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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현 논설위원. 교육학박사.(사)한국미래문화연구원 부원장./아시아뉴스통신DB |
이 자리에서 이상혁(사법연수원 36기) 검사와 송민주(42기) 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 씨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수사의 최종 책임자로서 20년이라는 오랜 수감 생활을 하게 한 점에 대해 피고인과 그 가족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
윤성여 씨는 강간 살인 혐의로 1990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모범수로 감형을 받아 19년 6개월만인 지난 2009년 8월 14일 청주교도소에서 풀려 나왔다. 그는 세상을 향해 “무죄”라고 외쳤지만 그의 외침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억울하게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윤성여 씨는 채널A 방송에 출현해서 “나는 절대 범인이 아닌데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나”란 생각으로 옥살이를 했다고 말한다. 1980년대 후반 ‘화성연쇄살인‘의 여덟 번째 사건 범인으로 지목되어 경찰에 체포 됐는데 당시 22살이었다. 경찰이 소아마비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피해자 집 담을 뛰어 넘은 범인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제가 시대의 희생양이 된 것 같다”며 경찰들이 그에게 자백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윤성여 씨는 “30년 만에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이춘재가 2019년 9월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을 했기 때문이다.
윤성여 씨는 피고인 신문에서 과거 수사 당시의 잘못을 인정한 경찰 등에게 “저는 용서한다”며 “20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해도 당시는 시대가 그랬던 것 같다.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성경에도 백번이고 만 번이고 모든 잘못을 용서하라고 한다. 그들을 용서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증인으로 나와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 에게도 늦게나마 자신이 저질렀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줘서 그나마 위로가 되고 이춘재에게 ‘고맙다’고도 했다. 일부 경찰들은 ‘미안하다’고 했다”면서 “그걸로 만족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윤성여 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나간 세월을 누굴 탓하겠나. 탓해봤자 내 마음만 아프지 않겠나. 내가 그 당시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 사람들한테 꼭 다시 묻고 싶은 게 있다. “왜 그랬는지, 또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라고...
일부에서는 그의 보상 금액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보상 문제에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보상 얘기 나오는 게 싫다고 말한다. 윤성여 씨는 어느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중 보상 문제를 꺼낸 기자를 향해 “기자님한테 20억을 줄 테니 감옥에서 20년 살아라” 하면 살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100억원을, 1000억원을 준다 한 들 내 인생과 바꿀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인생하고 돈하고 바꿀 수 없다. 청춘하고도 바꿀 수 없다. 보상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윤성여 씨는 세 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경기도 친척집에 있다가 화성으로 와서 트랙터나 경운기 같은 농기계를 수리하는 일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도 못 마쳤다. 교도소에서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해 최종 학력은 이제 ‘초등학교 졸업’이다.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하는 목표도 세웠다. 그리고 결혼도 소망하고 있다. 그는 출소한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교도소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너무도 변해버린 시대 환경에 적응하는 게 힘들지만 당당하게 산을 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용서’가 왜 필요한지. 걸핏하면 상대의 허물을 들춰내려는 사람들을 보면 20일간만이라도 아니면 2일이든지 2시간만이라도 옥살이를 체험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20년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데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겠는지.
이제는 용서의 시대이다. 우리 모두 지난 과오를 용서하고 화합의 시대를 열어가자. 나도 용서하고 싶다. 윤성여 씨처럼... 오히려 용서하지 못한 내가 미안하다. 그래서 용서한다. 모든 것을 털고 내게 오라.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논설위원, 교육학박사, (사)한국미래문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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