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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돗교회 정이신 목사, '힘센 천사와 작은 두루마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6-19 04:00

아나돗과 함께 읽는 성경 정이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힘센 천사와 작은 두루마리(요한계시록 10:1∼6)

[1]
<10:1∼11:13>은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직전에 벌어진, 연극에 비유하자면 막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기술한 것으로 2가지 환상이 나옵니다. 이는 요한이 의도를 가지고 나팔심판 시리즈 사이에 이 글을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7장>처럼 이를 삽입구라고 합니다. <7장>이 여섯 번째 봉인심판과 일곱 번째 봉인심판 사이에 들어가 있는 삽입구인 것처럼 <10:1∼11:13>도 여섯 번째 나팔심판과 일곱 번째 나팔심판 사이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삽입구가 <12장> 이후에 또 나오는데, 이는 성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그가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성도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 세 개의 심판시리즈보다 이곳에 더 집중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종말을 준비하시고, 종말의 시간에 따라 인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에게 종말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때이고, 구원이 완성되는 때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는 삽입구가 말한 게 꽤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정해진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해 아래 세상에서 우리가 간직해야 할 믿음의 희망이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2] 
“힘센 천사”는 <요한계시록>에서 <5:2; 18:21>에도 등장합니다. 총 3번 나오는데, <1절>에만 “다른”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1절>의 “다른”은 ‘질적으로는 같으나 여러 개 많이 있을 때’를 뜻하는 헬라어 알로스(ἄλλος)인데, 이는 <요한복음 14:16>에 나온 삼위일체 하나님을 뜻하는 “다른 보혜사”와 같은 용례입니다. 그래서 <1절>에 나온 “힘센 천사”를 <5:2; 18:21>에 나온 천사와 같은 존재로 해석합니다. <5:2>에서 힘센 천사는 봉인된 두루마리를 열 걸 촉구하며 “이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18:21>에서 힘센 천사는 바빌론의 멸망과 관련해 등장했습니다. 이와 달리 <1절>은 힘센 천사를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1절>은 <5:2; 18:21>과 달리 아주 독특합니다. 힘센 천사의 얼굴이 해와 같다고 했는데 이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반영한 것입니다. <1:16>에서 이런 천사의 얼굴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과 병행을 이룹니다. 이외에 다른 표현도 힘센 천사를 독특하게 만듭니다. 

[3]
이 천사는 “구름에 싸여서” 하늘에서 내려오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둘려있고, 그 발은 “불기둥”과 같았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구름ㆍ무지개ㆍ해ㆍ불기둥은 하나님의 강림에 대한 4중적 표지로 쓰였는데, 요한이 이를 인용했습니다. 힘센 천사가 오른발로는 바다를,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 있었는데, 이는 이전의 다른 천사들보다 더 넓은 바다와 땅을 포함한 전 세계적인 범위를 관장하는 능력이 이 천사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이 천사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장엄하기에 어떤 사람들은 이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거나, 그분의 다른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한 번도 예수님과 천사를 같은 존재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에 ‘○○는 나와서 어명을 받들라!’라고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사람이 그 집 앞에서 왕의 명령서를 들고 외치면, 집에 있는 사람들이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 그 편지 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처럼 힘센 천사는 그가 선포한 메시지의 장엄함에 어울리도록 예수님의 영광을 반영하며 위엄 있는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이 천사가 예수님과 같은 존재라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4]
“작은 두루마리”는 <5장>에 나온 “두루마리”와 같습니다. 힘센 천사가 두루마리와 관련해서 등장한 건 2개의 두루마리가 서로 같은 책이란 뜻입니다. 다만 헬라어에서 두 단어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5:2>은 두루마리를 뜻하는 비블리온, <10:2ㆍ8∼10>은 “작은”이란 수식어가 붙은 비블라리디온입니다. 그런데 이런 차이는 <요한계시록>의 다른 부분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둘을 같은 책이라고 해석합니다. <5장>과 <10장>의 두루마리가 같은 것이란 추정은 요한이 구약성경을 인용한 방법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5:1>과 <10:8∼11>은 각각 <에스겔서 2:8∼10>과 <에스겔서 3:1∼3>을 배경으로 한 표현입니다. <에스겔서>를 인용한 걸 보면, [A(에스겔서 2:8∼10)]와 [A'(5:1)], [B(에스겔서 3:1∼3)]와 [B'(10:8∼11)]은 병행 관계입니다. <에스겔서>에서 [B]는 [A]를, [B']는 [A']를 배경으로 기록됐습니다. 이런 관계는 <요한계시록>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A, 에스겔서 2:9∼10]는 [B, 에스겔서 3:1∼3]로 이어졌는데, [A', 5:1]도 [B', 10:8∼11]로 이어집니다. 이를 보면 <5:1, 10:8∼11>은 <에스겔서 2:8∼3:3>을 공통으로 인용한 것입니다. 

[5]
두루마리는 분명히 열려 있었습니다(2절). 이게 열려 있다는 건 우리가 그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나아가 여기에 있는 내용이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과 관련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 없는 일을 굳이 요한이 <요한계시록>에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복음 21:25). 그런데 네 권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하나님의 나라(마가복음 1:15)’입니다. 따라서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나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와 관련 있는 내용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는 이 두루마리가 궁극적으로 성경을 상징하는 책이라고 해석합니다. 초대ㆍ초기교회 때 성경은 하나로 편집돼 있지 않고 필사된 여러 개의 사본으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초대ㆍ초기교회 성도는 성경을 하나의 두루마리로 생각했습니다. 한 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여러 권의 두루마리이기에 서로 다른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디모데후서 3:15∼17).

[6]
<5:8>에서 24장로는 어린양 예수님만이 두루마리의 봉인을 뗄 수 있다고 했고, <6:1>에서 어린양이 일곱 봉인의 하나를 뗐습니다. <5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강림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그러므로 <5:2>에서 힘센 천사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이 두루마리 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오게 하려는 주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를 펴며 봉인을 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편만하고 안전하게 도래할 것입니다. 그런데 <5:4>에서 요한은 두루마리를 펼칠 분이 없어 절망감으로 울었습니다. 그리고 장로 중 한 명이 두루마리를 펼칠 분이 있다면서 그를 위로했습니다(5:5∼6). 그렇다면 두루마리의 정체에 대한 답은 명확해집니다. 어린양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이 땅에 강림하도록 보좌에 앉으신 주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았습니다(5:7). 이렇게 봤을 때 <6∼16장>에 나온 3가지 심판시리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하기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7]
<10절>에서 요한은 이 두루마리를 삼켰습니다. 그가 이 두루마리를 삼켜버렸으니 새로운 계시가 오기 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를 가져올 두루마리의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계시가 와야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그가 <요한복음>에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과 어긋납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구원에 관한 모든 비밀을 다 풀어 놓고 부활ㆍ승천하셨습니다. 따라서 다른 구원의 비밀이나 방법이 있을 수 없고, 이 두루마리가 구원과 연관된 것이기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다르면 안 됩니다(요한복음 19:30).

[8]
사람이 아무 때나 비명을 지르고 시도 때도 없이 부르짖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을 만났을 때, 답답한 일을 만났을 때,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부르짖습니다. <3절>에서 천사는 마치 사자처럼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부르짖자 일곱 천둥이 각각 제소리를 내며 말했습니다. 한꺼번에 일곱 천둥이 소리를 냈는지, 아니면 하나씩 일곱 번에 걸쳐서 소리를 냈는지 모르지만, 분명히 소리가 나면서 요한이 알아들을 수 있는 걸 말했습니다. 그가 그걸 기록하려고 했으나 하늘나라에서 기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4절). 이 때문에 기록하지 말라고 명령한 게 ‘새롭게 봉인된 말씀이나 성경에 없는 새로운 복음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신명기 29:29>, <전도서 3:11>과 비교해 보면 그 의미가 뚜렷해집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성령님이 기록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굳이 알려 하지 말고 무시해야 합니다.

[9]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이런 명확한 설명을 담은 글을 기록하지 않은 주체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요한복음 21:25). 그렇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기록하지 않도록 지시한 주체가 하늘나라에서 나온 음성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이런 내용을 종합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요한에게 하늘에서 울린 일곱 천둥소리까지 성령님이 알려 줬다면, 일곱 천둥소리가 한 말은 성도의 유익을 위한 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필요하기에 성령님은 이걸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일에도 우리는 하늘에서 울리지만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고 우리만 듣는, 천둥소리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소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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