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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Born again!'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10-26 11:26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Born again

중생은 기독교가 갖는 독특한 구원의 도리이다. 이 주제의 심각함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를 책망하며 가르친 교리라는 데 있다. 유대 종교는 수 천년 동안,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의식을 가진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종교이다. 니고데모는 모세의 율법을 알고 가르쳤던 그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였다. 그런  사람에게 "네가 (위로부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아무리 유대인이요, 유대 종교를 신봉하고 가르치는 사람일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 몹시 충격적이다. 이제 아브라함의 혈통을 자랑할 수 없고, 율법을 읽고 산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천국의 백성으로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이다. 구약 내내 이어온 선민 사상을 깨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데는 우리같은 이방인은 물론 유대인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중생의 가르침을 니고데모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만큼 유대 종교와 기독교는 먼 거리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기독교 안에도 신앙의 형식과 외적 고백은 가지고 있지만 중생하지 않은 교인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중생의 교리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가르침이다. 인간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단 말인가? 이런 거듭남은 사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이 있어 가능하다. 누가 택하심을 받은 자인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중생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갖지 않은 독특한 변화(차이)가 있다. 첫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깊은 자각이 있어, 대속의 주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 중생한 신자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항상 고백하며 산다. 

둘째 중생한 신자는 그 삶의 목적이 전혀 다르다. 그 중심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려는 내적 열망이 있다. 어떻게 그런 변화를 갖게 되었을까? 성령 하나님이 그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 안에 성령이 살아 계신 증거는, 자신의 죄인됨에 대한 고백과 함께, 그 마음 중심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려는 소원에 있다. 그렇게 살지 못함에 대한 애통함이 있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기 원한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신앙의 목적이 무슨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기에 기복신앙의 잘못됨이 있다. 기복 신앙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리킨다. 그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 보다 복이 앞서고, 하나님은 사람이 찾는 복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수단으로 삼는 일은 두려운 일 아닌가? 그러나 중생한 신자는 무엇 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려는 삶의 목적과 동기를 갖는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지옥에도 가겠다는 말을 했다. 그 중심과 목적이 하나님을 위하는 중생한 사람의 고백인 것이다.

교회 안에는 중생한 신자와 중생하지 않은 신자들이 함께 존재한다. 주님이 가르친대로,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구분이 안된다. 중생을 체험한 신자는 서로 마음이 통하고 대화가 즐겁다. 자신의 작음과 부족함에 대한 고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생한 신자는 겸손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오래 신앙 생활을 해도, 심지어 교회 안에서 선생의 이름을 하면서도, 중생 없는 신자아닌 신자가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죄성과 허물을 모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만 한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배우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 아닌가?  

중생한 신자는 자신의 죄인됨에 대한 자각과 고백이 있기 때문에 항상 회개하고 자복하는 생활을 살고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항상 성령의 도움을 구한다. 무엇보다도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기도한다. 무슨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의롭고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고 기도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물은 우리를 씻는 수단이고,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살게 해 주시는 하늘의 능력이요, 하나님이시다. 중생한 신자는 자신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항상 회개하고 십자가의 피 공로를 의지한다. 항상 성령의 거룩케 하는 능력과 도움을 구한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이 세상을 살 수 없다는 안타까운 고백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사람이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신자라 할 수 있다. 날마다 성령의 도움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는 그 사람이 중생한 신자라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진정 자유하는 삶, 천국의 삶을 이땅에서 살고 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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