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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순창의 샘(77) 쌍치면 탕곡리 탕곡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1-01-04 08:20

지상부 높이 1m 정도이며 샘의 깊이도 4m 정도로 상당히 깊은 편
수돗물 설치 후 맑고 물맛 좋은 탕곡샘은 찾는 이가 없어
뚜껑을 덮어 햇빛을 보지 못한 샘물은 죽어가고 있기에 안타까워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탕곡리 탕곡샘, 사각, 깊이 4m./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탕곡리는 쌍치면의 12실(室) 중의 하나인 탕실(宕室)이라 불리어 왔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옥산이재 마을, 안골 마을, 방아 나들이 마을, 조개봉 마을 등을 묶어 탕곡리라 하였다. ‘탕실(宕室)’은 탄맥(炭脈)이 나온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장군의 투구 질그릇 관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탕곡 마을은 도도한 장군봉의 품안으로 감싸여 옥산으로 넘는 옥산이 재옥녀봉 밑 안골 방아 나들이 조개봉의 지명과 풍수지리설에 의한 지리적인 마을 형상이 옥녀탕실형(玉女宕室形)이라고 하는데서 마을명이 연유 되었다고 한다.
 
탕곡리는 북쪽으로 종곡리, 동쪽으로 옥산리, 남쪽으로 중안리, 서쪽으로 신성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쌍정선을 타고 영광정(迎狂亭)을 돌아 오르다 오른쪽 장군봉을 보며 감아 들어간 자리에 들어선 마을이다. 서쪽은 복흥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지로 방산천이 통과하는 골짜기다.
 
주변에는 조선 선조(宣祖) 때 정부의 변혁 사색당쟁으로 선비는 출사하지 않고 모두 산중으로 은거생활을 하게 됨에 이곳에도 4색 당파의 한 사람인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처음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이 형성되면서 이곳 현재 마을회관 앞에 깊숙이 파 놓은 탕곡샘이 자리 잡고 있다. 장군 봉 줄기 따라 감싸고 있는 한 지맥 끝에 우물이 있으니 그 깊이도 만만치 않다.
 
지상부의 높이가 1m 정도이며 샘의 깊이도 능이 4m 정도 되어 시골 샘치고는 상당히 깊은 편이다. 샘이 깊으니 물이 맑고 맛도 좋아 탕곡리 주민 모두가 탕곡샘을 이용하여 먼 훗날부터 살아왔다고 전해온다.
 
옛날에는 벼슬께나 하신 분들이 은거한 마을이고 보니 마을에는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지곤 했다 한다. 여름철 무더운 밤이면 글 읽는 학동들의 밤공부가 끝나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이곳 탕곡샘을 찾아 등물을 하며 땀을 식히곤 각자 집으로 가서 잠자리에 들어 포근한 잠을 잤다고 한다.
 
또 장군봉이 뒤에서 버티고 마을을 감싸고 있어서인지 이곳에 은거하신 분들의 신상에도 별 탈이 없이 지내다가 가시고 마을 분들에겐 건강하게 해 주셔서 장수하신 분과 효자, 효부가 많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귀중하게 여기고 샘을 관리하고 살아온 탕곡리에도 몇 년 전 수돗물이 각 가정에 설치된 후로 맑고 물맛 좋은 탕곡샘은 찾는 이가 없기에 마을에서 뚜껑을 덮고 관리한바 햇빛을 보지 못한 샘물은 죽어가고 있기에 안타까운 현실이다.
 
옛날에 조상들이 줄곧 마시고 살아온 탕곡샘, 언젠가는 우리가 또 이 샘물을 마시며 살아갈 날이 꼭 오리라 생각되기에 수돗물도 좋지만 자연의 탕곡샘을 잘 관리하여 영원히 물을 보존하자고 권장하고 싶다.(출처. 순창문화원)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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