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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순창의 샘(우물) 이야기_(56) 금과면 방성리 웃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0-12-14 08:06

큰 산 밑에 자리 잡고 있어 물이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샘
졸졸졸 하며 흘러내려 듣기도 좋거니와 시원한 감정 갖게 해
매월 1회 이상 우물을 품어 청결에 열과 성을 다하여 관리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방성리 웃샘, 사각, 깊이 1.5m./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방성리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봉황리, 무정면 덕곡리 경계에 준수하게 솟아 금과면 전체를 내려다보듯 당당하게 서 있는 산이 서암산((瑞巖山, 450m)이다. 상서로운 정기가 서려 있고 산세가 좋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일명 세암산으로도 불린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쏟아지듯 뻗어 내리다가 동북쪽으로 박환하면서 해발 189.9m의 고지를 이루고 다시 동북쪽으로 내려와 머무르고 서암산 중간에서 북쪽으로 내려와 개장된 곳에 마을이 형성되니 방성리이다. 서암산을 현무로 주산은 마을 뒤에 작은 산이 두 서너 개로 이루어졌기에 어느 곳에다 집을 지어도 좋을 만큼 터가 좋은 마을이다.
 
원래는 방기미, 방그미로 불렀다. 풍수지형으로 보면 그 형상이 개가 굴로 들어가는데 꼬리만 보이는 형상이기에 방기미굴이란 의미로 방기미라 하였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방기미라는 말이 방그미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방성리는 곡부공씨 집성촌이다. 공자의 64세손 학재(學齋) 공동(孔童)이 임진왜란 당시 전남 화순에서 방그미 마을에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순창군수로 부임한 이성열(李聖㤠 재직 1892~1894) 군수가 이 마을을 찾아 왔다가 공자의 후예가 사는 마을이니 방성리로 하는 것이 좋겠다하여 방성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제일 위에 방성 웃샘이 자리 잡고 있다. 웃샘 남쪽은 마을 쪽이어서 큰 길이 뚫렸기에 샘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문의 잘 방향을 잡아냈다. 샘은 정사각형으로 2개가 있는데 1개는 먹는 물로서 사용되고 1개는 허드렛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방성리 웃샘은 큰 산 밑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물이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물로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도 웃샘물은 졸졸졸 하면서 아랫샘으로 흘러내려가기에 듣기도 좋거니와 시원한 감정을 갖게 만들고 있다.
 
옛날에는 농악을 치면서 샘굿을 했다고 마을 사람들은 증언한다. 마을에 초상이 나면 우물관리에 신경을 썼다. 마을에 상여가 나갈 때면 우물을 멍석으로 덮었고 상여가 지나간 후에는 멍석을 벗기고 우물을 품어내어 깨끗이 청소하고 새 물로 채웠다. 그리고 매월 1회 이상 우물을 품어 청결에 열과 성을 다하여 관리하여 왔다.
 
그러나 현재는 상수도에 밀려 우물의 가치를 상실한 상태다. 관심 밖으로 벗어났기에 샘물이 썩어가고 있다. 샘물을 쓰지 않는다고 우물뚜껑을 만들어 날마다 씌워 놓으니 샘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물은 자연히 색깔이 변해가고 있기에 걱정이 된다.
 
뚜껑을 확 열고 물을 자주 품어주고 공기를 주입시켜야 할 텐데 마을에는 이 일을 할 만한 젊은이들이 없어 일손이 부족하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의 차지가 되어버렸는데 노인들은 마음이 있어도 힘이 벅차서 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다.

관리도 좋지만 샘의 물을 자주 써야 물이 썩지 않는다. 수돗물이 있어도 허드렛물은 샘물을 이용함으로써 그나마 물이 썩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수시로 활용해 주면서 샘 관리 잘 하십사 하고 부탁드려 본다.(출처. 순창문화원)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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