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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 '광고'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6-29 17:57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광고]

(고린도전서 16:1-12)

편지 말미에 바울이 몇 가지 '광고'를 하고 있다.
바울이 하는 광고를 통해 
당시 교회들에 대해 조금 짐작이 가능하다.

바울은 무슨 중요한 '광고'를 했을까?

1. 성도를 돕기 위한 헌금

성도들을 도우려고 모으는 헌금에 대하여 말합니다. 내가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 지시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대로 하십시오. (고전16:1)

헌금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이 구절을 가지고 헌금은 없어야 하고 
연보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역개정에서 '연보'라고 말한 것을
새번역에서는 '성도들을 도우려고 모으는 헌금'이라 말했다.

헌금은 연보만 있을까?
아니면 헌금이 따로 있는데
바울은 특별히 '연보'를 따로 주문한 것일까?

사실 이 문제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즉,
헌금이 없고 연보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 교회가 돈으로 과도하게 타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목사들이 열심히 사람 모아서 헌금을 강조하고,
거의 강요에 가깝게 헌금하게 하고
그 돈으로 교회 건물 짓고
화려하고 크고 유명한 교회가 되었다.

그렇게 수 십년이 흘렀고
그런 교회들이 현재 얼마나 패역해졌는지
모든 사람들이 적나라하게 보고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헌금에 대해 과도하게 반발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런데 헌금 문제는 자연스러운 문제다.
결코 이상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아니고
특별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도 아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고
이방 교회들의 도움이 필요해졌기에
바울은 이방 교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교회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교회는 연보만 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모임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성도 각자는 자신의 수입과 형편에 따라
최손을 다해 헌금했을 것이다.

바울은 그런 헌금 자세를 요구했다.

매주 첫날에, 여러분은 저마다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해 두십시오. 그래서 내가 갈 때에, 그제야 헌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고전16:2)

교회는 소중하다.
교회를 통해 성도는 그 신앙과 삶이
성숙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없어지면 성도의 신앙은
제대로 자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에게 교회는 매우 소중하다.

만약 교회가 소중하지 않다면,
그래서 교회를 위해 헌금하기 싫거나
인색한 마음이 든다면
교회를 떠나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해 헌금할 마음이 들지 않는 교회라면
다닐 가치도 없다.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에는 고려해야 할 것이 또 있다.
아무리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소중해도
그 교회가 너무 대형화되었고
헌금이 남아 돌고 목사 월급이 과도하게 많은 등
재정적으로 건전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우선은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교회의 재정 상태에 대해 면밀히 살펴야 하고,
교회 재정이 부족하지 않고,
목회자의 생활비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고,
교회의 남는 재정이 건전하게 외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자신이 헌금하고자 했던 금액 중,
본인 교회에 일부 헌금하고 다른 일부는
올바르게 사역하는 가난한 작은교회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선교사 등을 위해
개인적으로 헌금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싱각된다.

원래 그 일들을 교회가 해야 하는데
교회가 제대로 하지 않으니 
성도 개개인이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2. 목사에 대한 태도

바울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고린도교회에 설명한다.

나는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여러분에게로 가겠습니다. 내가 마케도니아를 지나서 (고전16:5)/여러분에게로 가면, 얼마 동안은 함께 지낼 것이고, 어쩌면 겨울을 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은,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전16:6)/

자신이 고린도교회로 갈 것인데,
가면 얼마간 함께 지낼 것이고
그 다음엔 다른 것으로 보내달라고 말한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계속 머문다면
교회의 문제들이 상당수 저절로 해결될 수 있음에도
바울은 다른 곳을 또 가려 했고,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성도들의 배려를 부탁했다.

바울이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전할 
기회가 크게 열렸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큰 문이 활짝 열려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방해를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고전16:9)/

바울이 일방적으로 명령만 하고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발표만 한 것이 아니라,
보내달라고 부탁을 한 것에서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본다.

목사와 교인들의 관계는
목사는 명령, 지시만 하고 
교인은 순종만 하는 관계가 되어선 안 된다.
서로 배려하고 서로 섬기는 관계여야 한다.

3. 또 다른 목사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계속 있을 수 없어서
디모데를보냈다.
그리고 아볼로도 조만간 갈 것이라 말했다.

디모데가 그리로 가거든, 아무 두려움 없이 여러분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고전16:10)/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가 내게로 돌아올 때에, 그를 평안한 마음을 지니게 해서 보내 주십시오. 나는 형제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전16:11)/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내가 그에게 다른 형제들과 함께 여러분에게 가라고 여러 번 권하였지만, 그는 지금, 갈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때가 오면 갈 것입니다. (고전16:12)/

사역자는 한 교회의 사역자만이 아니다.
우주적 교회가 참 교회라고 볼 때,
모든 올바른 목사는 모든 올바른 교회의
정상적인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고린도 교회는 아볼로를 원한 것 같지만
바울은 상황상 젊은 디모데를 보낸다.
그래서 바울은 젊은 사역자인 디모데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탁한다.
그를 업신여기지 말아달라는 부탁이다.

한 사람의 사역자에게만 잡착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는 다른 사역자에게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교회와 기독교가 건강해진다는 건
한 교회만 건강해지고
능력 있는 한 목사만 대우받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다 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이 다 해먹으려 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역자를 세웠고
다른 사역자와 동역했고
다른 사역자들과 공동체적으로 사역했다.

목사는 다른 목사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가능하다면 동역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하고,
그 동역을 성도들은 기뻐해야 하고
사역자 개개인의 특성을 배려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4. 나는?

헌금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헌금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
그래서 교회에 못 가겠다는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헌금하란 말을 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감사하게도 성도들은 내가 헌금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헌금하신다.
게다가 목사인 나를 과분할 정도로 배려해주신다.

그리고 내가 외부 사역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씀의 사람을 세우는 것에 있어서
우리 교회, 다른 교회의 구별이 뭐가 필요하냐고,
더 많은 분들에게 사역하면 좋겠다고 응원해 주신다.

과거에 그렇지 못한 성도들을 만났던 경험이 있기에
성도들의 이런 성숙한 배려에 
늘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우선 성도들과 수평적 관계임을 
늘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고,
그 사실을 성도들에게 수시로 말한다.

나도 한 명의 성도라는 사실을 잊으면
내가 망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목사가 되고나서 내게 일어난 큰 변화가 
목사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만나면 만날수록 마음이 아프다.
어렵고 가난하고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경우들도
너무 많이 본다.

악하고 탐욕적인 목사들은 부자가 되고
교인들이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거의 세뇌시키다시피 해서 
자기 원하는 대로 다 하는데,

올바르게 사역하고자 하는 목사들은
거만하고 거칠고 배려없는 교인들 만나
거의 죽을 고생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밥 한 번 사고
교회에 부탁해서 작은 섬김을 베푸는 정도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오랫동안 일반성도로 살다가 
목사된 지 3년 되었다.
그 동안은 목사가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성도들의 일상이 얼마나 처절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요,
그 처절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신앙에 있어서 얼마나 궁금한 게 많은지를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일반 성도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사역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꾸 목사들이 보인다.
그들도 일반 성도들 만큼이나
깊은 고민과 상처와 아픔 투성이다.

어떻게 하면 이 분들을 잘 돕고 배려하고
올바르게 섬기는 것이 될지,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동역이 될지
이 부분에 대해서지는 고민이 깊어진다.
주의 긍휼을 기도한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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