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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목신학원 조태성 교수.(사진제공=새생명교회) |
1. 종종 이런 감동을 주신다. 다음 날 아무 일정 없으면 부담 없다. 그러나 가끔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영적 은혜를 많이 부어주시면서 붙잡아주실 때가 있으시다. 내일도 지방에서 집회 있는 날인데...
“태성아 나와 좀 더 교제 나누자!^^”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그냥 감사해진다. 성령님께 지금 내가 필요하시다는 의미니까. 내가 이 시간에 무슨 큰 일로 기쁨드릴 수도 없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는데 성령님께서는 큰 기쁨을 얻으신다고 하신다. 지금 이 깊은 밤, 새벽에 내게 바라시는 마음은 이것이다.
2. “내 사랑아, 너는 내 친구라. 그러니 나와 함께 좀 더 있자. 나와 좀 더 교제 나누자. 네가 나를 느끼고 내가 너를 느끼는 시간을 가지자.”
가끔 설명하듯이 내가 새벽에 화장실 다녀오는 어린 딸내미들을 안아주고 있으면서 느꼈던 사랑, 충족감을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거다. 그저 그저 감사하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글로 나누다 보면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내가 항상 성령님의 임재를 느낌적으로 강하게 체험하며 교제 나누는 줄 오해하신다.
가끔 강렬한 느낌을 허락하시지만 매일 모든 순간 느낌이 중심이 된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많은 날, 많은 순간 느낌 아닌 믿음으로 동행하는 삶을 산다.
3.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건 믿음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하기에 느낌도 종종 허락하신다. 나 역시 느낌이나 기분과 상관없이 성령님과 교제 나누며 동행한다. 느낌에 기준을 두고 성령님과 친밀한지 아닌지 가늠하다 보면 혼란스러워진다.
도대체 얼마나 쎈 느낌이 느껴져야 친밀한 걸까? 얼마나 찌릿찌릿한 느낌이 있어야 친밀한 걸까? 얼마나 뜨거운 느낌이면 친밀하게 동행하고 있음을 납득할 수 있을까? 느낌에 친밀함의 기준을 두다 보면 점점 느낌과 체험의 늪에 빠진다. 느낌은 더 쎈 느낌을 추구하게 만든다. 체험에 매여 있으면 더 큰 체험에 매달리게 된다.
4. 중대형교회, 초대형교회들 부흥회 인도를 부탁받아 가면 가끔 담임 목사님들께서 부탁하시는 경우가 있으시다. 성도님들을 전부 앞으로 나오게 하여 안수기도 받도록 말이다. 순수하게 성도님들이 어찌하든지 은혜와 하나님 사랑을 경험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시다. 참 겸손하시고도 아름다운 영적 아버지의 마음이시다.
저녁 집회는 말씀 선포 후 교회에서 허락하시면 한두 시간 정도 통성기도 한다. 그러다가 성령님의 감동이 있으실 때 앞에 나와 기도 중이신 성도님들 계신 곳에 내려가 안수기도를 해드린다. 그러니 대형교회는 늦을 때는 새벽 2-3시에 끝날 때도 있다.
5. 안수기도를 해드리다 보면 방언의 은사를 체험하는 분들도 계신다. 임재체험을 하시는 분들도 가끔 있으시다. 임재가 강하여 눕는 분들이 있다. 내가 다가가는 길목에 계신 성도님들이 바다가 갈라지듯이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의 기도를 받고 그런 체험을 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우리 성도님들만 하더라도 부단히 가르친다. 그런 현상 없이 내면의 은혜와 성숙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함을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성령님의 임재를 강하게 나타내주실 때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며 눈물과 기쁨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가 병 고침이 나타나기도 하고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강하게 내적으로 체험하기도 한다.
6. 우리 교회에서처럼 외부 부흥회에서 임재 체험하신 분들 가운데 가벼운 질병부터 희귀병을 고쳐주시기도 하신다. 병원에서 진단 후 나았음을 목사님들이나 성도님들께서 알려주신다. 그런 소식을 전해주셔서 참 기뻤는데 나중에는 마음이 아프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그런 병 고침의 은사가 아직은 참여하신 성도님들 가운데 소수만 체험하신다는 거다. 잘 살펴보면 믿음이 좋다고 다 고침 받는 것도 아니다. 믿음이 소위 말하는 날라리임에도 고침 받는 분들도 있으시다. 그 모습을 보고 시험드는 분들도 가끔 있다. 누구는 고침 받고 누구는 고침 못 받는 이유를 뭐라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다.
7. 성경에서도 믿음이 있을 때 치유 받는 분들도 있다. 또한 믿음은 없는데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시고 살려주신 경우도 많으시다. 예수님 안 믿어도 고쳐주신다. 믿음 없는 제자들이 전도여행 나갔을 때도 병 고침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런 체험이 무색하게 제자들이 용을 써도 변화산에서 오신 예수님 친히 고쳐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할 때도 있다. 치유는 다양하다. 이 부분은 나중에 인도하심 있을 때 나누겠다. 10번째 도서인 <하나님과 친밀한 치유사역>을 보시면 더 잘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이런 질병과 문제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 자녀답게 지녀야 할 태도, 자세에 집중해야 함을 배우게 하신다. 치유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생각하실 주권이다. 결과는 교만하게 내가 생각할 영역이 아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자녀로서 믿음으로 기도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배우는 것이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이다.
8. 그래도 <전부 고쳐주시면 좋을 텐데>하며 내 부족함을 돌아보게 된다. <치료받지 못한 분들이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하는데, 그분들도 다 치유 받으셨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물론 앞서 나눴듯이 모든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성도님들과도 설교 가운데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시도록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충분히 말씀을 나눈다. 우리의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은사체험이나 축복, 환경에 달려있지 않다. 생명주신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달려있음을 붙잡고 나눈다.
믿음과 느낌을 설명하다 여기까지 나눴다. 중요한 건 믿음으로 동행하는 것이다. 느낌에 무게를 안둘 수는 없지만 지나치면 안된다. 슬기로워야 할 믿음생활이 느낌생활이 된다. 기복신앙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익숙해지면 느낌은 꽤 도움이 되기도 한다.
9. 가끔 내가 기도나 말씀을 깊이 파고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마음에 감동이 밀려온다. 주체할 수 없는 아버지 사랑, 예수님 사랑, 성령님의 사랑에 눈물이 쏟아지려고 한다. 갑자기 왜 그런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조금 아는 것은 친밀한 교제의 주도권이 내게 있지 않고 우리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글을 작성하는 새벽도 그 주권적이신 사랑에 감격하여 마구 작성중이다.
평소 나의 글쓰기 실력이 잘 훈련되었으면 이럴 때 더 잘 썼을 텐데 아쉽다. 내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여 영적 감동과 사랑을 글에 담아 표현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하나님 사랑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글에 잘 담아 표현 할 수 있을까.
10. 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논리나 인용 자료들이 아니다. 논리나 다른 요소는 부족하더라도 성령님의 임재가 담겨있어야 한다. 영적 생명력이 담겨있어야 한다. 논리와 다른 요소들은 시간이 흐르며 좋아질 수 있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님의 임재와 생명력이 글에 담겨지는 것은 공부나 책 읽기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려있다.
기독교 진리를 탁월하게 논리적으로 재배열하여 좋은 글을 만드는 것은 이미 실력 있는 분들이 꽤 있으시다. 나라는 부족한 그릇에 성령님의 기대하시는 글쓰기는 그분의 임재가 담겨있느냐다. 그래서 글 작성하기 전에도, 글 쓰면서도 성령님께 내 영혼이 집중해야 한다. 성령님을 의식하며 교제 나누는 것이 글쓰기 보다 더 중요하다.
11. 그분의 임재로 시작해서 그분의 임재로 마쳐지는 삶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성령님으로 시작했다가 언제 육체로 마칠지 모를 일이다. 그걸 경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느낌을 허락하시면 감사하면서도 없어도 그만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느낌이 아니라 믿음으로 동행하는 삶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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