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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교회 신아브라함 선교사, '구원에 이르는 지혜!'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10-13 15:08

예심교회 신아브라함 선교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구원에 이르는 지혜
   
성경은 타락한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3:15)

구원이 중요한 이유는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는 뜻은 성경을 곡해하거나 성경에 없는 사상을 구원의 근거로 삼을 때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원이 중요한 만큼 구원에 대한 오해도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우주창조 이전에 구원받을 자가 이미 결정되었다는 개인구원 예정설이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한 번 구원받은 자는 절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교리이다. 

이 주제에 대해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한다. 다음은 동탄 명성교회의 정병진 목사의 글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1. 들어가며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대체 어떤 것인가? 믿는 사람들은 구원받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냥 구원을 선물로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도 "오직 믿음"이라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슬로건을 구원의 유일한 방법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오직 믿음"이라는 문구 자체가 없다(원문에 의하면).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말씀, 그것도 한 번 믿은 것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쉽게 구원을 받는 방법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가를 찾아볼 것이다. 특별히 구원에 관한 성경구절을 직적 찾아보면서 올바른 구원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일까?

2. 구원은 과연 미래적인가 현재진행적인가 아니면 과거적인가?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고자 한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은 미래형이거나 현재진행형의 구원일 뿐 결코 과거나 완료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자인 것처럼 믿고 있고 그렇게 행세하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구원을 이미 받았다는 과거형이나 완료형으로 표현된 곳이 없다. 항상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 미래형이거나 "지금 구원을 받고 있다"고 하는 현재진행형으로 형태로만 나타난다. 다만, 구원을 얻는 것을 과거형으로 표현한 곳이 한 구절이 있기는 한데, 그것은 미래적인 구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며, 구원을 얻는 것을 완료형으로 번역한 곳이 있는데, 그 구절은 헬라어원문을 보면, 현재형구문이다. 다시 말해 번역을 할 때 그만 실수로 잘못 번역해버린 것이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구원을 어떤 형태로 표현하고 있을까? 

  첫째로, 성경에서 구원은 대부분 미래에 받아야 할 것으로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최종적으로 구원받는 시점이 자신이 죽을 때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가 구원을 받으려면 대부분 믿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죽을 때 자신의 영혼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구원에 대한 표현은 미래형으로 나온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구문은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구문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에게 제일 잘 알려진 구절부터 살펴보자. 롬10:9을 보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이 구절에 나오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구문은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구문이다. 앞으로 미래에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다. 그것은 다른 구절에서도 동일하고 나온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 여기에 나오는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는 구문도 역시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구문이다. 또한 다음의 구절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행16:30-31)"에 나오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구문도 앞과 동일하다. 또한 행2:21에 나오는 구문도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1)" 한편, 마지막으로 살펴볼 중요한 구절은 딤후4:18의 구절이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믿는 이들의 궁극적인 구원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며, 그 구원이 언제 일어나게 될 것인지 정확하게 제시해준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길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딤후4:18)" 이 구절에서 사도바울은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원의 시점에 관점을 바꾸게 된다. 이전까지는 계속해서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자신이 구원을 받을 것을 예견했고 말해왔으니, 이제 그의 마지막 서신인 딤후4장에서 그는 주님의 재림하심으로 자신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어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감으로 구원받을 것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가 죽을 때에 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믿을 때에 시작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완성은 죽을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항상 미래적인 것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둘째로, 구원을 현재 받고 있는 중으로 표현된 곳도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원을 현재진행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구절은 다음과 같다(행2:47, 고전1:18, 15:2). 먼저 행2:47의 말씀을 보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이 구절에 나오는 '구원받는 사람'은 동사 분사 현재 수동태구문이다. 즉 (현재) 구원을 받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구원이 진행중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고전1:18을 보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여기에 나오는 '구원을 받는 우리'라는 구문은 동사 분사 현재 수동태구문이다. 이거솓 역시 '구원을 받고 있는 우리'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리고 한 구절만 더 보자. 고전15:2을 보자.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전15:2)" 여기에 나오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구문은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구문이다. 즉 이 구절은 지금 그들이 '구원을 받고 있는 중이다'는 뜻이다. 한편, 빌2;12에서는 현재 명령형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여기에 나오는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는 표현은 '너희의 구원을 너 자신을 위해서 지금 성취해가라'는 뜻이다. 구원이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니, 계속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자기자신을 위해 성취해 가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은 그것을 미래형 구문으로 표현하든지 아니면 현재진행형 구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구원을 과거형이나 완료형으로 표현된 곳으로 보이는 성경구절이 있기는 하나 내용은 미래적인 것이며, 잘못 번역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롬8:24에 의하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구문은 동사, 직설법,과거,수동태구문이다. 그러나 내용으로 바라. 구원을 받았으나 '소망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 내용이 미래적인 것이다. 그리고 엡2:5과 엡2:8에는 동일한 구문이 나오는데, 둘 다 한글성경에서는 과거형 내지는 완료형으로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원문에 의하면, 둘 다 현재형구문이다. 다만 동사가 2개가 나옴으로 인하여, 영어나 한글성경이 이 구문을 과거형 내지는 완료형구문으로 번역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문은 그런 뜻이 아니다. 먼저 엡2:5의 구문을 보자.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2:5)" 이 구문은 '구원을 받은'이라는 말이 과거적으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엡2:8의 구문을 보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엡2:8)"라고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이 두 구절은 원문에서 동일한 구문이다. 동사가 2개 나오는 구문인데, 본동사는 현재 직설법 능동태며, 보조동사가 분사 완료 수동태다.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은 한글로 굳이 번역한다면 이렇게 번역해야 옳은 것이다. "너희는 (지금)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다." 혹은 "너희는 (지금) 구원을 받은 상태이다." 둘 다 어떤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서 말하자면,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거나 믿음을 버리게 되면 구원을 받은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믿는다면 이미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엡2:5과 엡2:8의 구문은 현재상태로 번역해야 한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어떤 성경도 그렇게 번역한 성경은 없다. 그냥 과거형으로 번역하거나 완료형으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그 시작이 매우 넓은 길이지만 그 끝은 매우 좁다는 것이다(마7:13~14). 다시 말해 구원받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좁은 길 구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무나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아무나 구원의 문밖으로 나가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사실 예수께서는 누구에게나 값없이 구원으로 초대하신다. 하지만 구원의 문을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구원을 얻을 자는 매우 적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을 완성하기까지는 엄청난 환란을 통과해야 하며, 미혹을 이기며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4:9~13).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이 가진 믿음을 지키기 위한 피나는 고난이 필수적으로 따라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그냥 구원 안으로 골인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흔들어 구원에서 떨어지게려는 세력들이 주변에 우는 사자같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악한 귀신들과 대항하여 그들의 핍박과 미혹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교회성도 중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가 다 '이기는 자'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어떤 사람이 끝내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마24장에 나온다. 예수께서는 그때 2가지를 통과해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의 하나는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마24:9~10,21~22). 핍박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때로는 죽는 것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마24:9~10). 그리고 또 하나는 마귀의 미혹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마24:11,23~24). 마귀는 자신의 부하인 귀신들을 집어넣어 거짓선지자들을 이용할 것이고, 거짓그리스도들을 사용하여 넘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돈과 명예와 권력과 인기와 쾌락으로 택하신 자라도 넘어뜨리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라도 사탄의 궤계를 잘 분별하여 거짓의 아버지인 사탄마귀를 물리치지 못한다면 중간에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구원에서 탈락되고 마는 것이다. 때로는 귀신들이 한 사람이라도 구원에서 떨어뜨리기 위해서, 거짓 표적과 기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 만약 귀신인지 성령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로 알고 따라간다면 그는 결국 마귀와 귀신의 종이 되어 음부(지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보면, 처음에는 믿는 사람이었지만 거짓의 아버지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즉사하여 지옥에 떨어졌던 아나니와 삽비라의 이야기도 나오고(행5장), 딤전1장에 보면 믿음에서 파선한 자들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이야기도 나온다(딤전1:19~20). 특히 히브리서 기자는 믿는 자라도 구원에 떨어질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언급한다(히3:12,18~4:1, 6:4~8, 10:26~29).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직접적으로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계3:5). 그렇다. 구원은 안전하지 않다. 유동적이다. 언제라도 구원에서 미끄러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4. 구원은 만세전 예정에 따라 받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안전한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힐 것은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어떤 특정한 개인이 구원받게 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개라는 개인을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만세전에 예정하셨다는 교리나 주장을 믿지 말라. 그런 말씀은 성경에 단 한 군데도 나오지 않는다. 누구든지 믿고 회개하는 자가 구원받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구원받을 것이고, 죽는 그 순간까지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는 자가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셨으며, 한 번 예정해 놓은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누구든지 시작한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 왜냐하면 믿는 자라도 중간에 얼마든지 탈락이 가능하다고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가진 믿음에서 파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요10장 28절에서 말씀하실 때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예정된 사람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27절에 나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고, 또한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자들이다. 그렇다. 성경구절을 어디에 가져다가 그냥 함부로 꽤맞추려고 하지 말라. 문맥을 벗어나서 그 구절만을 뚝 떼어내서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면 이단이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은 있는 그대로 인용해야 한다. 그리고 문맥을 떠나서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5. 나오며

  지금은 예수님 때부터 한층 더 구원얻을 때가 가까이 왔다. 얼마 안 있으면 주님이 오실 것이다. 하지만 그날을 우리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과 회개로 얻은 1차적인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를 계속해서 넘어뜨리려 시도하는 사탄의 핍박과 미혹을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가진 믿음을 지켜내야 한다. 그래서 꼭 죽은 다음에 천국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정병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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