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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 영상 사업 ’코로나19‘ 비대면 공연에 빛나

[서울=아시아뉴스통신] 김은해기자 송고시간 2020-06-22 16:49

지난 17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을 만나 그의 진솔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김은해

[아시아뉴스통신=김은해 기자]전 세계가‘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극장마다 문을 잠그고 비대면이라는 영상공연으로 변해 가고 있다.
 
2013년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이 대한민국 최초로 공연물 영상화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 우리나라는 공연물 영상화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직접 보는 공연이 아닌 보여주는 공연을 영상화해 예술의전당을 찾아오기 어려운 먼 지역에 보내는 사업을 선도하므로 문화의 문턱을 낮추고자 노력한 선두주자였다.

국내 최대 복합 문화예술 공간의 운영책임자로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직한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을 지난 17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만나 그의 진솔된 이야기를 들었다.

▲고학찬의 아이디어뱅크 “공연물 영상화 사업...코로나19 비대면 공연에 빛나”

고학찬 전 사장이 거쳐 온 ‘직업’만 해도 25여개가 된다. 또 그는 아이디어뱅크로도 정평이 나있다. 

고 전 사장은 PD, 작가, 음악감독, 한인방송국 사장, 소극장 극장장에서 바텐더, 패션사업가까지 저자는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그 도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도전이 개인적 욕심이나 발전을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길 위를 함께 걷는 주변사람들, 친구들, 동시대인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직업속에 그가 아이디어뱅크로 정평이 나 있는것에 대해 한마디로 ‘호기심’이라고 정의해 주었다. 그는 교수.PD 등의 직업활동 속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는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날 인터뷰 장소에 오기전에 서울역에서 유투브 촬영을 하고 왔다. 오늘 촬영 전에 동대문 풍물시장에 들러 소품으로 예전 고등학교 모자와 교복을 구입한 후 이를 착용하고 대전부르스를 불렀다면서 “고등학교 옷에다 고등학교 모자를 쓰고 한번 해보자 잠깐이라도 그때로 돌아 가보자”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해 주었다.

▲고학찬의 발상전환은 오늘의 코로나19와도 연결.

그는 예술의전당 재임시 지난 2013년 공연물 영상화 사업을 펼쳐 호평을 받고 있다. 고 전 사장은 여러사람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시작한 영상화 사업이 1년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지역민들의 호평이 입소문으로 번져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역의원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예산도 확보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턱이 높았던 예술의전당의 연간 관람객이 연간 230만명의 관람객에서 300만명으로 늘어나는 자체도 고 전 사장이 문턱을 대폭 낮춘 덕분이다, 공연물 영상화 사업은 일반 중계영상 제작보다 더 많은 카메라를 동원 관객석으로 부터 프론트스테이지는 물론 백 스테이지까지 풀로 동원해 촬영을 한 후 편집본을 만들어 전국의 문예회관에 보급했던 사업이었다, 이같은 사업진행으로 인하여 지방의 관람객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오페라 뮤지컬 등의 공연문화 예술에 대한 전반적 관람을 현지에서 관람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지난 몇 달간 벌어진 코로나19사태로 인하여 비대면 공연이 시작단계에 들어선 지금 고 전 사장의 공연물 영상화사업은 빛을 더 내고있는 중이다. 고 전 사장은 지난 2014년 울릉도의 한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면서 편지의 내용에는 “오늘 처음으로 발레라는 공연을 보았다”면서 호두까기 인형을 스크린을 통해 울릉도에서 본 소녀는 “난 앞으로 발레리나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편지의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고 전 사장은 “눈물나죠, 아니 제가 호두까기 인형을 영상으로 만든 것을 울릉도 소녀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레를 보고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것 아니예요?  그게 영상화 사업이라는 겁니다.” 

그건 이미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처음에는 그곳에서도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그것은 오페라계의 반대였다면서 오페라를 오페라극장에서 봐야지 지방에 있는 극장에서 봐 버리면 누가 오페라를 보러오겠냐며 반대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자신은 ‘오페라는 오페라를 영상으로라도 본 사람이 오페라를 보러 오는게 아니냐?’ 고 반문한다. 그는 이어 오페라를 안 봤던 사람은요 표를 줘도 안 온다고 강조했다. 고 전 사장은 예를 들어 시골에 살던 사람이 오페라 영상을 보고 난 다음 서울에 사는 딸집에 갔을 때 예술의 전당 오페라를 봐야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오페라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오페라를 찾아간다고 역설한다. 이러면 연간 300만명이 오페라를 보게 된다면 400만명으로 늘어날 수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곡이 없어진 유일한 대한민국

전 세계에 가곡이 없는 나라가 없는데 유일하게 우리나라가 없다는 고 전 사장은 학교에서 안 가르치고 방송국은 가곡프로가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고 전 사장은 동요 3회, 가곡 4회 총 7회를 무료공연 했는데 직접 사회를 봤다. 해마다 7편씩 6년의 세월동안 총 42편을 했다. 그리고 이에 성이 차지않았던 고 전 사장은 대한민국 지방에 있는 문예회관과 전 세계에 있는 대한민국 문화원에 보급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670만명이 지금 해외에 나가 살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그들을 위해 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해외 문화원이 전 세계에 25개가 퍼져있는데 문화원에 보급을 한 후 교포들이 좋아했다고 밝혔다.

고 전 사장은 나이지리아 한국 문화원에서 상영했을때를 회고해 주었다.
그는 이 가곡영상을 현지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번역을 해 상영했다. 
우리의 가곡 고향생각을 본 나이지리아 국민들이 울먹였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이 가사가 옛날에 우리를 울렸다. 고 전 사장은 그러면서 “시골에서 돈 벌러 서울에 올라와 고향 생각나고 고향도 가고싶은데 경제적 업무적 시간적 문제때문에 못가는 그 세대들이 이 노래들 듣고 울었다. 그런데 지금 나이지리아에 사는 흑인들이 우리 그 당시 삶과 똑 같은 것 이라면서 시골에 살다가 도시에 돈 벌러와 1년에 한번 갈까 말까하는데 가사내용과 같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죠. 전부 고향 노래 아닙니까? 우리 가곡을 그래서 나이지리아 흑인들이 좋아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영상사업에 대해서 저는 보람일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언택트 시대 콘서트 문화의 ‘뉴 노멀’

지난 14일 그룹 방탄소년단이 ‘107개 지역, 75만6600명, 257억원’

그룹 방탄소년단이 온라인 실시간 라이브 공연 ‘방방콘 더 라이브’(방방콘 The Live)에서 257억원’의 공연 수입금을 이루었다.
이 공연은 집에서 TV를 통해서 또 SNS통해서 그것이 가장 보편적인 해결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언택트 시대 콘서트 문화의 ‘뉴 노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공연은 이렇지만 클래식에서는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마스크 쓰는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황속에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지금 어디로 가 혼자 부른다고 먹고 살수가 없잖아요. 클래식 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공연을 영상화해서 관람객과 만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무료로 진행됐지만 앞으로는 유료공연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면서 이번 BTS가 하듯이 유료공연에서의 유료관객을 열거해 준다. 

▲유튜버로 변신

지난해 12월2일 고학찬의 비긴어게인이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첫 영상을 선보인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유튜브에 흠뻑 젖어있다.

그는 앞으로도 유튜버로 계속활동을 할 것이라면서 “유튜브는 새로운 미래라고”정의해 주었다. 그러면서 고 전 사장은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유튜브이며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싫은 사람 입장에서도 싫으면 안보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하고 싶어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이 유튜버로 활동을 하다보면 문제가 생길 경우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고 전 사장은 이에 대해 “가난하고 외로운 유튜버들과 손잡고 이를 해결하고, 나아가 유튜버가 되는 길을 안내도 해주는 선배로서 유튜버 세상을 한번 펼쳐보는 것이 제 꿈이 됐다고 설명했다. 

▲노래하는 고학찬 “노느니 염불한다”

그가 이렇게 유튜버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고 전했다, 먼저 우리나라 속담에 ‘노느니 염불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이가 들어 다른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이유가 첫 번째 이며 두 번째로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그는 건물도 없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바닷가로 데려가 책상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넓은 바위들에 앉혀놓고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노래 뿐, 초등학교 1-2학년, 2년 동안 노래만 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년 동안 바다에서 노래를 한 그는 음악특기생으로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그 교실없던 2년이 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소중한 발성 연습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 전 사장은 노래를 접을 수 밖에 없는 시간을 맞이하였다.

그는 대학 진학에서 성악과를 가려고 했지만 심장판막증이라는 병을 얻어 노래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호흡이 생명인 노래에 이같은 병으로 인하여 결국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바꿀 수 밖에 없었던 시간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숙성된 장 맛 이라고 할까 그의 전공은 연극영화였는데 70이 넘었지만 가창력은 변함이 없다. 이같은 비결은 무엇일까?

고 전 사장은 제주도 출신이다, 그런 그는 자연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고 전 이사장은 어머니가 노래를 잘했다면서 아마도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어머님과 제주도 방송국에서 제주민요를 녹음한 것을 함께 한 적이 있다면서 나름대로 개인적 노력도 있지만 유전적으로 어머님의 피가 섞인 것이라면서 “모든세상이 제 무대”입니다. 그래서 고 전 사장은 길을 걷다가도 사람이 없으면 노래를 부른다고 웃음지었다. 


khh9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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