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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순창의 샘(우물) 이야기_(26) 적성면 임동리 아랫새암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0-11-14 07:12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주민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아랫새암
당산제를 지낼 때도 제일 먼저 찾은 것이 새암
가장 신성시 여긴 것이 마을 새암
순창군 적성면 임동마을 아랫새암, 사각, 깊이 1.5m./아시아뉴스통신DB
순창군 적성면 임동마을은 중고봉(187m)에서 마을 중앙으로 한 산맥이 내려와 한 복판에서 머무르고 백호동은 마을 중간으로 뻗어 내리며 동남쪽으로 마을 앞에 와서 머무르고 중고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다가 남쪽으로 돌아 마을 앞에 이르니 청룡동이다. 특이한 지형상인 것은 마을 중앙으로 내려온 산맥을 향하여 청룡 백호등의 가닥가닥이 중앙 맥에 와서 닿으니 마을이 이 골짝 저 골짝에 형성되어 있다.

임동마을은 나무가 무성한 마을이라 하여 한자음 그대로 숲마을 즉 임동(林洞)이라 하였다는 설과 중고봉 아래에서 어진 사람이 많이 나서 인동(仁同)이라고 하였던 것이 임동이 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으나 두 가지 다 사리에 맞지 않은 것 같다. 임동은 세 뜸('뜸'은 마을의 작은 단위)으로 이루어지는데 마치 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매미 형상 같다고 한다. 임동 주위 그 형상이 실가닥 꾸리처럼 생겼다해서 임동이라 부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두류분맥의 산으로 산아래 남쪽에 임동마을 매미터가 있다. ‘매미터’는 조선후기 명창 장자백과 그 일원이 하루종일 판소리가 끊이지 않고 불렀고 그 소리가 매미우는 소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시대 최고의 여류 명창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소리꾼 이화중선(李花中仙: 1898~1943) 명창이 이곳 임동마을에 살고 있던 장덕진에게 소리를 배웠다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임동마을에 아랫새암과 웃새암이 있다. 웃새암이 물이 맑고 물의 양이 많아 임동 주민 대다수가 웃새암 물을 마시고 살아왔다. 그러기에 웃새암은 마을 형성기와 같이 오랜 세월을 마을 주민의 생명수로 역할을 다하여 왔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주민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아랫샘이 있다. 긴 역사를 가지고 온 아랫샘은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낼 때 제일 먼저 아랫샘을 항상 깨끗이 하여 아랫샘 주위에 금줄을 치고 금토를 하여 일주일 동안 부정한 사람들의 새암 사용을 금했다.

당산제 당일 날 아침부터 아랫샘물을 사용하여 제물을 장만해서 밤이 되면 제물을 당산에 옮겨 놓고 상을 차렸다. 그러면 마을 농악대가 제일 먼저 쇳소리를 내고 아랫샘에 가서 샘굿을 한마당 치고나서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당산제를 알린 후 당산에 당도하여 당산굿을 신나게 친다. 그리고나서 절차에 따라 당산제를 올린 후 농악대가 한바탕 당산굿을 친 뒤 당산제 제사음식을 참석한 마을사람들과 농악대 등이 음복하며 즐거운 뒷풀이를 즐긴다.

이렇게 중요한 당산제를 지낼 때도 제일 먼저 찾은 것이 새암이다. 마을에서도 가장 신성시 여긴 것이 마을 새암이었다. 임동에서 새암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오늘까지도 땅 속에 묻지 않고 잘 관리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현상인지 모른다.

다른 마을에서는 상수도가 개설 된 즉시 공동우물을 땅속에 묻고 복개공사를 하여 공터로 쓰고 있는 마을이 허다하다. 참으로 한심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대대손손 조상들이 마시고 살아온 물이 아닌가.

지금도 새암 관리를 잘 하고 계신 임동마을 어른님께 큰 칭찬을 드리고 싶다. 앞으로 더욱 잘 관리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출처. 순창문화원)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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