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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충남 인문학교육연구소장 |
어느 삶을 택할 것인가?
‘정도(正道)를 지키며 사는 자는 한 때 적막하고, 권세에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棲守道德者 寂寞一時 依阿權勢者 凄凉萬古)하였다.
양심을 지키며 정도(正道)의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살이나 남에게 있어서 다소 뒤쳐져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악한 끝은 없아도 선한 끝은 반드시 있다 하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손해보는 듯하고 뒤쳐진 듯 해 보이겠으나 양심과 정도의 삶을 사노라면 언젠가는 선(善)한 끝이 오게 되는 것이다.
권력의 노예가 되고 권력자에 아부하면 잠시는 영화를 취하는 듯 하나 그 것은 한 때뿐, 권력의 칼에 의해 그 끝은 비참함이다.
많은 권세가들이 권력이 영원할 줄 알고 권력욕을 불태우다 결국 자기 인생을 불태우는 불나비가 되고 만다.
지금은 빈천하지만 정도를 지키며 사는 삶, 한 때만 외롭다. 그리고 불의와 타협하여 쌓은 영화, 만고에 처량하다. 어느 삶을 택할 것인가?
채근담에서는 이렇게 답했다.‘차라리 한 때의 적막함을 택할지언정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말라.’( 寧受一時之寂寞, 毋取萬古之凄凉)하였다.
그렇다. 지금은 외롭지만, 힘들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꿋꿋이 인내하며 정도(正道)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의 끝이 처량하지는 않을 것이다.
돈, 권력의 부작용을 보라
‘세상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사물 밖의 사물을 본다.’(達人 觀物外之物)하였다. 약에는 치료의 순기능작용과 함께 지나치게 쓰거나 잘못 쓰면 나타나는 치명적인 부작용의 역기능이 있다.
이처럼 모든 사물에는 순기능의 작용 밖에 또 하나의 기능인 역기능의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사물을 대할 때는 순기능의 작용 밖에 있는 역기능의 부작용까지 살펴보아야 탈이 없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도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은 누구나 선호한다. 그런데 자칫 그것들에 의한 역기능의 부작용을 깨닫지 못하고 탐하다가 결국 그것들에 의해 파멸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돈이나 권력에 의해 파멸 당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황금보기를 돌보듯이 하고 권력을 헌신짝 버리듯이 하라 했음이 아니겠는가.
내 죽은 뒤에 나를 생각해 보라
‘세상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죽은 후의 자신의 모습까지 생각한다.’(達人 思身後之身)하였다. 살아있을 때 내 삶의 모습이 죽은 후에 어떻게 평가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가? 대체로‘그 사람의 후반부 삶’그리고‘인생을 어떤 모습으로 마쳤느냐’를 가지고 평가하게 된다.
그래서 개관사정(蓋棺事定) 즉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뚜껑을 덮은 뒤에 알 수 있다 하였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1835~1919)의 전반부 인생은 악덕 사업가로서 비판을 받은 삶이었다.
그러나 후반부 인생에서는 자신의 재산 4분의 3을 기부하여 자선사업가의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카네기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악덕사업가가 아닌 자선사업가의 롤 모델로 평가 받고 있음이 아닌가.
이완용은 서예와 학문에도 뛰어났다. 독립협회 회장직도 맡고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등 그의 전반부 인생은 나름대로 애국적 삶이었다.
그러다가 학부대신이 된 이후부터는 친일파로 돌변하여 을사오적으로서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삶이었다.
그리하여 후세까지 매국노라는 만고 처량한 이름을 남기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그 사람의 후반부 인생이 곧 그 사람의 전체 인생으로 평가 됨이라 하겠다.
얼마 전 전직 국회의장이 성 추문 사건으로 평생 쌓아온 명예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그래서‘살아서 명예 지키기 어렵고 죽어서 명예보존하기 어렵다.’함이 아닌가 한다. 이 모두가 살아있을 때 죽은 후의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렇다. 참으로 어렵고도 어렵지만 삶의 순간순간, 흐트러짐이 없도록 해야 한다.
참으로 힘들고도 힘들지만, 삶이 다하는 그 날까지 열정과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래야 죽고 나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 된다. 그래야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이 된다.
그래야 자식, 자손에게 떳떳한 삶이 된다.
<김충남 인문학교육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