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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상업주의와 순수에 관하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1-13 00:03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상업주의와 순수에 관하여

 공산주의의 몰락은 한편은 안도감과 함께 이상적인 정신 세계의 가치가 함께 사라지는 것 아닌가, 아쉬움도 갖는다. 공동체의 가치와 상부상조를 강조한 공산주의는 인간의 타락성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 속에서 자멸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꿈도 함께 잃어 버린 것이 아닌가?

이 세계는 자본의 위력 앞에 모두 무릎을 꿇는다. 자본은 마치 신처럼 사람들의 경배를 받고 있다. 모든 학문도 그것이 수익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는가? 현 세대는 순수 학문이 서 있을 땅을 잃어 버리는 것 아닌가? 우리 세대에는 문학, 철학과 같은 순수 학문의 가치를 알고 그런 학문을 공부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고 본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충분한 물질적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외면을 받는 것 같다. 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세대를 살면서, 영역에 관계 없이 사람들은 물질적 보상과,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 역사에 있어 가장 풍부한 물질적 혜택을 누리면서, 여전히 더 크게 물질에 굶주린 삶을 살지 않는가, 탄식의 마음을 갖는다.

이런 세태가 교회 안에서 조차 기승을 부리는 현실에 대해 몹시 답답하고 눌린 마음을 갖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가 가진 재화의 양이나, 그가 벌어 들이는 물질의 양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유명한 운동 선수들,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만져 보지 못하는 엄청난 돈을 벌어 드리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거두는 삶의 의미나 가치는 물질에 있지 않다고 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공감을 할까?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일부 대형 교회 목사님들은 물질 주의, 성공주의로 큰 교회를 이루고 마치 성공한 목회자인 양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하나님 아닌 물질이나 지위에 의해 만족이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속 마음은 이미 텅 비어 있음의 표일뿐이다. 사람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그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으로 증거되고 있다(엡1: 23). 그만이 만물, 또는 사람을 채울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고, 그 아닌 다른 것에서 만족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헛된 우상 숭배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 안의 일부 사람들, 또는 교회를 빙자한 기관들, 기독교 단체들의 속 마음은 상업주의의 지배 속에 있지 않은가? 항상 갖는 의문이다. 일의 목적이나 삶의 목적이 그런 삶의 자리를 맡겨 주신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이해 관계나 이익을 집착하고 있다는 쓸쓸한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근본적인 신앙관이 흔들리는 데서 시작한다고 본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맡겨 주셨다. 그것이 가정 속의 일이든, 직장 속의 일이든, 교회를 섬기는 일이든, 모두 하나님이 심어 주신 삶의 자리, 소명의 자리인 것이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의식하며 성실히 섬길 것을 요청받고 있다.

 그런 소명의 삶을 사는 사람은 그 직업이 무엇이든, 자기 자리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당당하게 살 수 있었다. 미국 초기 사회와 삶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발을 고치는 사람이나 변호사나 모두 당당한 의식 속에 살았다고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맡겨 주신 소명의 자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심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신념으로 이날까지 살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보는 풍경은 가슴을 누를 때가 많다.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업주의, 물질 지향적인 의식과 삶을 일부 교회 안 사역자들에게서 볼 때 그렇다. 본인들은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헤아리지도 못할 것이다.

이런 상업주의와 상관해서 삶의 순수성, 순수한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순수함이란 그 일의 가치, 그 하는 일이 하나님 안에서 가치 있음을 알때, 사람들은 순수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게 된다. 그것이 무엇을 벌어 드리고, 어떤 소득을 주는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일과 섬김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함으로 상업주의를 떠나 순수한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순수함을 찾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에서 마음을 떼어낼 수 있다. 섬김 자체의 의미를 알고, 그 섬김 속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만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 보며, 그를 경배하며 섬기는 삶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무슨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섬김 자체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 기복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섬김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 섬김이 가져다 줄 보상을 염두에 두고  섬긴다는 점에서 몹시 타산적이고, 섬김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그런 신앙 생활 속에서 어느 덧 상업주의가 들어와서 섬김을 재화로 환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 순수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왜 사람들은 이악스러운 존재로 변해 가는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자본을 중시하는 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의 가치를 재화의 양으로 평가하는 세대를 살기 때문이라고도 하겠다. 그런 점에서 신앙 생활을 바르게 하는 삶은 항상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이 아닐 수 없다.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는 뜻에서 그렇다.

곰곰히 생각하면, 기독교는 결코 대중의 종교가 아니다. 적은 자들, 남은 자들의 신앙 생활이다. 이 시대, 자본주의, 물질 주의, 상업주의의 거대한 홍수를 거슬러, 좁고 외로운 길, 삶의 가치와 순수함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고고한 길이 바로 참 기독교 신앙 생활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 적은 무리를 바라 보면서,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 32)" 말씀하셨다. 참 신앙 생활은 떠들석한 대중과, 이 시대의 물질주의, 상업주의를 떠나, 살아 계신 주님을 하루 하루 고백하고 그가 앞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는 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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