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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그릇의 밥을 위하여...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0-09-17 08:57

한 그릇의 밥은 접대의 의미
혼자 먹는 밥은 허기를 면하고자 먹는 밥일 뿐
이웃과 함께 먹는 밥은 친화다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아시아뉴스통신DB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밥이다. 밥은 쌀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쌀밥'을 가리킨다. 때로는 보리·콩·조 등을 섞기도 하고 감자·밤·나물·해산물 등을 섞어짓기도 한다.

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일본·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주식으로 하고 있다. 역사 또한 매우 오래되었다. 원시시대에는 토기에 물을 붓고 곡물을 익혀 먹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학자들은 쇠그릇이 보급되면서 밥 짓는 법이 발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영호남지역은 벼의 생산에 적합한 기후인데다가 철의 생산도 활발해 밥 짓는 법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아름다운 소리 중의 하나가 어머니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지을 때 나는 소리다. 도마에 칼 부딪치는 소리, 된장찌개 끓는 소리, 밥솥이 가쁜 숨을 토해내는 소리는 그야말로 음표 없는 노래다. 그 노래가 부엌 밖으로 퍼지면 정신없이 놀다가도 침을 꼴깍 삼켰다. 밥 냄새가 솔솔 퍼지면 허기가 배를 부풀게 하였다. 그런 저녁이 있어 아이들을 살이 찌고 키가 자랐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어머니가 지은 밥처럼 아내가 지은 밥 또한 온 몸을 뜨겁게 하고 마음을 실 찌우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그릇 부딪치는 소리, 밥상 차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 금세 힘이 솟구쳤다. 어둑어둑해지는 동구 밖까지 밥 냄새가 마중을 나오면 일터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다. 밥은 하루를 시작하는 힘의 원천이며 지친 하루를 풀어주는 해독제다.

윤기 흐르는 밥과 뜨신 국과 여러 가지 반찬을 대할 때면 기분이 좋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가장 반갑고 정겨운 소리는 ‘빨리 와서 어서 밥 먹으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말이나 ‘많이 드셔’ 라는 아내의 말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가난했던 시절의 밥은 꿈이었다. 밥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입이 먼저 벌어졌다. 그 시절, 어른들에게 들이는 인사말은 ‘밥 잡수셨어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밥 먹었냐?’ 또한 친지들은 ‘너네들은 밥이나 먹고 사느냐?’였다. 밥을 거르지 않는다는 것은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낸다는 뜻으로 통했다. 이런 말들은 밥이 행복의 바탕을 이룬다는 생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 그릇의 밥은 접대의 의미도 있다. 예전에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밥 한 상을 차려 대접하기도 했다. 또한 밥시간에 친구의 집을 방문해도 숟가락 하나 더 놓아 함께 밥을 먹곤 했다. 그 시절의 어머니들은 불시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밥을 넉넉하게 해두었다. 밥이 접대의 의미를 갖는 것은 다른 데에도 있다. 사잣밥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차라는 사잣밥은 실체가 없는 저승사자에게 하얀 쌀밥을 대접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에서 조상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그렇다고 하지만, 먹기 위해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일을 하다가도 때가 되면 밥 먹자며 일어선다. 날마다 삼시 세 끼를 먹어야 하는 밥이지만 밥의 의미는 각별하다. 사람은 만나자는 이야기도 흔히 ‘밥이나 같이 먹자’라는 말로 대신한다.

밥상머리에서 마주하는 가족은 밥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의 식구(食口)다. 즉 ‘함께 먹는 입’이라는 뜻이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훈훈한 뜻을 갖고 있다. 식구가 확장되면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된다. 관계 역시 밥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사, 친구, 애인할 것 없이 밥을 함께 먹음으로서 인간관계는 돈독해 진다. 혼자 먹는 밥이란 허기를 면하고자 먹는 밥일 뿐이다.

똑같은 쌀로 만든 밥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목구멍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밥 이름이 달라진다. 옛날에는 임금이 드시면 '수라', 양반이나 윗사람이 드시면 '진지', 하인이나 종이 먹으면 '입시', 심마니들이 먹으면 ‘무리니’, 귀신이 먹으면 '메'라고 한다.

상황에 따라 밥의 의미는 달라진다. 부모와 함께 먹는 한 그릇의 밥은 존경이다. 친구와 함께 먹는 한 그릇의 밥은 우정이다. 애인과 함께 먹는 한 그릇의 밥은 사랑이다. 이웃과 함께 먹는 밥은 친화다. 그러나 갑을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먹는 밥의 의미는 위험 그 자체다. 한 그릇 밥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 잘못되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 한 그릇의 밥을 잘못먹는 것은 차라리 굶는 것만 못하다.

오늘도 우리는 밥을 먹는다. 밥은 삶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위하여 일하고 일하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 문제는 밥그릇 싸움이다. 인구가 많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도처에서 밥그릇 싸움이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노점상끼리 벌이는 자리다툼에서 부터 정당 간의 우위다툼 등 다양하다. 크게는 국가 간에 일어나는 전쟁을 비롯해서 석유 자원을 놓고 다투는 것 등은 결국 밥 그릇 싸움이다.

하루만 굶어보면 한 그릇의 밥이 얼마나 달큰한지, 울컥 눈물 쏟게 하는지, 얼마나 그리운 설렘인지 안다. 뿐만 아니라 한 그릇의 밥의 진실과 엄중함을 스스로 깨닫는다. 밥이야말로 숱한 생명들을 불러일으켜 세우는 신비의 묘약인 동시에 경이 그 자체라는 것을 안다.

밥 한 그릇 앞에서 감사할 줄 모르고 옷깃을 여밀 줄 모르는 사람은 그 누구 앞에도 설 자격이 없다. 밥알 하나하나가 천지조화 빚어 만든 들녘의 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사 시간은 하늘에 드리는 제사이며, 만복의 기쁨을 알게 하는 시간이다.

결론은 자명하다. 한 그릇의 밥을 얻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삶의 질이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며, 적당히 즐기는 삶이 필요하다. 나의 한 그릇의 밥을 위해 남의 밥그릇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허기진 자에게 한 그릇의 밥은 꽃보다 향기롭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께서 말하기를 ‘민유방본 식위민천(民惟邦本 食爲民天)’이라고 했다. 이 말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는 뜻이다. 지금도 늦지 않다. 한 그릇의 밥을 위하여 땅을 파고 씨를 뿌려야 한다.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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