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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허튼 소리에'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4-15 05:00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출애굽기 5:1-12)

1.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찾아가서 말했다.

(출 5:1, 새번역) 그 뒤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셔서 명하신 일을 하였으니
이제 드디어 놀라운 일이 일어나 
온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게 될 일이 기대된다.

그러나 일은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바로는 모세에게 '어찌하여 백성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느냐?'
라고 말했고,
감독관들에게 명해서 일을 더 고되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가 놀랍다.

(출 5:9, 새번역) 그들에게는 더 힘겨운 일을 시키고, 그 일만 하게 하여서,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여라.

2. 

누가 봐도 엄청난 숫자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가 사흘길이나 걸어가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허튼 소리'처럼 보였다.

이집트의 엄청난 노동력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것은 
바로의 입장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허튼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해야 했고 
그 허튼 소리에 노예들이 넘어가지도 못하게 해야 했다.
허튼 소리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허튼 소리를 하면 일이 더 고되어진다는 걸 알게 해야 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이 더 고되어졌다.
제공하던 짚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이전과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라고 한 것이다.

아무리 해도 정해진 양의 벽돌을 생산해내지 못해서 
감독관들은 이스라엘의 작업반장들을 때렸고,
작업 반장들은 바로에게 호소했다.

그 때 바로의 말이 또 의미심장하다.

(출 5:17, 새번역) 그러자 바로가 대답하였다. "이 게을러 터진 놈들아, 너희가 일하기가 싫으니까, 주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떠드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자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출 5:21, 새번역)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 보시고 벌을 내리시면 좋겠소. 당신들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소. 당신들은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셈이오."

일이 꼬이고 꼬여 
결국 모세와 아론이 원망을 듣는 데까지 간 것이다.
모세는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이제 모세는 누굴 원망해야 할까?
원망의 연쇄반응을 따른다면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해야 할 것 같고,
백성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이 원망의 연쇄반응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4. 

원망의 연쇄반응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한 가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일만 일어날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건 말 그대로 착각이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그렇게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은 '공중 권세 잡은 통치자'가 다스리고 있어서 
하나님의 일이 쉽사리 이루어지도록 가만 두지 않는다.

공중 권세 잡은 통치자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는 사실을 신자는 알아야 한다.

어떤 방해를 할까?
가장 먼저는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고
그 다음으로는 '허튼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허튼 소리'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것이 
공중 권세 잡은 통치자인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신자가 원망의 연쇄반응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사탄은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허튼 소리'로 간주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5. 나는?

말씀의 인도를 받고 
부산에서의 삶을 접고 경기도로 이사했었다.
신학 공부를 하고 목회자가 되어 
말씀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도 하지만
말씀이 나를 이끌어 그 길로 가게 한 것도 사실이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 이끈 길이니
그 다음은 탄탄대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탄탄대로와는 너무 다른 길이었다.

인수했던 학원은 2년이 채 못되어 어려워졌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다른 학원을 다시 인수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7년에 걸쳐서 총 5개의 학원을 인수하고 폐업했다.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살았다.

그런 와중에 신대원에 입학을 했다.
신대원 공부를 하는 중에 
휴학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모른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학원은 계속 운영되고 있어야 했고 
학원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삶의 모든 정황이 휴학을 말하고 있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신학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학원이 망하면 생계를 위해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휴학을 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최우선 순위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신대원을 휴학하지 않고 졸업하는 것에 두었다.

결국 한 학기도 쉬지 않고 신대원을 졸업했다.
겨우 한숨을 돌렸나 싶었는데
학원은 모두 폐업을 했고 
여전히 생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서 
외부 학원의 강사로, 개인 과외로 뛰어 다녔다.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주일에는,
신대원 2학년 때 개척한 교회를 섬겼다.

그런데 힘겹게 겨우 신대원 졸업을 했는데 
뜬금없이 교인들이 거의 모두 교회를 떠나셨다.
교회마저 없어지는 것 아닌지 하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삶의 정황은 이제 교회를 포기하고 
목사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허튼 짓을 했으니 이제 망하는 일만 남은 것처럼
나의 상황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절망 앞에서 울고 또 울었다.
감사하게도 사람 원망은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쏟아 놓았다.

말씀이 나에게 준 목사가 되라는 도전은
'허튼 소리'였냐고 하나님께 항변했다.
내가 목회자가 될 인격과 자격이 되지 않는다면
말씀을 묵상하는 그 긴 시간 동안
그렇다고 나에게 알려주셨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얼마나 울면서 하소연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항변하고 나서 나는 무엇을 했을까?
부산에 내려갔다.
바다를 보았다.
부산 밀면을 먹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순수하게 갈망하는 한 사람을 만나서 교제했다.

바다와 밀면과 순수한 영혼의 한 사람을 만나고서 
다시 돌아와서 3명의 성도와 함께 
교회를 다시 시작하다시피 했다. 

내가 목사가 되는 것이 '허튼 소리'라고,
더 근본적으로는 '말씀에 삶을 거는 삶'이 허튼 소리라고,
말씀 하나로만 교회를 세워가는 것도 허튼 소리라고,
나의 삶의 모든 정황이 말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말씀에 삶을 거는 것 외에는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적인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입장에서는
말씀에 삶을 걸고, 말씀에 삶을 거는 성도를 세우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성도 3명과 함께 
말씀 하나로만 교회를 세워가는 
새로운 시작을 했다.

개척해서 성도가 20명 가까이 되었을 때가 아니라 
성도 3명일 때 나는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목사 안수를 받은지 4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한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잘 먹고 잘 살아서도 아니고 
교회가 엄청 커져서도 아니다.

말씀 하나로만 교회가 세워졌고 
말씀 하나에 삶을 걸고자 하는 성도들이 한 분 한 분 모여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가 되고 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말씀에 대한 집중력이 흐려지지 않고 
말씀을 붙들고 하루하루 살아가려고 애쓰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 외부의 곳곳에서도 
한분 한분 말씀의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다. 

말씀 하나로 교회를 세우고
말씀을 스스로 묵상하는 성숙한 성도를 세우기 위해 
목사가 된 나의 시도가 
적어도 '허튼 짓'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다.

어제 밤에 갑자기 뜬금없는 카톡 문자가 하나 왔다.

"윤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지난번 누가복음 묵상도 그렇고
요즘 출애굽기의 묵상 나눔이 참 좋아서 
*** 의 예배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들에게 
많은 부분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자의 허락도 없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깊이있는 말씀을 나누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만약 말씀이 주는 도전을 '허튼 소리'라고 간주하고 
여전히 먹고 사는 일에만 온통 몰두했더라면,
신대원 가려고 경기도 올라왔는데
학원이 어려워졌을 때 신대원 공부를 중단하고 
학원을 살리기 위해 죽을 노력을 다 하기만 했다면,
교회를 개척한 지 2년이 넘어서 
교인들의 거의 다 떠나버렸을 그 때에 
교회를 포기하거나 목회를 포기했다면,
나는 목사로서 지금의 이 행복은 결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모든 어려움들은 나에게 계속 
말씀이면 충분하다는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살기 위해서 말씀을 더 붙들었고
하나님께만 하소연했고 
말씀의 생명을 누리길 포기하지 않았다.
생업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살기 위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일에는
더욱 나의 삶을 걸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님을
나의 삶에서 경험하고 누려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허튼 소리'라고 
삶의 모든 정황이 말을 하는 시간들을 보내더라도 
결코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않고 
더 말씀을 생명으로 붙들어 
기어코 하나님의 말씀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삶으로 증명하고 누려가는 나와 성도들의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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