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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두루마기를 빠는 자!'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9-05 23:51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두루마기를 빠는 자 ♧

    새 옷감 한 필이 자신의 아름다움과 좋은  질감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아름다운 옷이 될까? 분명 높고 고귀한 분의 옷이 될 거야"라며 그 새 옷감은 교만과 자만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이내 한 구석에 먼지투성이인 지저분한 낡은 외투 한 벌이 처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새 옷감은 그 지저분한 외투를 비웃으며 말했다. "끔찍하게 더러운 누더기야!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옷일 거야. 아마도 주인의 눈에 띄게 되면 넌 곧장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될걸?" 며칠 뒤 주인이 자만과  교만이 가득 찬 새 옷감으로 예쁜 옷을 지어 입었다. 새 옷감은 주인이 좋아하는 옷이 된 것을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주인은 밖에 나갈 때 새로 지어 입은 그 예쁜 옷 위에 외투를 걸쳐 입었다. 그 외투는 바로 낡고 지저분했던 그 외투였다. 순간 새 옷은 그 외투를 알아보고는 심히 분개하며 소리쳤다. "이 더럽고 지저분한 외투야 네가 내 위에 있을 정도로 그렇게 중요하냐!" 그러자 낡은 외투는 웃으면서 점잖케 말했다.

    "그래 나는 심히 낡은 데다 더럽고 지저분하기까지 하여 어느 날 주인이 나를 한쪽 구석에 처박아 버렸었지. 그런데 주인의 하인들이 나를 들고는 어디론가 가지고 갔단다. 그런데 그 하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를 두들겨 패며 내게 묻은 먼지와 흙을 털어 내었지. 그때 나는 너무도 아팠고 죽을 줄만 알았어."

    외투는 잠시 그 순간을 얘기하다 목이 매였는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두들겨 맞으면서도 나 스스로에게 말했단다. 그래 내가 다시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이 모든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 나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어."

    이번에는 외투의 음성에 다소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잠시 거친 호흡을 길게 들이키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글쎄, 내가 그런 기대로 그 모진 아픔을 참았는데, 세상에 이번에는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나를 집어넣어 푹 담가 몇 번 뒤집고 또 뒤집더니 무슨 거품 나는 세제를 넣어 나를 삶는거야."

    외투는 이마에 구슬 땀까지 흘리며 긴 한숨을 내쉬고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은 나를 끄집어내어 미지근한 물에 담가 몇 번 뒤집더니 비누로 거품을 내며 나를 마구 비벼댔어. 그렇게 몇 차례 미지근한 물에 헹구고 또 비누로 비비고 하더니 깨끗한 물로 헹구어 말리고 눌려 폈단다."

    그제서야 외투는 긴장된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래, 새 옷감아, 나는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이렇게 깨끗한 모습이 되었고,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구석에 처박아 버렸던 주인 역시 비로소 나를 네 위에 걸쳐 입고는 외출까지 하지 않았겠니! 맞아, 내가 다시 깨끗해 질 수 있었던 것은 더러운 때를 없애는 빨래의 고통을 극복했기 때문임을 깨달았어!"

    낡고 더럽고 추하고 지저분한 외투가 빨래의 공정을 통해 깨끗한 외투로 변신한 모습을 의인화하여 교훈을 이끌어 낸 창작 우화지만, 우리 인생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와 그 속에서의 불협화음(不協和音)을 다각도로 인지할 수 있도록 진지한 사고력(思考力)을 시사해 주고 있다. 특히 영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의 현장인 세상은 정죄의 칼을 갈아 그 날을 시퍼렇게 세우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어 세상이 교회를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심판한다. 교회와 성도를 멸시하는 사람, 천대하고 핍박하고 무시하고 온갖 구설수로 입방아들을 찧어대는 사람들이 기수부지(其數不知)다. 

    물론 우리 교회와 기독자들의 잘못된 처신 때문에 비롯되는 경우도 있어 전적으로 핑계치는 않는다. 어쨌든 그것이 지탄이든지 정죄든지 비판이든지 핍박이든지 간에 그럴 때마다 우리는 좌절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 우화 속에서 빨래 이후의 외투가 새 옷감으로 만든 예쁜 옷에게 간증한 내용은 좌절이 아니라 거듭남의 은혜다.

    바울은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은 복음을 수납하고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한 성도들이 당연히 겪어야 할 것들임을 전제했다(롬 8:17). 세탁 자들 앞에 내어 준 외투처럼 씻음과 중생의 성령님께 자신을 내어 준 자가 참 그리스도인이다. 아니그런가?

    날마다 세탁 자의 손에 들린 세탁물처럼 성령님의 손에 의탁되어 온갖 죄와 허물을 빠는 자를 주님은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사도 요한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 22:14)라고 회개의 복음을 종말론의 끝자락에서도 주문하며 강조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한 편 강도가 기회의 끝자락에서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라고  구원의 궁극을 선언하셨다. 그런데 세상은 이렇게 쉬운 구원을 이상하게 거부한다. 거부하다 못해 도전하고 배척하고 핍박까지도 불사한다. 

    한 편 강도의 회개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는 단 한 마디였었다. 이것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효력 있는 부르심이요 능력이다. 똑 같은 강도의 인생을 살다가 똑같은 죄목으로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죽음 직전에서 얻은 마지막 구원의 동일한 기회였지만 한 사람은 예수님을 저주하여 그 기회를 놓쳤고 한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의 기회를 잡았다. 그대는 어찌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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