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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소를 알면 신축년(辛丑年)이 보인다(上)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1-01-01 08:31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아시아뉴스통신 DB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1. 가족 같은 소
 
옛날에는 한 집에 머슴이나 하인 또는 종과 함께 살았다. 이들을 생구(生口)라고 불렀는데 소도 생구에 포함하였다. 이처럼 소는 한 가족같이 사람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소를 가축으로서보다 사람에 가깝게 대해 왔다. 그 예로 충청도 일부지역에서는 어미 소가 새끼를 낳았을 때는 쇠죽에다 미역국을 말아주기도 하고 송아지가 태어나면 사람이 아기를 낳을 때처럼 부정을 타지 말라고 대문에 금줄을 치주기도 했다.
 
소는 우리나라의 농경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뛰어넘었다. 가정에서의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동력일 뿐 아니라 운송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금의 역할까지 하였다. 소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동물 중 하나다. 소는 우직하나 성실하고 온순하고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순종한다. 이러한 소의 속성이 우리의 정서에 녹아들어 여러 가지 관념과 풍속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는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옛날에는 소가 그리 흔치 않았다. 논이나 밭갈 때 사람이 소를 대신해서 쟁기를 끌었다. 그리고 일이 많거나 일손이 부족할 때는 소가 있는 집에서 빌려서 부렸다. 소를 빌리는 값은 사람 품값의 보통 다섯 배였다. 이런 소는 여러 가지로 사람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고기와 우유를 제공해 주며 타작마당의 끌매와 달구지 혹은 수레를 끄는 가축인 것이다. 수송아지와 암송아지는 제물로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였다. 그것을 팔아 대학 등록금도 마련했고 시집 장가를 가는 결혼자금으로도 사용했다. 소를 농사에 직접 이용한 것은 꽤 오래되었으나,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에 신라시대가 최초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고구려의 안악 고분벽화에는 바퀴가 달린 가마와 여물을 먹고 있는 소 그림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백제에서는 소를 순장(殉葬)했다고 한다.
 
2. 12지지(地支)
 
간지(干支) 표기는 천간(天干)이 먼저이고 지지(地支)가 나중이다. 천간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로 10개이며 지지는 자(子, 쥐), 축(丑, 소),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사(巳,뱀), 오(午, 말), 미(未, 양),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 해(亥, 돼지)로 12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소를 가지고 농사를 지은 우경(牛耕)의 출발은 신라 지증왕 3년(502)이었다. 당시 지증왕은 각주의 군주들에게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고, 처음으로 소를 밭가는 데 사용하였다. 우경은 농업기술상 혁명적 발전을 가져왔다. 우선 축력을 이용함으로써 작업의 능률성이 높아졌고, 사람의 육체적 피로는 그만큼 감소하였으며, 논밭을 깊게 갈 수 있어서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또한 소의 오물은 거름의 주원료가 되어 이 또한 생산량 증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는 이와 같이 농사에 이용되는 외에도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소를 이용해서 수레를 끄는 우차법이 일찍이 사용되었고, 젖과 고기가 식용에 쓰이며, 가죽과 뼈 또한 긴요하게 이용된다. 그리고 소의 담석인 우황은 약효가 뛰어난 '우황청심환'의 주원료이기도 하다. 소가 갖는 재산적 가치는 더욱 컸다. 송아지를 낳으면 온 집안의 경사였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사짓는 시골 출신들은 정성껏 키운 소를 팔아서 대학가고 시집 장가도 갔다. 우리네와 삶의 애환을 같이 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날의 추억 역시 소 풀 먹이며 개구리 잡으며 뛰어 놀던 내(川)가 흐르는 고향에 있기도 한 것이다.
 
전해오는 소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아득한 옛날에, 부처님이 뭇짐승들에게 ‘정월 초하룻날 아침 나한테 세배하러 와라. 제일 먼저 오는 짐승에게 1등상을 주는 것은 물론 다음 11등까지 상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였다. 이 말을 들은 뭇짐승들이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소는 힘쓰는 일이라면 몰라도 달리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말이나 호랑이 개에게는 물론 심지어 토끼나 돼지에게도 이길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소는 자기는 다른 짐승들 보다 워낙 느리니까 일찍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는 다른 짐승들이 다 잠든 그믐날 밤에 길을 떠났다. 이때 눈치 빠른 쥐가 이를 알아차리고 잽싸게 소의 등에 올라탔다. 드디어 소는 동이 틀 무렵에 부처님이 계시는 집 앞에 도착했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쥐가 날쌔게 한 발 앞으로 뛰어 내려 소보다 먼저 문안에 들어가서 넙죽 세배를 하였다. 쥐가 소를 제치고 1등이 되었다. 그래서 소는 2등이 되었고 한 걸음에 천릿길을 달린다는 호랑이가 3등이 되었다. 달리기에 자신이 있던 토끼도 도중에 낮잠을 자는 바람에 4등이 되었다. 그 뒤를 이어 용. 뱀.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차례로 골인했다. 그게 유교황제설에서 말하는 오늘날의 12지지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석가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에 모든 동물들을 다 불렀는데 열 두 동물만이 하직인사를 하기 위해 모였다고 한다. 석가는 동물들이 도착한 순서에 따라 그들의 이름을 각 해(년)마다 붙여 주었다. 쥐가 가장 먼저 도착하였고, 다음에 소가 왔다. 그리고 뒤이어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가 각각 도착하였다. 이것이 석가유래설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오른편에 있는 지혜의 문을 관장하는 보살이다. 하루는 석가가 대세지보살을 불러 천국으로 통하는 12개 문의 수문장을 지상의 동물 중에서 선정하여 1년씩 돌아가면서 당직을 세우도록 명 했다. 이에 대세지보살은 12동물을 선정하고 그들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 모두 불러 모았다. 12동물 중 고양이는 모든 동물의 무술 스승이므로 제일 앞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나머지는 무술 실력 순으로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돼지. 개를 앉혔다. 이렇게 12동물의 서열을 정한 후 대세지보살은 석가여래에게 훈계를 청하려고 맞이하러 나갔다. 이 때 석가를 기다리던 고양이가 갑자기 뒤가 마려워 참다 참다 못 참고 뒤를 보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공교롭게도 이 때 석가가 왕림하셨다. 석가가 소집된 동물들을 살펴보니 한 동물이 부족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고양이를 따라 구경 온 생쥐가 쪼르르 달려 나와 석가에게 말했다. 자신은 고양이 친구인데 고양이는 수문장의 일이 힘들고 번거로워서 수문장을 하기 싫다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노라 며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석가는 쥐에게 어쩔 수 없으니 네가 고양이 대신 수문장을 맡으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쥐를 포함한 12동물이 천국의 수문장이 되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고양이는 간교한 쥐에게 원한을 품고 쥐를 잡으러 온 세상을 찾아 다녔다. 이때부터 고양이와 쥐는 천적사이가 되었고 한다. 이것이 도교장설이다.
 
그 외에도 신체결함설이 있다.
명나라 ‘초목자(草木子)’에 이르기를 “쥐子는 어금니가 없고, 소는 윗니가 없고, 범은 목이 없고, 토끼는 입술이 없고, 용은 귀가 없고, 뱀은 다리가 없고, 말은 담이 없고, 양은 눈동자가 없고, 원숭이는 엉덩이가 없고, 닭은 생식기가 없고, 개는 위가 없고, 돼지는 근육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에 한 가지씩 부족한 동물들이 자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는 설이다.
 
12지의 순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래되기도 했지만, 음양오행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음양오행은 발가락 수를 통해 12지의 순서를 배치했는데, 세상 동물 중 한 몸에 다른 발가락 수를 갖고 있는 동물은 쥐밖에 없다. 쥐의 앞발은 4개로 음의 수이고 뒷발은 5개로 양의 수다. 그렇기 때문에 음과 양이 변하는 순간에 놓일 수 있는 동물인 쥐를 먼저 택했고, 그 다음에 음양이 순서대로 오도록 동물을 배치했다. 즉 쥐를 선두로 소(4), 호랑이(5), 토끼(4), 용(5), 뱀(0), 말(7), 양(4), 원숭이(5), 닭(4), 개(5), 돼지(4)의 순이다. 이 순서를 살펴보면 발가락의 숫자가 홀수와 짝수로 서로 교차하여 배열됐음을 알 수 있다. 이 12지는 시간신과 방위신의 역할을 하여 그 시간과 그 방향에서 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는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12지 중의 하나인 소는 우직하고 인내력이 많으며 성실한 동물로 상징되어 왔다. 그만큼 소는 우리 역사 속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해 왔다.
 
고대에 있어서 소 사육의 가장 큰 목적은 희생을 위한 것이었다. 삼국지 동이전 부여조에는 "나라에 군사가 있을 때면 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발굽의 상태를 관찰하여 그것이 벌어져 있으면 흉한 징조이고 합쳐져 있으면 길한 징조로 점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소가 그만큼 신성하고 믿음직스러운 동물로 받아 들어졌음을 나타내 주는 기록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농신(農神)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소를 바쳐 제사를 올렸다. 이 제단을 선농단(先農壇)이라 하였는데, 해마다 풍년을 빌기 위하여 경칩 후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선농제에 즈음하여 임금에게 바친 헌시 가운데에 "살찐 희생의 소를 탕으로 해서 널리 펴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 만복이 고루 펼치나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선농제에서는 반드시 소를 희생의 제물로 하고, 이것을 탕으로 하여 많은 제관들이 나누어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설렁탕’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소띠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해이다. 소띠 해는 을축→정축→신축→계축의 순으로 60 갑자에서 순환한다. 12지 중의 소는 방향으로는 동북, 시간적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두 개로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것과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씨앗이 땅 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는 참고 복종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니 찬 기운이 스스로 굴복하기 시작한 것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소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과연 소를 닮았을까? 우리 속담 중에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끈기 있게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성공을 한다는 가르침인데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소띠 태생이 많다. 그것은 바로 소띠들의 공통점이 근면과 성실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대개 소띠의 경우는 고집이 대단해서 황소고집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페이스로 밀고 나가기 때문에 설득하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인내와 투지력으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소띠들이다.

필자: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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