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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근심하지 마십시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10-02 05:00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 1). 이 말씀은 대학 시절부터 위로가 되었던 말씀이다. 수 십년이 지나서도 근심되는 일이 있으면,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힘을 얻는다. 근심을 이기는 힘은 우리 주님을 믿는 믿음에 있다. 

수년 전 교우 한 사람이 머리 속에 피가 터져 수술을 할 때도 이 말씀을 의지해서 기도했다. 말 그대로 생사의 기로에 처한 위급한 수술이었다. 다행이 그 교우는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급할 때면 이 귀한 말씀을 의지해서 기도한다. 

그런데 이 말씀이 어떤 배경에서 주어졌는지? 과연 제자들은 그때 무엇을 염려했는지?  말씀의 앞뒤를 생각할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제자들이 근심했던 이유는 지난 3년 동안 따르던 주님을 잃게 되는 데 있었다. 제자들이 그 주님을 계속해서 따를 수 없다는 사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자기 주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근심에 빠졌다.

그때 제자들이 가졌던 근심은 자기 삶이나 생존의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들, 믿는 사람들이 갖는 근심의 대다수는 우리 자신이나 가족의 생존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닌가? 돈 떨어질 것을 두려워 하고, 병들고 망할까 두려워한다.  우리도 주님의 제자들처럼 주님을 따르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과 근심을 갖고 살까? 또는 내가 주님을 부인할 것을 근심하고 있을까?

우리가 갖는 근심과 염려의 대부분은 불신앙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온 마음으로 믿지 못하는 불신앙, 우리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기지 못한 삶의 열매로 근심과 불안을 안고 살기 쉽다. 이 근심과 불안은 불신앙에서 오는 것이다. "염려하지 말라" 하셨으면, 온 마음으로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염려를 이기는 길을 알려 주셨다: "나를 믿으라." 친히 나를 믿으라 하셨는데, 정말 믿고 염려를 떨쳐 버리고 살고 있는가?  염려와 근심은 불신앙의 쓴 열매이다. 더 나아가 염려하는 것도 주님을 불순종하는 것임을 모르는 신자들이 많다. 

심지어 주님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명령하셨다. 그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 하셨다.  그 말씀을 익히 사는 신자들이 그 명령을 순종하고 사는가? 순종해서 살려는 의지는 있을까? 우리 자신이 주님의 뜻이나 명령은 불순종하면서, 불순종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신자들이 많다. "기쁨과 감사의 삶"은 명령으로 주어진 삶이다. 그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 마음을 드리고 있을까?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온 마음으로 응답해서 사는 일에 실패의 삶을 사는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함이 결여 되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려는 의지가 있을까? 말씀을 들을 때도 자기 위주, 자기 편리를 따라 듣고, 그렇지 않으면 안들은 것처럼 살고 있다. 그것이 신앙 생활일까? 믿는다는 것은 자기 영혼, 자기 생명을 걸고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구원이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살고 있을까?

오래 전 제자들이 염려했던 것은 일상의 문제, 자기 생존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3년 함께 했던 주님을 더 이상 따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인해 근심이 가득했다. 그들에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가장 보람되고 충만한 삶이었다. 그런 주님을 더 이상 따르지 못한다는 말씀 앞에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 따르지 못함은 잠시 동안이었지만.

우리 신앙 생활을 돌아 보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일이 항상 자기 편의, 자기 중심적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사는 삶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염두에 둔 신앙 생활을 하는 것 아닌가, 묻게 된다. 혹, 주님을 잃어 버리는 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을까? 알게 모르게 주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할까? 우리 신앙 생활은 알게 모르게 자기 중심, 자기 편의대로 살고 있다.

신자들이 마음으로 소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물질적 풍요한 삶이 아닌가? 범사에 형통하는 삶을 내심 구하지 않을까? 모든 관심이 자기 자녀들에게 있는 부모도 보게 된다. 그들 마음 속에 주님을 잃지 않고, 주님을 따르려는 각오가 있을까? 그런데 요한 복음 주님의 위로의 말씀은 주님을 잃을 것을 불안해 사는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주신 말씀인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염려하는가? 우리의 관심은 어디 있을까?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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