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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임 영성 공동체 대표 정경호 목사, '한 사람의 신발끈'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4-22 04:01

송림교회 담임 정경호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너희 가운데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신발끈

제가 사는 마을에 최근에야 '수돗물'이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지하수를 주로 쓰다보니까 몸에 이상 징후들이 계속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성도님들에게 '지하수'는 상수도비를 아낄지 모르나 병원비를 더 많이 지출하게 된다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제 고향에서는 어렷을 적에 수돗물이 들어왔는데, 지금 제가 사는 곳에는 이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아무튼 어제 한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콘크리트 공사를 하시는 분이 교회 앞 마당에서 열심히 마지막 작업을 하시는 것을 뵈면서, "커피 한 잔 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커피 한 잔 드리고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 자신은 옆 동네의 교회를 다니는 안수집사님이라셨습니다. 젊었을 때 타락한 삶을 사셨다가 지금 사는 곳으로 내려오셨는데, 처음 뵈었던 사모님께서 성경을 읽는 숙제를 주시더랍니다. 물론 이때 당시에 '자살'하기 위해서 내려온 곳이었는데, 죽기 전에 성경이나 읽자 하고 1달에 3독씩을 하게 되었고, 이 성경을 읽는 가운데 믿음이 생겨서 지금까지 그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말씀에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헤어질 때 그 집사님께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무척이나 사랑하셔서 붙잡고 계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감히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하..." 하나님께서는 각처에서 당신의 사람들을 세대에 따라서 계속 부르시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오늘 묵상은 요한복음 1장 24-28절 말씀입니다.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세례 요한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바리새인들이 보냈지만, 결국 자신들의 꼬투리를 잡을 내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세례 요한에게 다시 묻습니다.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25)." 그러자 세례 요한의 대답이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26-27)"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일고 있는 세례 요한이었기에,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의 흠을 잡지 못하고 물러가게 됩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인 선지자의 메시지 앞에서 그 어떤 세력도 잠잠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서 도리어 부끄러워질 뿐이었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요한이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자신들 안에 이미 알지 못한 인물을 통해서 메시야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란 점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이 예상하던 인물들 중이 아닌 전혀 알지 못하던 곳에서 알지 못하는 인물을 통해서 메시야의 역사는 이미 일어났고 완성되게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세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곳에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틀릴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 제한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주님의 방법과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우리의 방법과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그의 신발끈(27)"이라는 말씀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메시야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세례 요한의 고백은 겸손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발끈을 감당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한 자락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역사를 감당할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능력을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발이 이스라엘에서의 공생애의 길을 걷도록 준비시킨 역사는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된 것입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능력과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AI-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돌파하며 하나님의 뜻을 세워갈 종들도 동일하게 주님의 뜻과 성령의 충만 속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거하는 자는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다민 사명자는 항상 주님의 신발끈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신앙고백적 모습을 끝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자비의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신발끈을 감당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적 교훈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이 시대를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세워갈 주의 종들을 불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우리도 주님께서 부르셔서 능력과 충만과 뜻을 보여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신발끈을 감당하기 위한 몸부림이 우리에게 있게 하옵소서. 이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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