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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회 칼럼) 스승의 은혜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이승주기자 송고시간 2020-05-15 12:04

선생님, 스승님~ 고맙습니다.
충남교육청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김국회 한문학박사,/아시아뉴스통신 DB

올해로 여든 다섯을 맞이하는 스승 병주(屛洲)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대학 새내기 시절이니, 지금부터 32년 전이다. 공주향교의 유림회관 3층 서당에서 사대, 교대 대학생 중심의 제자들이 인생의 스승 병주 이종락(李鍾洛) 선생님께 한문 고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웠다.
 
스무 살, 자라나온 환경에 위축되기도 하고, 무너진 꿈에 상처받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암울하기도 했던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두루마리 안에 저고리와 바지는 기본적으로 전통 복색을 하셨지만, 단발하며 중절모자하며 말씀하시는 거 하며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 선생님의 풍모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였다.
 
평일 저녁 매일 2시간씩 수업을 듣는데, 1시간은 사서(四書), 1시간은 삼경(三經) 강독이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윤강으로 듣는데, 처음에는 옹알옹알하시는 선생님의 성독 톤이 익숙치 않아서 구결 현토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어 달 고생한 뒤에야 비로소 물흐르듯 성독하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자(漢字)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던 내가, 하나하나 자전(字典)을 찾아가며 익히고, 경전에 나온 글자의 음과 뜻을 확인하다 보니, 막히는 글자가 적어지고 제법 속독(速讀)도 가능해졌다. 선생님의 성독을 흉내내기도 하고, 따로 읽기도 하고, 스님이 읽는 금강경 독경 테이프를 들으며 지치지 않고 오래 읽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예습하면서 구결현토를 내 방식대로 달았다가 수업을 들으면서 수정하는 공부를 반복하였더니, 문리가 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이 다 짚어주시지 않는 미주(微註) 또는 간주(間註)로 나와 있는 작은 글자를 찾고 풀어보면서, 의문이 나는 구절의 뜻을 궁리하고, 대문(大文) 이해에 참고하였다. 선생님 설명을 듣고 이해가 안되고 의문이 남으면 바로바로 여쭈어보고 ‘그게 아녀~’하시는 말씀에 이어 제대로 들어보라는 마음으로 다시 설명해 주셨다. 거듭된 설명으로 충분히 회통(會通)한 뒤에야 그만두었다. 물러나와 다시 반복해서 그 구절을 읽고 선생님의 설명을 곱씹으면서 그 의미를 깊이 깨우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시중에 번역본이 있더라도 반드시 먼저 내 생각대로 현토를 달고 번역을 한 뒤에 번역본을 비교하는 방식은, 처음엔 친구들보다 더디었지만 오히려 문리 터득에는 보탬이 되었다. 이후로 번역본이 없는 새로운 글을 볼 때 생기는 막연함이나 두려움이 사라졌다. 몇 번을 궁리하여 초벌 번역에서 재벌 번역, 윤문 작업까지 번역문을 여러 번 다듬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때 학사졸업 논문 제출 대신, 여조겸(呂祖謙)의 '춘추좌씨동래박의 선역(春秋左氏東萊博議 選譯)'을 선택했다. 손글씨로 써가며 구두를 떼고 주석을 붙이고 우리말 번역하여 제출하였는데, 차후 번역에 자신감을 갖게 한 귀중한 경험이었다. 전공 교수님들의 박사학위 논문 편집, 윤문 작업을 보조하면서 원문 이해와 문장 구성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에 중등 임용고사를 합격하고도 마침 인사 발령이 더디어 2년간 잠깐씩 기간제 교사, 극장 매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도, 서당에서 한문 배울 기회를 얻은 것은 더 없는 축복이다. 특히 그 기간에 들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완강은 꼬박 2년 반이 걸렸다. 선생님께서 날마다 새벽 공부로 그날 강독분을 회통하시고, 중국과 일본의 관련 주석서를 대조하고, 다시 선생님의 단안으로 주석을 붙여 「춘추좌씨전 두주(春秋左氏傳 頭註)」 3권을 편찬하셨으니, 이렇듯 심혈을 기울이신 귀한 강의를 들은 복이 또 있을까.
 
그 뒤로 칠순(七旬)에 즈음하여 「논어집주강설(論語集註講說)」을 내셨으니, 근래 학자로 사서(四書)에 주견(主見)을 세워 새로운 강설을 쓰실 분이 또 계시겠는가. 아! 나는 그 윤강을 문하에서 듣고 선생님의 힘있는 주장과 논설을 누누히 들었으니 선생님의 강설에 녹아든 정성을 무릎 꿇고 받들만 하다. 「일보만평(日報漫評)」에서 성인(聖人)의 도(道)가 퇴락함을 통여단장(痛如斷腸)하시는 토설(吐說)은 볼 수록 숙연하다. 그 뒤로도 어언 15년이 흘렀는데, 팔순 너머 고령의 연세에도 노익장(老益壯)으로 강론을 다니고 계시니 문하 제자로서 참 다행이다.
 
오늘의 내가 있음은 병주 옹과 같은 훌륭한 스승 덕분이다. 물론 대학시절 학문에 대한 열정과 탁견으로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들, 코흘리개 철부지에게 하나씩 인성과 지혜를 담아주신 초, 중, 고 선생님들의 누적된 은공(恩功) 덕분이다. 그럼에도 오십(五十) 넘어까지 아직 온전치 못한 인격은 오로지 내가 불민(不敏)한 탓이다. 모지람을 이겨내고 스승의 가르침에 부끄럽지 않도록 숙흥야매(夙興夜寐)하여 민면(黽勉)해야 할 일이다. 병주 선생님을 위해 지은 졸시 일 수로 스승 존경의 마음을 대신한다.
 
仰吾夫子李屛洲(앙오부자이병주) 우리 스승 이 병주 선생을 우러르니
門下才子幾十修(문하재자기십수) 문하에 뛰어난 제자 수십이 공부하네.
 
繼往開來越傘壽(계왕개래월산수) 성현 잇고 후세 깨움에 팔순이 훌쩍토록
問經究傳古今周(문경구전고금주) 경전을 묻고 연구함에 고금을 두루하시네.
 
山崩地壞人命脅(산붕지괴인명협) 산과 들이 꺼지면 인명이 위태로우니
道亡德失吾徒憂(도망덕실오도우) 도덕이 무너짐은 우리들의 근심일세.
 
硏讚聖賢平生業(연찬성현평생업) 성현을 연찬하신 평생의 위업이여.
誰謂此道無再求(수위차도무재구) 누가 이 도리를 다시 찾을 일 없다 하리오.
 
선생님, 스승님~ 고맙습니다.
 
◈ 김국회 프로필
-한문교육학박사
-유림학당(hanja4u.cafe24.com) 주인
-충남교육청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아시아뉴스통신=이승주 기자]  lsj92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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