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구 시인./아시아뉴스통신DB |
고덕산 자락에 매달린 작은 동네.
날마다 472번 시내버스 10번 왕복하는 후미진 동네.
비탈을 깎아 아파트는 제법 들어섰어도
산자락을 따라 두꺼비집 같은 낡은 집들 버티고 있지.
부모님이 비둘기처럼 깃들이고 사시다 떠나신 곳.
몇 발짝만 오르면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풍경소리 들리는 동네.
예전엔 화장터가 있던 자리.
구이면 평촌, 태실 사람들이 보광재를 넘어 장을 보러 오던 길목.
학이 깃들어 살던 곳이라서 서학동.
좁은목과 장승백이에 칼바람 불고,
순교의 피가 흥건하던 초록바위가 바라보이는 동네.
골짜기를 흐르는 물에 학산의 검은 뼈가 드러나 흑석(石石)이라지.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골짝마다 한지를 만들며 뼈가 휘도록 땀을 흘리며 살아 온 고장.
한지가 사라진 곳에서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벌어야 했기에
몸뚱이가 부서져라 일하며 살아 온 동네.
날이 밝기도 전에 일터를 향해 떠나는 사람들,
6시엔 수퍼와 반찬가게가 문을 열고,
6시 반엔 이발소와 미장원이,
7시엔 음식점들이 일제히 문을 열고,
자정 넘어야 하나둘 불이 꺼지는 동네,
아침마다 까치 울어 사람들을 깨우는 동네.
흘린 땀방울 골짜기에 넘치는 날 검은돌이 황금빛으로 반짝일지도 몰라.
[아시아뉴스통신=서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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