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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한정희 독립 큐레이터(1)] 제주도 화가 고영우, '너의 어두움' 은 작가가 사랑하는 서귀포 닮아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기자 송고시간 2016-03-10 10:18

화가 고영우의 가로등, 현대인의 어두움을 비춰주는 편안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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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주 ?'너의 어두움'은 화가 고영우가 오랫동안 그려 온 인생과도 같은 것이다.(사진제공=한정희 큐레이터)


화가 고영우와의 첫 대면은 너무나 강렬했다. 어느 날 미술관에서 만난 그의 작품 <너의 어두움>을 통해 짙은 먹 색 같은 청색을 만났다. 캔버스를 뒤덮은 무수히 많은 겹쳐진 인물들이 색깔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 인물들은 나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나의 어두움' 마저 이끌어 냈다. 그의 작품 <너의 어두움>과의 만남이다.
큰 슬픔과 고통을 느끼게 되었는데 공기가 부족한 것처럼 편히 숨을 쉴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보여 주기 싫었던 나의 어두움을 만날 수 있었다. 작품 안에 존재하는 ‘너의 어두움’과 내 안에 있는‘나의 어두움’이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누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덕분에 나는 강렬한 슬픔과 고통으로 며칠 동안을 나의 어두움과 싸워야만 했다. 어쩌면 제주에 살고 있는 한 그 만남을 계속 해야 할 지 모른다. 우선 작가를 만나 ‘존재하는 우리의 어두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 <너의 어두움>이라는 주제를 만나게 되는데. 언제부터 이 주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 1976년 제주시 소라다방(당시 제주도에는 갤러리가 없었으며 주로 다방에서 전시회를 열었다.)에서 <우울한 환상>으로 발표하고, 1994년도에는 <흔들리는 존재 - 너의 어두움>을 쓰기도 했지만 같은 해부터 <너의 어두움>으로 줄여서 발표하고 있다. <너의 어두움>이란 주제를 지금까지 20년 정도 사용하고 있다. 주제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인물’을 표현하고 있다.


▶ <너의 어두움>란 주제를 '인물'로 표현하고, 계속 같은 주제를 선택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 17세 무렵부터 건강이 나빠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증상은 숨을 쉴 수 없이 아픈 고통으로 심리적 압박을 견딜 수 없었다. 그 당시 병원으로부터 ‘심장신경증(지금은 공황장애로 불리고 있다)’이라는 병명을 받았다. 지금까지 50년 넘게 괴롭히고 있어 고통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래서 모험을 그만두고 신앙의 힘으로 작가로서 작업을 열심히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내 삶에 왔던 ‘공황장애’라는 아픔, 고통, 고민의 근원적인 존재를 작품을 통해 ‘나’라는 인물로 표현하는 것이 가깝다고 생각했다. 내 작품은 삶의 근원과 실존성의 어두움을 표현하고 있다. 내 삶의 의지로 살 수 없는 생활, 환경, 상황 때문에 <어두움>이란 주제를 선택하였는데, 힘든 부분을 작품을 통해서 작업을 하면서 보상받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다. 불편하고 억울한 감정 등을 예술가로서 모두 받아들이고 예술에 전념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 존재하는 '너'는 마치 어떤 인물의 그림자를 보는 것처럼 어두운 톤으로 일괄되게 처리되어 있다. 그 인물의 표현도 목각을 완전히 다듬기 전 상태인 것처럼 단순한 선으로서, 인체에서 보이는 곡선이 아닌 직선과 직선을 연결하여 최대로 단순화시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단순화 시켰지만 실루엣을 통해 인체를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인물들은 서로 비슷한 크기이지만 각기 다른 방향과 구도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겹쳐져 있는데 동일한 인물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어두움'의 표현 같기도 하고 많은 인물들을 겹쳐서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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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우, 너의 어두움, 130×97cm, Oil on canvas, 2015. (사진제공=한정희 큐레이터)


▶ 이 작품 외에도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각기 다른 것인지 혹은 같은 인물의 표현방식인 것인지도 궁금하다.


- 실존적인 어두움으로 나의 어두움을 표현한 것이고 어둠의 의식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한다. 나를 보면서 겹쳐서 있는 군중 속에 있어도 각자 존재의 의미를 의식하고 고민하는 흔적이기도 하다. 인물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 같지만 침묵하고 있고 또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마주하고 있기도 한 구도들은 현대인들은 자기 공간인 원의 공간에서 갇혀 살고 있다. 이것은 집단적인 외로움이기도 하다. 그 어두움은 자기만의 어두움 곧 각자의 외로움을 그리고 있다.


인물 표현에서 초기에는 곡선을 사용하다가 나중에 단순화된 직선으로 바뀐 것 같다. 물론 다른 작품에서는 인체의 곡선을 살려서 표현한 것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기도 한다.


▶ 작품에서 인물의 선 처리를 최대로 단순화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 초기에 인물을 그릴 때는 구체적이고 문학적으로 그렸으나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문학적인 표현에서 단순화된 선과 형태로 변한 것은 구도, 색깔, 형태를 버리고 단순화 시키는 것이 실존적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집중해서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 풍경을 소재로 완성된 작품이 몇 작품 안 되는 이유가 자신과의 운명적 주제인 '너의 어두움' 때문인지 궁금해


- 풍경 작품을 많이 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표현하는 인물이 곧 제주의 검은 돌을 표현하는 것이자 인물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었기 때문에 풍경을 소재로 그리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적은 작품이지만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도 <어두움>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척박한 제주의 환경 속에서 검은 화산 돌의 느낌을 강하게 인식했다.


밝은 색으로 완성된 몇몇 작품을 볼 수도 있다. 작품 안에 표현된 인물이나 기법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색감에서 주는 이미지 때문에 다른 시선을 느끼게도 된다.


▶ 이렇게 밝고 선명한 색감을 병행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


- 밝은 색으로 그린 그림도 같은 주제로 표현한 것이다. 주제나 시기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쾌, 아름다움, 추’의 개념은 각자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생각이다. 우리가 보통 어둡다고 말하는 색깔이 어두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통상적으로 색깔이 주는 개념을 작가로서 느끼는 색깔은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색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Line)'이 결정짓는다.


▶ 처음 화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 혹은 이유가 궁금하다.


- 일본에서 태평양미술학교를 나오고 서귀포에서 미술선생님을 하고 계시던 아버지(고성진, b.1920~)의 영향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련 서적과 예술에 관련된 경험을 자연스럽게 보고 익힐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작가가 되어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려야 한다.”, “작가는 농부가 농사일에 매달리듯이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께서 작가 정신을 많이 키워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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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우, 너의 어두움, 130×80cm, Oil on canvas, 2015. (사진제공=한정희 큐레이터)


지금 유나이티드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는 '홍익대학교 동문전'에도 참여한 것으로 들었다. 서귀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에서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고영우 화백.?


▶ 일찍부터 고향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유가 있는지


- 서울에서 공부하길 원하셨던 아버지의 권유와 노력으로 홍익대학교 미술학과 입학을 했지만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남몰래 혼자 있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되었다. 1970년 1월 3학년 때에 증상이 심각해져서 갑작스럽게 서귀포에 내려오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집 근처 범주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최근 국제아트페어 참여까지 왕성하게 전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 1994년 갤러리시몬에서 갤러리 개관전으로 초대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 건강 때문에 서귀포에서만 머물고 있으면서도 ‘대한미술원 회원’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중앙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일본의 ‘아시아현대미술전’에도 작품을 출품 할 수 있는 등 많은 기회가 되어 주었다.


▶ 예술가로서 작품 활동을 지속하게 되는 힘을 어디에서 얻게 되는지 궁금해


- 나의 일(Talent)을 감사하고 그 일을?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 일은 예술이다. 그것이 나의 삶 속에서 존재, 실존, 고통, 고뇌 등 건강의 악화로 깊이 깨닫게 되었고 어두움으로 표현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듯이“인간은 존재하는 문제다.”라고 생각한다.


해답을 찾기 위해 인물로 표현했는데 초기에는 손을 들고 있는 인물들이 많았다. 그것은 나약하고 불안한 나의 상황을 표현하려고 했다. 또한 1970년대 인물들은 지금보다 적게 그리면서 손을 서로 엮으려고 하는 드라마틱한 구도와 다양한 색깔을 많이 사용했다. 그 당시 그림들은 시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실제로 문인들이 시화전에 내 작품을 많이 사용하고 좋아해 주었다. 그러나 또 변화를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직적이고 단순화된 인물로 표현하게 되었다.


수직화된 인물의 표현은 가로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안개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가로등 주변으로는 자기 영역만큼 확인되는 공간을 볼 수 있다. 가로등은 자기 존재를 밝히고 있는데 안개 속의 가로등은 쉽게 볼 수 없다. 많은 가로등이 현대인이라면 안개 때문에 최소한의 자기 영역만 보여 지는 현실은 내 모습과 같다고 생각한다. 가로등처럼 우뚝 서있는 모습들을 구체화시켜서 지금의 인물들 표현으로 되었다.


고영우 화백의 예술철학과 작품은 늘 사람들에게 가로등이 되어 준다. ‘자기 존재’의 확인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등을 돌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2016년도에도 제주도에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작가의 왕성한 활동에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작가로 건강한 존재감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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