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6일 일요일
뉴스홈 종교
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6-30 13:35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오해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무조건 희생하고 무조건 손해보고 무조건 상대방 말을 들어주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

특히 교회 안에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이 사랑이 맞을까?

바울이 모두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고 있다. 

(고전 16:24, 새번역)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아멘.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어떤 것일까?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드러난다.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사랑'이 된다.

1. 순종

사랑의 첫 번째 모습은 '순종'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순종해야 할까?
소위 '주의 종'에게 순종해야 할까?
아니면 '목사'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일까?

전혀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순종해야 하는지 
바울이 말하고 있다.

(고전 16:15-16, 새번역) [15]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스데바나의 가정은 아가야에서 맺은 첫 열매요,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친 가정입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런 사람들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또 그들과 더불어 일하며 함께 수고하는 각 사람에게 순종하십시오.

순종해야 할 대상은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친 가정'과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각 사람'이다.

'주의 종'이나 '목사'나 '설교자' 등이라면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목사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것도 전혀 아니다.

목사든 집사든 장로든 직분 없는 평신도든 간에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치는 사람에게
순종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올바른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람이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치는지,
아니면 자신의 욕심과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인지를
잘 분별해야 한다. 

그런 분별 없는 순종은 순종하는 사람도
순종을 받는 사람도 함께 망하게 만든다.

먼저는 분별을 해야 하고,
분별해서 자신의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그래서 온갖 불의와 악을 몰래 저지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목사든 장로든 간에 그에게 순종해선 안 된다.

반대로 분별을 해봤더니
그 사람이 자신의 이익에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라는 시스템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도 아니라,
성도들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순종을 해야 한다. 

2. 알아줌

사랑의 두 번째 모습은 '알아주는 것'이다.

(고전 16:18, 새번역) 이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바울을 찾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사도를 찾아가서 
위로를 주고 힘을 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다른 지방에 있는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도를 찾아갔다는 말은
사도의 수고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컸음을 보여준다.
그런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바울이 말한다.

이런 사람은 왜 알아주어야 할까?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역자도 '성도들' 중 한 사람이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는
그런 사역자(성도)를 찾아가서 섬겼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섬김은 알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역자 또는 목사를 우월하게 쳐다보고 
주의 종이라는 극존칭의 용어를 만들어 
특별한 존재인 듯 대우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사역자가 최선을 다해 
올바른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열심을 내고 있음에도
그 사역자를 무시하거나 홀대하는 것은
성도로서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 중 한 사람인 복음 위해 바르게 일하는 사역자를
찾아가고 교제하고 작은 위로를 주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섬김을 알아주는 것이
사랑의 한 모양이다.

3. 문안

사랑의 세 번째 모습은 '문안'이다.

(고전 16:19-20, 새번역) [19]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모이는 교회가 다 함께, 주님 안에서 진심으로 문안합니다. [20] 모든 형제자매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바울의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는 말이다.
성도들 간에 서로 문안하는 것을 명령하고 있다.
문안하고 인사하는 단순하고 간단한 행동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랑이다. 

적어도 성도는 서로 문안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각자 너무 바쁘다.
게다가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문안하고 인사하는 것을 쉽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그럼에도 방법을 찾아 문안해야 한다.

비대면으로 문안할 방법이 많다.
카톡이든 문자든 전화든,
그리고 각종 sns를 통해서든 
문안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직접 선물을 전달하지 않아도 
쿠폰이나 배달 선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시대다.
마음만 있으면 문안하고 작은 선물을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런 작은 문안과 선물들은 '사랑'의 모습 중 하나가 된다.

4. 저주

놀랍게도 사람의 모습 중에 '저주'가 있다.

(고전 16:22, 새번역)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는
충격적인 말을 바울이 편지의 거의 마지막에 말했다.
이 말 다음에 은혜를 말하고 사랑을 말했다.
저주도 사랑의 한 모습인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일까?
불신자들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주님을 알지도 못하니
주님을 알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그들에게 저주씩이나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란,
마땅히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 사람임에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정욕을 사랑하고 
복음 가지고 장사하고 자기 배만 불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성도들에게 관심있는 척 하지만
교회 키우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교회 키워서 자기 배만 불리고 
키운 교회는 온갖 편법을 사용해서 자식에게 물려주는 목사,
교회 재정을 자신의 쌈짓돈으로 생각하는 목사,
성도들을 대상으로 성범죄 저지르는 목사 등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고 야망을 사랑하고 
욕정을 사랑하고 
이기적인 탐욕을 사랑하는 타락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조차 용납하고 수용하는 건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런 자들은 저주해야 올바른 사람이다.

사랑의 모습 속에 저주가 포함된다는 사실은
역시 분별이 없으면 올바른 사랑이 불가능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5. 나는?

매일 나의 묵상글을 읽고 
그 글을 복사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달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 중에 한 분이 연락을 주셔서
식사를 한 번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다.

코로나 시대라서 집에서 식사하자고 하셨는데
집으로 들어가서는 깜짝 놀랐다.
시간과 정성이 너무 많이 들어간 음식들,
손수 캐고 만들고 담은 음식들이 
상 위에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올 때는 몸에 좋은 음식들을
한 아름 싸주시기까지 하셨다.

담임 목사도 아니고,
유명 목사는 더욱 아니고,
그렇다고 기복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목사는
더더욱 아니고,
그저 숨어 있는 무명의 목사에 지나지 않는 나에게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마음에 깊은 감사가 올라왔고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그 분과 잘 아는 분이 전화를 주셨다.
그 분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다가
제 생각이 났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성껏 준비해서 식사를 대접하신 것이라고 
전화 주신 분이 말씀해주셨다.

목사인 내가 가서 기도해 드리고 교제하는 것이 
그 분에게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갔었는데,
오히려 위로가 필요해 보이는 성도인 연약한 목사를 
그 분이 찾아주시고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으로 
위로를 전해주신 것이다.

울컥하고 눈물이 나려했다.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나는 사랑이 너무나 부족한 목사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랑을 받는 목사다.
말씀의빛교회 성도들에게서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사시는 분으로부터도 
이토록 사랑을 받다니,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 성도들의 사랑이 주님이 나를 위로하심 같아서 
더 큰 감사와 감격이 된다.

이렇게 '성도들을 섬기는 성도'들에게는
목사인 내가 순종을 해야 하는 것이지 싶다.
순종은 일반신자들이 목사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도 일반신자들에게 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나는 목사다.
목사가 성도들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섬김은 
목사 자신이 말씀에 삶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고,
성도들에게 삶을 통과한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려는 갈망을 가진 성도들을
최선을 다해 돕고 돌보는 것이
목사인 내가 해야 할 일이리라.

그리고 한 편으로는 
주님 대신 돈을 사랑하고 자기 정욕을 사랑하는
타락한 목사 장로 집사들을 향해 저주하는 것 또한 
목사로서 사랑을 행하는 매우 중요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코로나 시대에 성도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있다.
너무 보고 싶어서 찾아가고 싶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담을 주는 것이 될 것 같아서 못하고 있다. 

그런데 성도들은 4개월간 지속된 온라인 예배지만
여전히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함을 가지고 
예배에 집중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힘쓰시고 
교회 밴드를 통해서 묵상한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런 비대면 교제가 서로 문안하는 좋은 통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 19라는 상황도 막지 못할
말씀을 향한 갈망과 사랑,
그리고 말씀을 통한 교제를 누려가는 것이,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성도 서로가 
어떻게 서로를 섬길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이 
'사랑'의 좋은 모습임을 믿는다.
 
이런 모습들이 
'마라나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라는 고백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싶다.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