영원한 교육자의 길
1964년 12월 19일, 김하종은 불국사 실업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며 마침내 평생의 숙원이었던 '2세 교육'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난은 끝이 아니었다. '사회안전보장법'이라는 악법에 의해 사찰 대상자로 낙인찍힌 그는 교직 생활과 사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제약과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1978년 9월 중등학교 교장 자격증을 취득한 뒤, '신원 특이자'라는 이유로 승인이 지연되는 숱한 우여곡절을 뚫고 같은 해 12월 29일 경주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1984년에는 영천시에 영도고등학교(현 선화여고)를 직접 설립하며, 불의한 시대가 꺾으려 했던 한 지성인이 지역 교육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는 기적 같은 '인생 역전'을 일궈냈다.

억울한 옥살이와 끈질긴 사찰의 핍박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진실을 잃지 않고, 참된 교육의 횃불로 자신을 태운 김하종 회장.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최종회인 5부에서는 수십 년의 침묵을 깨고 마침내 세상에 드러난 피학살자 유족회의 끝나지 않은 진실 규명 여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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