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하나교회 담임 정영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자아의 죽음을 위해 힘쓰라
누가 화해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힘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지만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이 하나님의 형상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조된 모든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깨지고 부서졌지만 한 조각의 하나님의 형상을 남겨주셨습니다. 그것이 양심입니다. 그러나 양심만으로는 하나님께 돌아올 힘이 없습니다. 다만 양심은 누구도 하나님이 없다고 또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치 못하게 하시는 마음의 한 조각입니다.
그 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불이 붙으면 성령의 불이 됩니다. 십자가의 세례를 받으면 성령의 불은 보혈의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회 공동체를 세워나갑니다. 이것이 오늘 힘쓰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화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과 세례와 분쟁이라는 걸림돌에 넘어지고 쓰러져서 내 안에 있는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불에 태워져야 합니다. 물에 잠겨서 죽어야 합니다. 분쟁으로 찢어지고 깨지고 부서져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내 안에 나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발당하고 스스로 영원한 감옥에서 살아가는 영벌의 죽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분간을 할 수 없을까요?
선악과를 먹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지혜로 자신의 권리와 주장만 합니다. 이들에게는 옳고 그름만 있습니다.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분간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선악을 구별합니다. 영적지식을 말합니다. 선악을 구별한다고 하지만 선을 행하거나 선으로 살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악을 말하지만 더 큰 악으로 작은 악을 덮고 살기를 원합니다.
영적지식은 있지만 영적지식은 지식일 뿐입니다. 말로는 하지만 행함이 없습니다. 머리는 있지만 마음은 없습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몸으로는 악을 행하고 삽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십자가 나무를 먹은 사람은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화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내려놓습니다. 세상의 욕망은 성령의 불로 태워졌습니다. 죽음의 세례로 자신의 자아는 이미 죽었습니다. 분쟁으로 악하고 더러운 관계들은 모두가 끊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나무입니다. 이 십자가나무를 먹은 사람만이 생명의 나무를 먹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나무를 먹는 자에게는 더 이상의 괴로움과 슬픔과 눈물이 없습니다. 오직 생명의 바다에서 생명의 세계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화해하기를 힘쓰라고 할 때 힘쓰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자아의 죽음을 위해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내안에 내가 죽어야지만 진정한 십자가나무를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해하기를 힘쓰라
누가복음 12장 54-59절, 열왕기상 3장 16-28절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