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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성웅 前 광양시장, “백운산 '국립학술공원'으로 지정해야”

[광주전남=아시아뉴스통신] 조용호기자 송고시간 2020-10-26 13:43

이성웅 전 광양시장./아시아뉴스통신 DB


[아시아뉴스통신=조용호 기자] 우리나라 국립공원 지정 배경을 보면, “자연 경치와 유서 깊은 사적지 및 희귀한 동식물을 보호하고 국민의 보건·휴양·교화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지정한 한 국가의 풍경을 대표하는 수려한 자연 풍경지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취지에 맞춰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은 1967년 12월에 지정된 지리산 국립공원을 위시하여 지난달 4월 15일에 태백산 국립공원에 이르기까지 총 22번째 국립공원이 탄생하였다. 우리지역 백운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받고자 4년여 동안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동안 백운산은 일제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관리되어 오다가 광복 후 미군정청에서 적산으로 접수한 후 1946년에 국립 서울대학교에 2026년까지 80년간 무상임대를 해주어 대학 학술림으로 관리해 오고 있다.
 
그러던 중 2011년 12월 서울대학교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형 조직으로 전환해 인사와 조직 재정 등의 측면에서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서울대 법인화 법이 시행됨에 따라 국유지인 학술림을 법인화 국립대학으로 무상 양여코자 하는 과정에서 이를 무산시키기 위해서 국립공원으로 전환해달라고 광양ㆍ구례 주민 모두가 강력하게 요구하게 되었다.
 
백운산의 국유지는 116.93㎢(약 3500만평)로 광양지역 84.83㎢(약 2545만평) 구례 30.0㎢(900만평) 순천 12.58㎢(377만4000평)로 되어있다.
 
학술림이 국립공원으로 전환케 되면, 관리권이 국립공원 관리공단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므로 서울대 측에서 국립공원화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닌지? 현재 제주도 한라산 국립공원은 제주특별자치도에 관리권을 이양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이를 준용하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기존의 일부 국립공원을 국립지질공원화 하는 움직임도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백운산이 갖고 있는 자연생태계ㆍ자연경치 뿐만 아니라 지리ㆍ인문ㆍ사회ㆍ경제적 측면까지를 아우르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고 다양하기 때문에「국립학술공원」화 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첫째, 지리ㆍ인문학적 측면
 

전국적으로 백운산이라는 산 이름을 갖고 있는 곳이 14곳이나 된다. 그러나 광양 백운산(1222m)은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2744m)에서부터 시작하여 한반도 최장맥 끝 지점에 놓여있는 산이다.
 
백운(白雲)의 의미는 사찰 선방에서 제일 큰 스님이 앉는 자리가 백운이라고 한다. 동쪽으로는 억불봉(億佛峰 1008m)과 불암산이 있다. 백운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중간쯤에 옥룡사와 운암사가 있다.
 
도선국사(827~898)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이곳에서 35년간 주석하고 있으면서 고려를 건국하는데 산파역을 맡은 스님이다. 도선은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노자의 도교와 접목한 선종의 신봉자로서 우리나라 도참설의 비조이기도 하다.
 
고려 태조왕건의 유훈이라고 하는 훈요십조 1ㆍ2조에서 사찰의 난립을 경계하는 입장에서 도선비기의 산수(山水)의 순(順)과 역(逆)을 점쳐놓은 지역에만 사원을 건립하도록 하였다.
 
또한 도선은 지기(地氣)가 약한 곳은 인작(人作)으로 조산(造山)하거나 사탑을 세워 비보사탑설을 주장하였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을 사랑하는 뜻이 담겨있으므로 오늘날 입장에서 보면 도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도선 이후 고려시대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통진대사 김경보, 해동제일 문장가 김황원, 이무방 조선조 중종 때 도학정치를 주장하다 화순동복에 유배당한 기묘사화 명현 신재 최산두 한일병탄소식을 접하고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황현 선생은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둘째, 생태학적 측면
 
백운산의 조성연대는 지구 탄생과 함께하는 40억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백운산의 모암(母岩)은 화강편마암으로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 성분이 약 30여종이나 함유되어 있다.
 
이처럼 모암(母岩)이 풍화해서 조성된 비옥한 토양이기 때문에 서식하고 있는 식물 종수가 제주도 한라산 다음가는 950여종에 이르고 있다.
 
특히 약리효과면에서 항암성이 뛰어난 백운풀을 비롯하여 약용식물이 650여종이나 서식하고 있으며, 영양성 미용성이 뛰어난 식물도 많이 분포되어 있는 약산(藥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 또한 다양한 종수가 서식하고 있고 개체수도 증가하고 있다. 미래 성장 동력은 바이오 산업이 대세를 이루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서울대와 광양시가 뜻을 모아 백운산 약용식물자원 연구소를 건립하면 국가나 지역발전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전에 대학 측과 MOU도 체결한 바 있다.
 
셋째는, 산업경제적 측면
 
고로쇠 약수는 이곳이 시배지(始配地)로서 그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농가소득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때는 밤 주산지로서, 지금은 매실의 주산지로서 이름이 나있다. 봄소식을 전하는 맨 처음 축제가 매화문화축제가 되고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탐방객이 방문하고 있다.
 
백운산 곳곳에 피톤치트가 많이 배출되는 집단 편백 군락지가 산재해 있어 힐링 캠프의 적지가 될 수 있다.
 
넷째, 농림부 시범 백운산 협업개척농장
 
우리나라 최초로 산지농업을 중심으로 한 협업농장이 백운산에서 1961년 8월 민간운동으로 발족하였다. 협업농업이란 원래 사회주의적인 농업생산방식으로 공동생산 공동판매 공동분배 방식인 농업으로, 한국농업의 선구자 서정(墅丁) 김동혁 선생이 주도하였다.
 
5.16 군사정부에서는 초기에 중농정책을 추진하면서 백운산 협업농장을 롤모델로 삼고자 하여 당시 농림장관이었던 장경순(재임기간 61. 5. 20 ~ 63. 6. 24) 장군이 직접 지휘하면서 농림부 직할 마을로 선정하였다.
 
다섯째, 동족상잔 비극의 격전장
 
여순사건을 주도한 14연대부대 퇴로가 백운산을 거쳐서 지리산으로 되었고, 6·25 한국 전쟁 종전 때는 인민군의 잔류부대가 백운산으로 입산함에 따라 국군과 치열한 전투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지금도 백운산 곳곳에 격전지 잔재가 남아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백운산은 지리·인문학적 측면, 생태학적 측면, 산업경제적 측면, 협업개척농업 측면 그리고 동족상잔의 격전장 등 다양한 행태의 문화유산과 자원을 갖고 있다.
 
이를 잘 엮어 내면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과 산업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국립공원화 하기보다는「국립학술공원」으로 지정하여 서울대를 비롯하여 지방 국립대학이 공유하는 국립학술공원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 인문사회학적 연구와 산림자원 육성과 미래 생물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바라기는 더 이상 소유권 이전 문제로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백운산을 현실적으로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cho5543708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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