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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리콜운동 대표 전두승 목사, '내가 날마다 죽노라!'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6-18 06:00

킹덤빌더즈, L.A 글로리 교회 담임 전두승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내가 날마다 죽노라. 나를 다스리는 자가 이기는 자이다”
 
수요일 새벽에 꿈을 꿨다. 걸어가고 있는데 바닷물이 들어와 골이 깊은 곳은 점프를 해도 조금 멀어 얕은 곳을 찾아 건너려고 해도 허리까지는 적셔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 나는 날 수 있지” 하고 점프하는 것보다 좀 더 높이 떠 반대편으로 내렸더니 신발도 젖지 않았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음에도 우쭐했다.

마을 입구에 도달하니 좀 높은 언덕 위에 두 나이든 여자가 있었다. 한 여자가 젊었을 때 농구를 좀 했는지 제법 점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점프를 잘 하네요. 뚱뚱하지 않고 날씬해서 그런 것같아요” 했더니 늙었지만 자기 몸을 훝어 보면서 뿌듯해 하는 모습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아래로 내려오는데 젊은 여자가 보였다. 그래서 내가 점프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 하고 점프가 아니라 위로 비스듬히 길게 날아서 아까 그 점프를 잘한다는 여자 머리를 농구 골대처럼 생각해 머리에 손을 대니 젊은 여자가 놀라는 것이었다.

다시 우쭐대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날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평지로 내려 오니 한 무리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여선생님과 함께 놀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나는 어른이다” 하고는 “나하고 놀자. 나를 잡으면 만원 줄께” 하니까 아이들이 어리둥절하고 나를 쳐다 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고 아이들이 잡으러 오면 날아서 아이들을 놀래케 해주고 또 으시대려는 내 모습을 보았다.
 
바로 위로 날지 못하고 비스듬히 날아야 하니까 아이들보다 더 앞에 있는 여선생님에게 아이들하고 같은 자리로 물러나라 하고 ‘시작!” 하려니까 내가 좀 전에 나는 것을 본 한 젊은 남자 청년이 날지 못하게 내 어깨를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손을 뿌리치고는 날려고 하다가 꿈을 깼다.

깨자마자 몇가지 생각이 났다. 첫째 혼자서도 우쭐하고 여자들 앞에서 특히 젊은 여자 앞에서 그 여자가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우쭐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아이들과 놀자. 나 잡으면 만원 줄게” 하고는 절대로 잡힐 생각이 없이 나는 모습을 보여 주고 놀라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 나를 보여 주셨다. 

아이들 하고 놀려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어른 됨을 버리고 잡혀 주어 약속한 만원도 주고 해야 아이들도 즐거워 할터인데, 아이들이 달려오면 날아서 그들의 놀라하는 모습과 황당한 모습을 즐기려는 나의 못된 모습을 보여 주셨다.

나는 것은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역사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인데, 마음은 날지 않고 낮아져야 함에도 마음조차 날아 우쭐해 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빌립보서 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낯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다.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쉽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하셨다.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주님이 겨리 소의 경험 많은 오른편의 ‘마라소’가 되시고, 우리는 서툴고 어린 ‘호리소’로서 주님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주님이 앞서 가시고 우리가 따라간다. 그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직도 나 스스로 우쭐하는 것이 있다. 남이 볼 때, 그리고 여자들에게 보여 주고 으시대는 것이 있다.

심지어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른이다. 같이 놀자” 하고는 아이들보다 잘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아이들처럼 내려 오지 않고 수퍼 히어로 처럼 행동하려고 하는 나의 모습은 아직도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그렇다. 살아 있는 동안에 그것이 완전히 없어질 수가 없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종의 신세에서 자유자가 되었는데 다시 종의 멍에를 멜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질 때에는 내가 죽어서든지, 주님이 재림하실 때, 홀연히 변형되어 공중으로 올라간 이후이다.
 
그렇다면 오늘도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 남들에게 보이려는 우쭐함, 그것도 남자와 어른으로서 이미 신체적인 조건이나 여러가지로 월등함에도 여자들과 아이들에게까지 나타내려고 하는 그러한 자기만족, 시기심과 질투심, 공명심과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을 오늘도 다스려야만 한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나는 죄인의 괴수다.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 내가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였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내 삶은 이미 주님께 드려졌다. 주님이 나의 전부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자. 눈을 지키자. 생각을 다스리자. 

우리는 주님의 부활에 참예하여 이미 이기는 자이다. 날마다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이겨야 한다. 주님과 같이 멍에를 메고 나를 다스리는 자가 만국을 철장(라메드, 가르침)으로 다스릴 자다.
 
땡큐 로드! 니카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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