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4일 화요일
뉴스홈 종교
예심교회 신아브라함 선교사 '주님 안에서 사는 방법'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1-05 18:15

예심교회 신아브라함 선교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주님 안에서 사는 방법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90:13)

Relent, O LORD! How long will it be? Have compassion on your servants. (Ps90:13)
   
   
하나님은 대대로 인생들의 거처가 되십니다.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부름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며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면 금방 아십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말을 들으십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90: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91:1,2)

우리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살기 위해서는 그 키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그 키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9,10)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에 거하는 키는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는 데 있습니다. 

아버지를 불러야 그 다음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영적인 관계는 부르는 것이 시작이자 끝입니다. 가장 영적이고 하나님을 거처로 삼고 살았던 인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부르는 키를 잘 사용했습니다.

반면에 멸망의 길을 갔던 사람들은 물이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서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불렀지만 기회는 지나간 후였습니다.

멸망의 길을 갔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특징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부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대신에 마귀 사단을 부르며 마귀의 떡을 얻어먹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인격적인 누군가를 부르는 일은 위험한 일입니다. 반면에 인격적인 창조자를 부르는 일은 위대한 일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많은 신학 지식보다 하나님을 부르는 행위가 더 위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적인 글을 읽는 것도 잠시 멈추고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성패는 하나님을 부르느냐 마귀를 부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혹여나 죽은 사람 중에 잘 아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절대로 그 이름을 부르지 마십시오. 죽은 그 사람은 올 수 없고 마귀가 그 사람을 대신해서 올지도 모릅니다.

어렵고 외로울 때나 형통의 때 인생의 모든 순간에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아버지시요, 친구인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찾아오실 것입니다.

주님, 내가 다윗처럼, 모세처럼, 욥처럼,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처럼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기 원합니다. 내가 부를 때 찾아오셔서 나의 영원한 거처가 되어 주옵소서!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급상승 정보

포토뉴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