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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언약장로교회 유승원 목사 '가정에 대하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7-02 00:36

시카고 언약장로교회 담임 유승원 목사.(사진제공=언약장로교회)


<창세기 37:1-36>
1. 요셉 이야기의 시작인데 집안 꼴이 한심합니다. 
최근 가정 문제의 기사들을 보면서 한탄합니다. 거룩한 성경의 선민 이스라엘의 식구들 모습을 보면 그런 가정 문제가 별로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12 지파의 골격을 시작한 야곱의 집은 콩가루 집안입니다. 
야곱의 분별력 없는 요셉의 편애. 
그렇다고 어린 동생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형들.
열 일곱, 아직 어리지만 그렇게 어린 것도 아닌데 꿈 꾼 것을 생각없이 자랑하여 형들의 미움을 사고 아버지에게까지 책망을 받은 요셉. 
잘못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장남이나 되어서 동생들의 정서를 무서워해 그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는 장남 르우벤.
나중에 예수님의 조상이 된 유다이지만 형제들의 살인을 막기 위해 기껏 내놓은 제안이 어린 동생을 팔아먹자고 하는 꼴이라니.
르우벤이 인신매매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옷을 찢자 비로소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나서 아버지 야곱을 속이기 위해 공모한 증거 조작까지.

이 사건 속에 비춰진 야곱(이스라엘) 집안의 모습에서 제대로 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2. 야곱,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는 하나님 강복의 대표적 집안인데 집안 꼴을 보면 가관입니다. 한심합니다. 안쓰럽습니다. 우리 주변의 가정 문제로 속 상해하는 분들의 집안 모습 중에도 이 정도면 챔피언 급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너무 의기소침하지 마세요. 

지난 어머니 주일 설교에서 “가정이 정말 천국인가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었지요. 모범으로 내놓을 만한 좋은 가정을 이루신 분들을 치하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지만 종종 어느 한 시점의 특별한 일들을 과장하고 치장하며 그 짧은 시간이나 지면에 한 이야기보다는 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물 속의 빙산 크기만큼 많은 간증이나 스토리들의 신화로 야곱 집안과 같이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내 가정과 식구들을 너무 의기소침하게 만들지는 마십시오. 

성경의 가정 중 결손 가정, 문제 가정 아니었던 경우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는 다들 어딘가 문제와 한계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또 그런 아픔 있는 가정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자랑은 하지 마세요. 잘못하면 위선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은 모범으로 내 놓을 자부심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은혜의 현장입니다. 

가정은 자랑할 모범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자비 없이는 같이 살 수 없는 죄인 현실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은혜의 현장입니다.

3. 몇 가지 가정 생활의 교훈을 이 콩가루 막장 집안 이야기에서 반면교사로 배우면서 오늘 주님이 주시는 기도의 제목으로 삼습니다. 기도 제목입니다.

(1) 어떤 일이 있어도 편애하지 마십시오. 편애가 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꾀가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정말 미련하게 요셉을 편애했습니다. 편애 현상은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당장 말 잘 듣고 기특해 보이는 사람에게, 그것이 자식이라 할지라도, 무심코 마음이 더 가는 것입니다. 속 썩이는 자식은 순간 미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 편애감이 지속되게 하지 마십시오. 편애는 죄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편애함으로써 결국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게 한(37:4) 야곱은 미련하고 조악했습니다. 자식이든, 친지든, 교인이든… 골고루 사랑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내 것처럼 자랑하지 마세요. 내 것이라 하더라도 자랑질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철이 없어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거기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죄인들 함께 사는 이 세상에서 나 잘 되는 것 보고 좋아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됩니다. 굳이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조장 때문이 아닙니다. 탈북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한국 병이 아니라 인간의 죄성입니다.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내가 땅을 사면 배가 아플 것이라는 것을 알고 관계하며 그렇게 이해하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 갖고 주책없이 자랑하여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하지 마세요.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고전 13:4). 자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렘 9:2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시 12:3). 할 말이 있고 하지 않고 품어 둬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아마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많을 것입니다. 자랑은 시기의 취약함을 안고 사는 인간을 시기하는 죄로 몰아갑니다. 

(3) 반면에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고전 13:4). 사람이 시기하지 않으면, 더 정확하게 말해서 시기심을 절제하며 극복할 수 있으면 최고의 인격입니다. 시기하면 결국 살인합니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잠 14:30). 야곱과 요셉의 잘못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유와 계기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요셉 형들의 시기가 결국 요셉을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기하지 않으면 온전한 사랑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뜻밖에도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일은 웬만한 공감 능력 결여의 사이코패스가 아닌 한 다들 그럴듯하게 해 냅니다. 그렇지만 ‘즐거워하는 자들과 진정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쉽지 않습니다. 참 인품의 그리스도인은, 즐거워하는 사람과 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자기 절제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죄인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시기가 본능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의 아들 가인은 동생을 시기하여 죽였습니다. 그 본능을 이기고 하나님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갖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시기가 없으면, 시기를 이기면 인격의 완성입니다. 시기하지 않으면 참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시기심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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