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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존재의 양면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삶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가야 했다. 그 광야 속에서 스스로 살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없었다. 날마다 하나님이 제공해 주시는 만나와 물을 의지해서 살아야 했다. 생명의 수단을 스스로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칫 절망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그들 옆에 하나님은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항상 같이 동행해 주셨다.
그런 삶의 양태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주변 강대국에 의해 그 나라의 존재가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하나님을 믿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보호자가 되어 주셨다. 그러나 그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을 떠났을 때,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존재 방식은 특이하다. 첫째는 항상 그 생명이 위협을 받았다는 것이다. 삶의 현실이 안전과 평강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긴장과 두려움을 야기시켰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자식 없이 늙어가는 자신들의 현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지 않았다면, 텅 빈 자신들을 보면서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때론 믿고 산다는 것이 무모한 것, 허망한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다. 한편은 항상 존재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거리의 위험, 질병의 위험, 사고와 재난의 위험, 사람들의 위험을 떠나 사는 날이 없다. 또 항상 듣는 것이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사고와 재난에 희생된 사람들의 소식이 아닌가? 최근에는 인플레와 비싼 휘발유, 음식 재료값이 마음을 누르고 있다. 현실을 맨 눈으로 보면서 안심하고 마음에 평안을 얻는 일이 불가능하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무(nothingness)에서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탱되지 않으면 곧 무의 상태로 떨어질 위험을 안고 살고 있다. 우리 삶은 항상 가까이 있는 죽음의 위협을 떠나 살지 못한다. 죽음은 곧 무에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질병과 사고, 또는 기아로 말미암이 죽을 것을 내심 두려워하고 있다. 또 무가치한 삶을 살 것을 내심 두려워 한다.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한 약속으로 용기와 소망을 안겨 준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떤 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없다"고 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 생활은 눈에 보이는 현실의 위협과, 하나님의 약속 사이의 선택의 삶이라 말할 수 있다. 맨 눈으로 현실을 보면, 숨을 죽이고, 놀람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나이든 사람에게는 치매의 위험, 점점 더 약해져 가는 육신의 기능으로 미래에 대한 근심과 염려로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주목하는가. 그 선택의 대상이 우리 삶을 결정한다고 하겠다.
나는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자 한다. 그의 임재를 의식하며 사는 동안, 마음은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 모든 염려를 그에게 맡기고 사는 삶의 하루 하루가 참 평안하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사는 것이라 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한다.
우리가 이 평안하지 않은 땅에서 무엇을 주목하고,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하루 하루 우리 심령과 삶을 결정짓는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말씀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평강 중에 사는 것이다(살전 5: 16, 18). 우리를 향해 귀한 뜻을 전해 주신 하나님에게 마음으로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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