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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랑선교교회 김데이빗 선교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믿음의 여정 속에서 보존된 약속"
사도행전 7:1-16
1. 오늘 말씀은 공회의 대제사장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스데반의 설교가 시작되는 부분으로, 요셉의 형제들이 그를 시기하여 애굽에 팔아버렸던 죄악이 여전히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런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언약을 주시고 성취해 가시는 방향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형제들의 시기로 애굽에 팔렸지만 하나님의 동행하심으로 영화롭게 된 요셉처럼, 예수님도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죽으셨으나 다시 부활하셨음을 말하고자 하는 스데반이다.
2.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행7:1-2)
71명의 산헤드린 회원으로 구성된, 너무나 공포스러운 공회 분위기 속에서… 더군다나 공회의 대제사장은 스데반에게 신성모독죄를 씌워 죽이려는 최대의 위기의 상황에서, “이것이 사실이냐?”라고 묻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은 대제사장 앞에서 “들으소서!” 하며 자기가 처한 최대의 위기를 설교의 기회로 삼고있는 모습이다. 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나도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텐데…
3. 스데반의 설교...
스데반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설교를 이렇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는 청중을 잘 알았다.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는 스데반이다.
그는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6가지 주제로 압축하고 요약하여 요약하는데… 오늘 본문은 그 중 창세기 내용을 압축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과 요셉을 부르시고 인도하셨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
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7:2-4)
믿음의 조상이라고 모두 인정하는 아브라함을 어떻게 부르셨고 인도하셨는가를 말함으로 설교가 시작이 된다.
5.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상태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다. 아브라함이 어떤 노력을 했거나 율법을 잘 지켜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이 택하신 게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셔서 믿음이 생겼다는 말이고, 하나님이 하셨다는 말이다.
6. 찾아주신 분도…
말씀하신 분도…
이렇게 살라는 내용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약속의 땅으로 옮겨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하셨다.
7. '믿음'이란 그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역'이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그냥 받아 들이는 것이다.
'구원'이란 그저 손가락으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분이 하셨고, 이분이 하시고 계시고, 이분이 하실 거라고...
8. '교만'이란 하나님 대신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로 믿게 하는 것이다.
예배도, 봉사도, 사랑하게 하는 것도 내가 열심을 내는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셨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불렀고, 말씀을 주셨고, 깨닫게 하셨고, 거룩한 생각을 주셨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15: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9. 말씀하신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행7:2)이시다. 그저 관념이나 지식의 하나님이 아니라 함께 하며 느끼는 영광의 하나님이시다. 근데 이 영광을 내가 받으려 하는게 교만이고, 위선이고, 열심이고, 종교생활이고, 가인의 예배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으셨는 줄 안다. 역시 나를 위한 생각이고 교만이다.
10. 하나님의 최대의 목표는 영광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고, 그를 위해 구원을 허락한 것인데... 그래서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임을 알도록...
1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과정은 세상과 우상숭배 안에 있던 믿음없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을 받는지를 알 수 있다. 그 과정은 3가지 과정을 거침을 알 수 있다.
12.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행7:4)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세력에서 마음을 떼어내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세상적인 조건과 환경을... 땅을 끊어내야 하나님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관심을 끊어야 하나님께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13. ‘하란에 거하다가’(행7:4)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보낸 게 아니라…
여전히 아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떼어낼 때까지…
육신의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하란에 머물게 하신다.
약속한 땅은 아닌데 거기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훈련이 아닐까...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든 노력은... 심지어 그것이 예배이고 기도이고 섬김일 지라도 교만의 훈련으로 가기 쉽다.
지금 인도함을 받고 있다면 비록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어도 가만히 있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꼭 어떤 위대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순종이 믿음이다.
14. 하나님은 가끔 목표가 아닌데 그냥 두시고 시간낭비를 하게 하실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쓸데없는 일인데 하게 사실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이 땅이 하란과 같고… 잠깐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근데 믿음에는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온전히 마음을 세상에서 떼어내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15. ‘이 땅’(행7:4)
‘내가 네게 보일 땅’(행7:3)이고, 약속의 땅이다.
사람들은 ‘땅’에만 관심이 많다. 근데 하나님께서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약속의 땅의 ‘약속’이다. 하나님과 언약관계이다.
지금 스데반은 정작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해서는 둔감하면서도 외형적인 '땅'에… 성지 숭배의식에 젖어 있던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꼬집고 있는 모습이다.
16.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행7:5)
근데…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고난이 온다.
‘발 붙일 만한 땅’도 주지 않으시면서 계속 약속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 약속을 믿기란 쉽지가 않다. 근데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땅’에 있지 않음을 계속 강조하신다는 마음이 든다.
하나님은 땅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땅에서 부자되고 성공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게 아님을…
17. 그래서 믿음은 온실이 아니라 현실이다. 온실만 바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내 온실을 위해...
'내 온실이 아니라 현실을 침노하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 아닐까...
18. 현실을 보면 자식도 없는 저에게 그리고 요망한 저의 씨의 소유로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정말 쓸모도 없는 약속으로 보인다. 근데 ‘발 붙일 만한 땅’도 안주시는 이유는 내 마음이 거기에 빼앗길까봐 계속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아닐까…
결국 난 한 것이 없고 계속 의심만 하는데... 내 믿음은 없었는데...
하나님의 믿음이 내 안에 들어와 드러나는 것이다.
19.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행7:6-7)
더군다나 사백 년 동안 종살이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기간은 정확히는 430년이다(출12:40). 근데 스데반이 400년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약속의 말씀에 근거했기 때문일거다(창15:13).
20. 유대인들은 정확한 숫자를 말해야 할 때를 제외하곤 대체로 대략적인 숫자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애굽의 종살이 기간에 대해 430년과 400년은 서로 틀린 숫자가 아니라 단지 표기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다시말하면, 430년은 구체적인 숫자이고, 400년은 개략적인 숫자인 것이다.
21. 하나님의 약속은 고난과 역경이 없을 때는 요원하고 쓸모없는 언약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난과 역경을 통과하면서 점점 그 약속은 힘을 발휘한다.
언약이 결국은 고난과 역경을 통과하게 한 다음 본토, 친척, 아비집에 붙어 있던 마음을 떼어내 내 마음 가지기의 싸움에서 하나님이 승리하도록 이끌게 된다.
하나님은 이게 영광이고 그 마음 가지기 싸움에서 이기신 하나님을 ‘영광의 하나님’(행7:2)이라고 말씀하신다.
22.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두 조상을 낳으니라’(행7:8)
할례의 언약이 무엇일까…
23.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맞은 언약의 징표인데(창17:9),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한다. 그러면 오늘날도 할례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AD50년경 초대교회의 예루살렘 총회에서 사도들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로 들어오는데 반드시 할례를 행할 필요는 없다고 결의했다(행15장). 오늘날의 할례는 단지 건강상의 이유이고 그보다는 영적인 할례에 촛점을 맞춰야 하는게 옳다.
24. 그러면 영적인 할례의 의미는 무엇일까…
할례는 살을 또개어 내는 의식이다.
하나님은 계속 본토, 친척, 아비집에 붙어있던 마음을 쪼개어 떼어내라고 강조하신다. 그게 할례이다.
그래서 할례는 쪼개짐이라는 뜻이다
다른 것을 쪼개 나를 전가하여 대신 죽는 것이다.
근데 언약도 쪼개짐이라는 뜻이다.
십자가도 쪼개짐이다.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 홀로 지나던 것이 성취된 것이다(창15:10-17).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신 말…
“사하여 주소서”가 바로 할례와 같은 말이다.
“내가 다 갚겠습니다. 저를 찍어주세요. 내가 죽겠습니다.”
할례는 이렇게 쪼개지신 예수님을 믿겠다는… 나도 함께 쪼개지겠다는 믿음의 표현이 아닐까…
25.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행7:9-10)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내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게 하시는 원리는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함이다.
26. 근데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내 노력이나 열심이 하나님을 함께 하시는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하실거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은혜가 침노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27.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행7:11-16) 요셉이 총리가 된것에만 관심을 두는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목표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더 큰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28. 하나님의 목표는 총리대신이 아니라, 하신 약속을 보존하시기 위해 요셉을 준비시킨 것이고, 그 형과 아버지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에 있고, 약속의 축복의 자녀를 이어가는데 있는 것이다.
때론 삶에서 흉년이라는 재앙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방향으로 끌어들이신다. 바로 요셉의 형들과 아버지를 애굽에 가게 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 사람들은 길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게 길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면 길이 되기에,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성취됨을 나중에 보게 되는…
29. 스데반은 요셉의 형제들이 그를 시기하여 애굽에 팔아버렸던 죄악이 여전히 지금 공회 안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형제들의 시기로 애굽에 팔렸지만 하나님의 동행하심으로 영화롭게 된 요셉처럼, 예수님도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죽으셨으나 다시 부활하셨음을 듣는 부형들이 깨달으라고 하는 말 같다.
30.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행7:15-16)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에서 마음을 뗴어낸 아브라함이 눈에 보이지도 않던 약속만 쫒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결론일까…
31. 결국 이렇게 살았던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일까…
비록 아브라함은 한줌의 흙이 되지만 결코 한줌의 흙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나온다.
32. ‘믿음의 조상’이란 말은 아브라함이 열심히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셔서 믿음에 의해 구원받는 자들의 조상이 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믿는 자의 첫번 째라는 말이 ‘믿음의 조상’ 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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