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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가을 향을 담다 - 버섯 밥상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이상진기자 송고시간 2021-10-28 06:00

(사진제공=KBS)


[아시아뉴스통신=이상진 기자] 가을 산이 아름답게 물드는 시간, 숲솥 가장 깊은곳, 숨어있던 생명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귀한 송이부터, 그물버섯, 가지버섯, 말뚝버섯에 바위에 붙어자라는 석이까지, 산 사람들의 뜨거운 땀과 추억을 가득 품고 있는 그것! 가을 산이 내어준 가장 귀한 선물, 버섯이다.

■ 춘양목의 고향 봉화, 목도꾼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송이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는 예로부터 춘양목이라 부르던 적송 군락지로 유명하다. 최고의 목재로 손꼽히던 적송들이 춘양역으로 모이면서 붙은 이름인데, 당시  두명 이상 짝을 지어 소나무를 나르던 목도의 전통이 아직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목도를 하지 않지만, 목도꾼들의 어깨에는 굳은살이 여전하고, 가을이면 소나무가 내어주는 송이가 제철을 맞는다.

적송의 뿌리에서 자라는 송이는 때를 놓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을이면 송이를 찾기 위한 숨바꼭질이 펼쳐진다. 낙엽 쌓인 나무 아래, 오롯한 자태로 숨어있는 송이를 발견하면, 힘든 산행도 거뜬해진다는데..송이가 귀하게 대접박는 이유는 진한 솔향 때문.

금방 캐온 송이를 흙만 털어내고 손으로 찢어 소금장에 찍어 먹으면 쫄깃하면서도 송이 향이 입안에 가득해진다. 송이를 소금만 살살 뿌려 호박잎에 싸서 구우면, 촉촉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에 송이향은 더 진하고 그윽해진다.

3, 40년전 만해도 서벽리 사람들에게 송이는 지게에 다 지고 내려오지 못할만큼 흔한 버섯이었다. 남은 송이는 고추장 단지에 박아 장아찌를 담아 두고 먹었고, 박을 채썰어 함께 넣고 순하고 시원하게 국을 끓여도 별미였단다. 어느새 추억처럼 남은 목도꾼들의 고된 시간을 위로해주던 송이향 가득한 가을밥상을 만난다.

■ 가을 산은 야생버섯의 천국 - 천안 버섯꾼들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버섯의 종류는 알려진 것만 대략 1,800여종. 그중 먹을수 있는 버섯이 약 3-400여종, 독버섯도 160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버섯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는 가을.

천안의 한 야산, 이맘때면, 매일 산에 오른다는 15년차 베테랑 김형욱씨와 4개월차 초보 전대우씨는 요즘 산에 오를때마다 발견하는 버섯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털목이, 그물버섯아재비, 말뚝버섯, 턱수염버섯에 가지버섯이라 부르는 민자주방방이버섯까지, 가을산은 그야말로 야생버섯의 천국!

버섯은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손질하기가 어려워 물에 한번 데쳐서 손질한 다음, 소금에 염장을 해두면 오래 보관하기 좋고, 물에 한두시간 우려내면 식감과 향이 그대로 살아난다고 한다.

독특한 해산물향과 식감이 좋은 그물버섯류는 소고기와 함께 전골이나 샤부샤부를 끓이고, 가지버섯등 여러 야생버섯들을 넣고 매콤하게 끓인 짜글이는 어머니의 손맛이 더해진 최고의 가을별미다. 산이 내어준 선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살아가는 산사람들의 버섯으로 차린 별미밥상을 만나본다.

■ 표고, 수행자의 마음을 채우다

경북 안동 왕모산 높은 곳, 야생콩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산중 깊은곳에서 흘러가는 구름처럼 살고 싶어 ‘운산’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홀로 자급자족하며 수행중인 암자가 있다.

산자락에는 2천개가 넘는 참나무 원목들에서 표고가 한창 제철을 맞았는데, 이 표고덕분에 인연을 맺은 사찰음식전문가인 여일스님이 산중 암자를 찾았다. 육식을 금하는 사찰에서 버섯은 단백질등 영양을 보충해주는 식재료이고, 버섯중에서도 표고는 대부분의 사찰음식에 사용되는 중요한 식재료다.

재배하는 콩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작은 야생콩으로 메주를 쑤어 장까지 담근다는 운산스님은 야생콩과 표고로 밥을 지어먹곤 한다. 말린 표고는 가루를 내어 천연조미료로도 쓰고, 채수를 만들때도 빠지지 않는다.

표고채수로 은근하게 국물을 내고, 국수를 말아 고수양념장을 얹으면, 스님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해서 ‘승소’라 부르는 사찰국수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표고는 소금만 뿌려 그대로 구워먹는 것이 가장 맛있단다. 자연이 준 그대로, 모든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욕심내지 않고, 단순하게 살아가며 깨우침을 얻는 수행자들의 지혜가 담긴 표고밥상을 만나본다.

■ 귀하고 고마운 당신 - 지리산 석이 부부 이야기

지리산의 가파른 절벽. 매일 루프에 몸을 맡기고 위태로운 채취를 감행하는 이완성 씨. 절벽아래에선 그런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 김귀순씨가 있다. 위험을 감수할만큼 귀하다는 그것! 바위에 붙은 귀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이 석이(石耳)라 불리는데, 흔히 버섯으로 알려져있지만, 버섯과 이끼의 중간쯤 되는 지의류라고 한다.

높은산 바위에 붙어 1년에 1~2mm정도 자라기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석이는 지리산 일대에선 제사나 명절 때 빠지지 않던 식재료였단다.

지리산에서 나고 자란 부부는 타지를 떠돌다 25년전, 모든 것을 잃고 빈손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상투에 수염까지 기른 외모덕분에 동네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가 됐다는 이완성씨는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가려고 ‘석이’를 따다 그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돌에 붙어자라는 탓에 일일이 가위와 손으로 돌을 골라낸다음 흐르는 물에 빨래하듯 여러번 치대며 검은물이 다 빠질때까지 씻어야 한다.

잘 손질한 석이를 들기름과 마늘만 넣고 볶으면, 서로 먹으려 젓가락전쟁이 벌어지곤했다. 석이를 듬뿍 넣고 전을 부치면, 그 쫄깃한 식감은 먹어본 사람만 아는 별미라는데, 약초와 석이를 넣어 끓인 백숙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귀한 보양식이다.

힘들었던 젊은 시절, 아픔을 품어주고 격려해준 지리산 품에 안겨 몸도 마음도 넉넉해졌다는 부부. 성격도 취향도 다르지만, 서로 닮아가며 즐겁게 살아가는 지리산 석이부부의 귀하고 고마운 석이밥상을 만난다.

dltkdwls31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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